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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이 된 4차원의 세계를 찾아서
화석이 된 4차원의 세계를 찾아서
  • 백인성 교수
  • 승인 2005.05.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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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구실


백인성(부경대, 환경지질과학과)

얼마 전 아인슈타인 서거 50주년 기념의 일환으로 모 TV 방송에서 아인슈타인 관련 특집을 방영한 적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마지막을 장식한 화면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며 자막으로 떠있었다 - “나는 신이 이 세상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알고 싶다. 나머지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I want to know God's thoughts; the rest are details.)”. 자연과학이란 어느 분야이든 신이 창조한 복잡한 자연현상을 조금이라도 알기 위해 노력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나의 연구실은 바로 신과 대화를 하는 공간이라 말할 수 있다.

지난 20여 년간 이루어진,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시간들을 통해 나의 연구실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은 지구시간여행이다. 46억년의 장구한 지구의 시간을 통해 과거에 존재하였다 사라지고, 새로이 나타났다 다시 사라지는 변화무쌍한 지구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보고자 오늘도 우리 연구실에서는 신이 만든 지구의 역사책에 남겨진 고난도의 암호를 풀기 위해 씨름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 연구실의 학생들에게 내가 가장 강조하는 것이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우라는 것이다.

 
우리 연구실에서는 한달에 최소한 한 번 이상의 야외조사를 수행한다. 야외조사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현재에는 볼 수 없는, 이미 화석이 되어버린 4차원의 세계, 즉 암석이다. 그 곳에는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며, 우리들에게 신이 세상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알려 주는 자연이 만든 로제타석이 서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 화석이 된 4차원의 세계를 통해서 고생대의 그 어둡던 바다와 중생대의 광활한 평원을 시간과 공간을 넘어 자유롭게 넘나드는 지구의 시간여행자가 되는 것이다.

▲좌로부터 김현주(박사과정), 김숙주(학부생), 백인성, 소윤환(석사과정), 조경오(학부생) ©

이와 같은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끊임없는 탐구정신과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무한한 상상력이다. 이러한 연구능력을 키우기 위해 나는 우리 연구실의 학생들에게, 가능한 한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쌓도록 주문을 하며, 일상생활을 통해서도 연구의 영감을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을 강조한다.

올 해 3월에 우리 연구실은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약 4년간의 공사 끝에 우리대학교에 환경연구동이 준공되면서, 그 동안 20여 년간의 연구에 소중한 공간이 되었던 정들었던 연구실과 실험실을 떠나 새로운 건물과 환경으로 옮기게 됐다. 나는 새로운 연구실로 옮겨 가면서, 교수연구실에서 연구와 실험에 관련된 기본적인 것들을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였다. 취업이 최우선과제인 오늘날의 대학현실에서, 순수기초과학연구를 지방대학에서 수행한다는 것은 여간 외로운 작업이 아니다. 이러한 현실을 탓할 수만은 없으며, 소수병력만으로도 싸울 수 있는, 궁극적으로는 람보와 같은 1인 병기가 될 수 있기 위하여 홀로서기를 준비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나와 함께 걸어갈 수 있는 학생들이 있고, 이 여행에 도움을 주는 어느 정도의 연구비 지원이 있기에 우리 연구실은 아직도 행복한 연구실이다. 화석이 된 4차원의 세계와 벗하는 우리 연구실이 미래의 지구를 엿볼 수 있는 지혜의 창이 되기 위하여 매일 아침 나는 연구실의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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