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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스승과 제자들의 아름다운 만남
스승의 날, 스승과 제자들의 아름다운 만남
  • 김조영혜 기자
  • 승인 2005.05.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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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교수, 제자교수들 이끌고 ‘산으로’…퇴직교수, 학생들 위해 장학금

▲정진홍 교수와 제자들이 스승의 날을 기념해 한 자리에 모였다. 환담을 나누면서 ‘공부’와 ‘선생노릇’에 대한 당부를 잊지 않는 노스승의 가르침에 제자들도 함박 웃음을 지었다. © 김조영혜 기자
정진홍 한림대 한림과학원 특임교수(종교학)는 지난 13일, 용산 이촌동의 연구실에서 장석만 옥랑문화연구소 소장 등 대여섯명의 제자들과 오랜만에 환담을 나눴다. 스승의 날을 기념해 모인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정 교수는 제자들이 카네이션 바구니를 들고 갑자기 들이닥치자, 더욱 반가운 표정이다.

사제지간에 정이 담뿍 담긴 말이 오고 가면서도 ‘종교’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정 교수 밑에서 수학한 제자들이니 만큼 어떤 이야기가 나와도 결론은 ‘종교’에 대한 전망으로 이어진다. 정 교수는 이날, 유비쿼터스 관련 연구발표회를 다녀와서 “기술 발전으로 유통구조가 변화해 창고가 사라지고 기업이 소멸해도 인간이 선반에서 상품을 집어가는 행위는 바뀌지 않는다”라며 “종교를 추구하는 인간행위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제자들은 “종교는 존재하겠지만,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특정종교는 쇠퇴하지 않겠느냐”라고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스승과 제자의 환담은 노 스승이 강단에 서는 제자들에게 하는 당부로 끝마쳐졌다. “선생노릇하면서, 내가 꿈도 꾸지 못할 만큼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를 살아갈 학생들에게 ‘규범’을 이야기하지 말고 삶의 증언들을 고백하듯 가르치라”는 것. 이날 자리에는 장석만 소장을 비롯해 박규태 한양대 교수(일본언어문화학부), 조현범, 김윤성 한신대 연구교수(종교문화학과), 고건호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 구영찬 서울대 종교학과 대학원생 등이 함께 했다.

스승의 날을 맞아 스승인 원로 교수를 찾아뵙는 교수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김미현 이화여대 교수(국어국문학)는 스승의 날을 맞아 동료 교수들과 함께 이어령 성결대 석좌교수를 찾아뵐 계획이다. 간단히 식사를 하는 자리이지만, 김현자 교수와 김현숙 교수 등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에 재직 중인 동료 교수는 물론, 최숙인 용인송담대학의 교수 등 먼 곳에서 온 이어령 교수들의 제자들도 한 자리에 모인다.

박영신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사회학)와 제자들은 스승의 날을 지난 18일경, 모일 계획이다. 정재영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김중섭 경상대 교수, 황석만 창원대 교수, 김성건 서원대 교수, 황창순 순천향대 교수 등이 노스승과의 회포를 푼다. 분배주의의 수장, 변형윤 서울사회경제연구소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 경제학)은 서울사회경제연구소 개원기념일인 14일, 사회 각계에 진출한 제자들과 회포를 풀었다. 이근식 서울시립대 교수, 김대환 노동부 장관(인하대 교수), 이정우 청와대 대통령정책기획위원장(경북대 교수) 등이 변교수의 제자이다.

김용준 전 고려대 교수(화학공학)는 화학공학과와 철학과 제자들을 각각 만나느라 바쁘다. 철학을 가르친 제자들과는 매주 금요일있는 강독모임 후 간단히 저녁식사를 나눌 계획이지만, 화학공학과 출신 제자들은 등산을 하기로 했다. 강익중 경원대 교수(화학공학)는 “선생님과 시간을 맞추다 보니, 스승의 날을 지나서야 찾아뵙게 됐다”라며 “여러 대학에 있는 교수들이 모이려면 시간 조정이 어렵다”라고 말했다.

교수들의 스승의 날 모임은 간단한 식사로 끝나기도 하지만, 이처럼 산을 찾는 경우도 많다. 김수행 서울대 교수(경제학)와 제자들은 14일, 관악산에 올랐다. 강남훈 한신대 교수, 조복현 한밭대 교수, 류동민 충남대 교수, 안현효 이화여대 교수 등 20여명의 제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

조동일 계명대 석좌교수(국어국문학)와 제자들은 조동일 교수의 생일 다음날인 8월 10일부터 12일까지 안동 청량산을 등반하기로 했다. 조교수가 번거롭게 스승의 날 모이기보다, 일년에 한 번 모여 등산을 하자고 제안한 후부터 일년에 한번 등산 모임이 정례화 됐다. 대학에 몸담고 있는 조교수의 제자만 40여명이 넘다 보니, 해를 바꿔가며 제자들이 터전을 잡은 지방의 명산을 오르고 있다. 조교수는 계명대, 영남대, 한국학중앙연구원, 서울대 등 여러 대학의 강단에 섰던 탓에, 제자가 많기로 소문이 나 있다. 이번 산행에는 김헌선 경기대 교수, 최귀묵 부산대 교수, 윤주필 단국대 교수 등이 동행할 예정이다. 김헌선 교수는 “산행을 하다 보면, 초입부터 산을 내려올 때까지 공부 이야기만 하다 온다”라며 “선생님이 최근 연구하시는 연구작업에 대한 설명을 해주시고 제자들의 논문에 하나하나 코멘트를 해주시느라 사적인 이야기를 할 겨를이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스승의 날, 제자 사랑을 실천하는 교수들도 적지 않다. 영남대 생물학과 전·현직 교수 6명은 장학기금 등으로 7천여만원을 내놨다. 지난 2월, 정년퇴임한 박원학 명예교수를 비롯해 장무웅, 이종운, 전경희, 이종욱, 박선주 교수와 문혜정 객원교수까지 뜻을 모은 것. 이 학과발전기금은 장학기금과 영남대 자연사박물관 설립기금으로 쓰일 계획이다.

남모르게 제자들을 돕는 인하대 정년퇴임 교수의 이야기도 스승의 날을 더욱 훈훈하게 하고 있다. 끝내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교수가 후학양성에 써달라며 퇴직금 1천만원과 자신의 저서의 판권을 학과에 이양하고 5천만원의 장학기금을 학교에 기탁했다. 이 교수는 “훌륭한 제자들이 돈이 없어 배움의 길을 걷지 못하는 것은 선생으로서도 가슴 아픈 일”이라며 “스승으로서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알려져 부끄럽다. 이름만은 밝히지 말아 달라”라고 당부했다.
사진·글 김조영혜 기자 kimjo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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