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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대와 디자인의 풍경
한국의 근대와 디자인의 풍경
  • 최 범 디자인 평론가
  • 승인 2021.09.09 0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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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파노라마 ⑩
1981년 여의도 일대에서 열린 ‘국풍 81’ 행사 포스터
1981년 여의도 일대에서 열린 ‘국풍 81’ 행사 포스터

자동차, 휴대폰, 아파트... 이런 것은 한국이 근대문명에 속한다는 분명한 증거들이다. 이들은 기술적 산물이자 동시에 사회적 산물이며 최종적으로는 문명의 산물이다. 이런 것들의 형태를 만드는 것이 디자인이다. 그러니까 자동차, 휴대폰, 아파트는 기술적 산물이자 동시에 사회적 산물이지만, 그 형태는 디자인의 결과물인 것이다. 따라서 현대 사회의 모든 것은 디자인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디자인은 한국 근대문명의 외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요즘 연예계 용어로 하자면 디자인은 한국 근대의 비주얼 담당인 셈이다.
 
하지만 근대의 풍경은 단일하지 않다. 풍경 자체가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근대는 이식된 것이다. 한동안 ‘내재적 발전론’이니 ‘자본주의 맹아론’이니 해서 근대가 한국 사회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났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기각되었다. 한국 근대가 서구 근대의 이식과 모방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근대는 서구의 그것과 닮았다. 일단은 외양에서.

한국 근대가 서구 근대의 이식과 모방이라는 사실이 그 둘이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문명의 이식과 모방에는 필연적으로 차이가 발생하게 마련이다. 바로 이 ‘차이’, 즉 서구 근대와 그 이식과 모방으로서의 한국 근대의 차이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것이 바로 현대 한국 사회 이해의 핵심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한국 근대의 외양으로서의 디자인은 바로 그러한 차이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한국 사회와 디자인에 대해 훨씬 더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한국 근대성의 구조와 디자인

40년 전인 1981년 5월, 여의도 광장에는 알록달록한 색채의 전통 탈 이미지가 그려진 높이 90미터의 초대형 현수막이 드리워져 있었다. ‘국풍 81’의 공식 심벌이었다. ‘국풍 81’은 10.26 이후 집권한 신군부가 민심을 되돌리고 사회를 통합하기 위해서 펼친 거대한 관제 축제였다. ‘전국 대학생 민속·국학 큰잔치’라는 이름을 내건 이 행사는 대학생과 연예인을 동원하여 각종 공연·대회·축제·장터 등을 펼쳤다. 강준만 교수는 이 행사를 가리켜 ‘유사 이래 가장 거대한 놀자판’이었다고 평했다.

‘국풍 81’의 공식 심벌은 디자이너 정연종의 작품이었다. 한국 디자인계에서는 이런 것을 가리켜 ‘한국적 디자인’이라고 부르는데, 1970~80년대에 크게 유행했다. 당시 ‘한국의 미’니 ‘한국의 이미지’니 하는 제목의 전시가 많이 열리기도 했다. 이러한 ‘한국적 디자인’의 기원은 멀리는 일제시대의 ‘향토색’ 유행에서부터 찾을 수 있지만 좀 더 가까이는 박정희 정권 시절에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전통의 재발견에 있다. 전통이 근대의 발명품이라는 것은 이제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전통이란 근대가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는 한 방식이다. 그래서 그것은 ’선별된 것‘(레이먼드 윌리엄스)이고 심지어는 ’발명된 것‘(에릭 홉스봅)이기도 하다. 

‘국풍 81’의 심벌은 한국의 근대가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그러니까 ‘한국적 디자인’이라고 불리는 시각적 형식에서 ‘탈’이라는 전통적 소재는 한국 근대의 내적 특질을, 그래픽이라는 현대적 기법은 외적 특질을 각기 반영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전통(소재)과 현대(기법)의 결합이야말로 바로 정신적 전근대성(내면)과 물질적 근대성(외양)의 혼종으로 이루어진 한국 근대성의 특질을 그 무엇보다도 뚜렷하게 가시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른바 ‘한국적 디자인’은 한국 근대의 혼종성을 잘 보여주는 시각적 형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근대의 혼종성과 디자인의 과제

물론 한국 현대디자인에 이른바 ‘한국적 디자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적 디자인’의 사례는 한국 근대성의 구조를 잘 드러내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징후적이다. 그것은 한국인에게 19세기 말 이후의 근대화 과정은 오로지 물질적이거나 기술적인 경험일 뿐, 어떠한 정신적이거나 문화적인 의미도 띠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한국인에게 전통은 여전히 전근대의 것이며, 혼돈의 근대는 아직 전통이 될 자격을 갖지 못한다. 

그 이유는 물론 근대화의 시간이 짧아서일 수도 있지만, 그 못지않게 과거의 역사가 무거운 관성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근대의 외양으로서의 디자인이 혼종의 풍경으로 존재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됐든 간에, 이러한 현실은 근대화의 경험을 어떻게 의미화하고 새로운 전통으로 직면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남긴다. 현 시점에서 볼 때, 정신과 물질이 통합된 문명태로서의 한국 근대는 여전히 미래의 과제라 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런 점에서 한국 디자인의 과제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최 범 디자인 평론가

디자인을 통해 사회를 읽어내는데 관심이 있으며, 특히 한국 디자인을 한국 근대의 풍경이라는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평론집 <한국 디자인 뒤집어 보기> 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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