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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정신: 신예평론가의 다짐
비평정신: 신예평론가의 다짐
  • 조강석 연세대
  • 승인 2005.05.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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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문의 유혹'과 '이론의 과적' 피하기

▲세잔이 두번째로 그린 생트 빅투아르 산. ©
1.
김수영은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라는 산문에서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김재원의 ‘입춘에 묶여 온 개나리’라는 작품을 읽고 이 작품에 대해 놀라고 심지어 질투까지 느껴져서 그달치 ‘시단월평’에 손도 대지 못하다가 후에 ‘엔카운터誌’라는 시를 쓰고 나서야 비로소 이 작품을 “비평할 수 있는 차원”을 얻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작품을 비평할 수 있는 차원이란 무엇일까. 김수영은 “제 정신을 가진 비평의 객체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넓은 의미의 창조생활을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며 이것이 비평에 있어서 “윤리의 밀도”라고 말하고 있다.

아마도 시인에게 비평의 차원을 마련해 주는 것은 대상 작품에 필적할 만한 작품의 창작 여부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평가에게 그것은 작가의 경우와는 또 다른 차원의 것이어야 할 것이다. 비평가에게 “윤리의 밀도” 문제로 대두되는 “창조 생활의 전제”란 대체 무엇인지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작가와 비평가가 실상 같은 곳을 바라보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부터 풀어보고 있다.

2.
비평가 알베르 베겡은, 시인이란 “실재하는 것의 탐구를 어떤 희망들과 너무나 밀접하게 연결시켜, 그의 정복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나 개인적인 실패에서 오는 고난을 작품에 그대로 투영시키는 사람”(『낭만적 영혼과 꿈』, 이상해 옮김, 문학동네, 2001, 245~246p)으로 규정한 바 있다. 사실, 비평가 역시 이런 처지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 역시 시인과는 다른 경로로 실재 탐구에 매달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비평가는 실재로부터 ‘세 배나 멀리 있는’ 예술작품이라는 통로를 통해 그 보다 더 먼 우회로를 거쳐 실재에 이르고자 하는 하릴없는 존재는 결코 아니다. 그는 이미 스스로 실재에 대한 나름의 측량법에 대해 골몰하며 동시에 개별 시편들에 나타난 실재 탐구의 함량에 대해 발언할 태세를 갖춘 존재이다. 비평가의 일이란 개별 시인들의 실재 탐구 과정의 성공을 격려하고 실패를 위무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 실재에 대한 부단한 탐구를 진행함과 동시에 자신의 결과물과 개별 작품 속에 나타난 탐사 기록의 함량을 견주어 보고 동시에 작품의 내적 논리를 고려해 가면서 그 성패 여부에 대해 발언해야만 하는 의무도 의당 갖기 마련이다. 그런 까닭에, 김우창 선생이 오래 전에, 우리 근대시에 아쉽게 결여된 것으로 꼽은 바 있는, 사물과 세계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야 말겠다는 ‘형이상학적 의지’는 비단 시인들에게만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혼돈으로 점철된 사태를 구성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통해 세계의 본질을 직시하겠다는 자세는 비평가에게도 역시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그가 시인들의 실재 탐구 여정에 동행하며, 그 여정에서 시인들이 드러내는 세계 인식의 폭과 깊이를 헤아리고 실재 탐구 그 성패의 기록에 드러난 미학적 전략의 진정성과 적실성 여부를 가늠해야 하는 처지에 있기 때문이다. 시인이 자신의 작품을 알리바이로 다른 시인들의 시에 대한 비평의 차원을 획득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평가는 자신의 실재 탐사의 폭과 넓이 그리고 진정성을 바탕으로 비평의 차원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비평가 자신이 스스로 실재 측량 작업에 몰두해야 한다는 것은 비평가의 최소한의 의무 규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이를 통해 그가 마련하는 실재의 지형도는 작품을 바깥에서 끌어당기는 인력으로 작용해 작품이 그것을 감당해낼 만한 척력을 내부적으로 갖추고 있는지 확인해 볼 ‘차원’을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비평의 인력에 견디는 작품의 자생적 척력은 어떻게 측정될 수 있는가? 작품을 평가하기에 앞서 작품을 그 내적 논리에 따라 읽어 주는 과정에 필요한 원칙들은 어떤 것인가? 나는 비평에 본격적으로 입문해도 좋다는 기쁜 통보를 받던 즈음에 마음을 다잡으며 몇 가지 원칙들을 노트해 두었는데 이런 것들이었다. 

“최악: 내 시야에 온전히 들어오지 않은 작품에 해석의 전권을 휘두르는 태도. 차악: 작품을 단순재진술하는 것(특히, 시의 경우). 불가근: 재진술을 이론으로 포장하는 것. 불가원: 작품의 맥을 뚫는 개념이 마련된다면-마련된다면!-그것을 키로 삼아 보기도 한다. 차선: 작품 그리고 이론, 종국엔 삶. 최선: 작품, 이론, 삶, 다시 작품”

나는 작품이 온전히 시야에 들어오지 않을 때에조차, 즉, 작품을 비평할 차원을 얻지 못한 경우에조차 섣불리 작품 해석에 나서는 태도를 경계하며 또한, 작가가 여러 가지 이유로 분절시켜 놓은 통사적 문맥을 애써 수습해서 그것을 평이한 문장으로 열 없이 재진술하는 것 역시 경계한다. 그리고 작품 위에 과도한 이론이 얹히고 그것을 해명하는 문체나 수식의 나르시시즘이 더해져서 자기기만에 빠지는 것 역시 경계한다. 미문의 유혹과 이론의 과적을 피하면서 작품 해석의 물줄기를 삶의 안쪽으로 대어 놓고 다시 작품의 내적 논리로 그것을 설명해내야 하는 이 지난한 작업을 나는 비평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3.
폴 세잔은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며 그것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데 몰두했던 화가였다. 예컨데, 생트 빅투아르 산 연작은 그가 대상을 집요하게 응시하고 대상 본연의 질서를 화폭에 펼쳐놓되 이를 표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했던 화가였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작업실 창에서 바라본 생트 빅투아르 산의 정경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20년에 걸쳐 여러 번 그렸는데 이 연작에서 대상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방식의 변모 양상은 흥미롭다.

 1885년에 그린 첫 그림은 창밖 풍경을 자연스럽게 재현하고 있다. 그러나 2년 뒤의 그림에선 벌써 산의 형태가 허물어지기 시작하며 산 아래 집들의 형체도 뚜렷하지 않다. 그리고 급기야 10년 뒤에 그려진 그림에선 산과 나무와 집들이 온전히 형태를 잃고 선과 면의 기하학적 구도에 포획되고 있다. 마침내 1904년의 그림에선 이 기하학적 구도마저 해체되고 대상들은 색의 파편들로 재구성되고 있다.

▲그보다 훨씬 나중에 그린 생트 빅투알 ©
나는 이 과정이 세잔이 실제에서 실재를, 풍경으로부터 세계를 발견하고 표현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 네 장의 그림을 나란히 놓고 한참 들여다 보고 있으면 대상이 해체 재구성되는 과정도 과정이지만 무엇보다 세잔이 대상 속에 본래 있던 것을 끄집어 내어 놓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그림에서 점차 전경화되는 것은 형태가 아니라 실재이며 보다 비중을 얻어가는 것은 재현이 아니라 표현이다. 정적인 첫 번째 그림에서 우리가 얻는 것은 실제적 풍경이고 기하학적 구도가 전경화된 두 번째 세 번째 그림에서 얻는 것은 구도일 따름이다. 하지만, 네 번째 그림에서 비로소 생트 빅투아르 산은 색을 통해 자신의 두께를 드러내며 스스로 말을 걸어온다고 할 수 있다. 비평가 역시 저 고스란히 놓인 풍경이 아니라 ‘의미’(Sinn)를 감춘 세계의 두께를, 불시에 말을 걸어 올 미지의 실재 X를 항용 주목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전제가 되어야 비평가는 세잔의 대상 변형술과 기하학적 기법은 물론이고 색을 통해 세계를 표현하고자 하는 화가의 진의와 이 모든 실험의 성패 여부를 설명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존재의 본질이든 세계의 두께이든 여하한 미지의 실재를 응시하는 태도와 실재 측량 결과의 함량 비교 차원에서 비평가는 작가와 나란히 서되, 작가의 언어와 기법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작품 속으로 잠수하여 그 내적 논리를 따라 작품을 읽고 때가 되면 물밖으로 나와 작품의 둔덕에 걸터 앉기도 해야 하는 이 구체적 노동의 수고를 나는 흔쾌히 자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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