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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비평_우리시대 도시담론의 지형
담론비평_우리시대 도시담론의 지형
  • 조명래 단국대
  • 승인 2005.04.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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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보는 5개의 시선...소통공간 모색해야

최근 모 일간지의 문화면 기사 제목이 ‘한국은 공간전쟁 중이다’였다. 공간을 둘러싼 정책적 대결이 잦아지고 있을 뿐 아니라 공간에 관한 일상인이나 언론의 관심이 급증하면서 공간을 둘러싼 의미해석의 차이가 한국사회 갈등의 중요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논의의 핵심이다. 학계에서도 공간을 다루는 저서와 논문이 근자에 들어 적잖게 생산되고 있어 종합학문으로서 ‘공간과학’이란 학문의 등장도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공간담론을 주도하는 것은 역시 도시에 관한 것인 듯 하다. 그것은 인구의 90% 정도가 도시에 몰려 사는 ‘過都市化된 한국사회’의 특수성에 대한 지적인 반추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학계에서 도시담론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 왔던 것이니 기실 새로운 것은 아닌 듯하다. 한국의 근대성과 도시성을 연결해 들여다보기 위한 관점에서 도시에 관한 담론은 여러 분야에서 일찍부터 형성돼왔던 것이다.
그러나 도시에 관한 담론도 도시를 얼마만큼 과학적으로 읽고, 어떠한 실천적 관점으로 해석하며, 어느 차원으로, 어떠한 이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이런 관점에서 도시담론의 풍부화는 도시적 문화현상이 깊어지는 1990년대부터 본격화되었다 할 수 있다.

1990년대 후반 필자는 당시의 한국 도시담론을 이념성을 중심으로 제도권의 보수적 담론과 운동권의 진보적 담론, 정책담론과 이론담론, 시장주의 담론 대 사회민주주의 담론 등으로 나눈 바 있다. 도시담론의 이 같은 분석은 사회과학계에 한 때 풍미했던 정치경제학적 시각을 도시공간연구에 접목시키는 노력을 반영했던 것이다. 당시 서구학계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던 공간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 한국도시공간을 해석하는 이런 도시담론을 흔히 진보적 혹은 비판적 도시담론이라 부른다.

한국공간환경학회를 중심으로 활동을 하면서 진보적 담론을 주도하고 있는 대표적 논객으로는 필자를 포함해, 최병두 대구대 교수, 김왕배 연세대 교수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이 함께 학습한 공통부문은 맑스의 정치경제학으로, 필자가 주로 도시와 지역공간의 정치경제적 해석에 우선했다면 최병두 교수는 그 지평을 생태환경 영역까지 넓혔고, 김왕배 교수는 도시의 일상생활세계의 모순을 해부하는 역점을 두고 있다. 이들 논객들이 참여하는 대표적인 학술지는 ‘공간과 사회’란 잡지다.

정치경제학적 도시담론은 자본주의적 도시문제를 비판적으로 논구하는 입장으로서, 제도권 학회와 연구기관들의 정책지향적 도시담론과 자연스럽게 대척점에 있게 된다. 제도권 학회(예:국토도시계획학회)나 연구기관(예:국토연구원)은 도시계획이나 지역개발이론을 이론적 관점으로 깔고 도시계획이란 정책 대상으로 도시공간을 논구하는 입장을 취한다. 제도권 담론 혹은 정책담론의 생산자들은 연구재원의 확보나 연구결과의 현실적 반영이란 측면에서 특권을 향유하고 있고, 또한 강단을 통해 그들의 지식을 생산하고 전파하고 있는 만큼, 주류담론으로서 지위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도구적 이론에 집착하고 이념을 경시함으로써 주류담론은 자연스럽게 사회의 지배이념과 일체화되는 편향성을 띠지만 그들 스스로는 이를 간파하지 못한다. 제도권 도시담론의 이념성은 그린벨트 해제, 신도시건설, 재개발, 수도권정책과 같은 민감한 정책사안을 둘러싸고 논쟁을 할 때 대개 시장주의적 개발주의 성향으로 나타난다.

주류(정책)담론의 진영에는 기성학계 구성원 대다수가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논객을 찾기가 힘들지만 정책논쟁에서 입장을 상대적으로 분명히 드러내는 것을 중심으로 한다면, 김경환 서강대 교수, 허재완 중앙대 교수, 최막중 서울대 교수 등을 꼽을 수 있다. 개별적인 입장차는 있지만, 이들은 대개 시장주의 입장을 공유하면서 도시공간가치의 공공성보다 이용의 경제적 효율성을 강조하는 입장을 취한다. 이들 논객들이 의견을 전개하는 대표적인 창구는 ‘국토계획’이나 ‘국토연구’와 같은 학회나 연구기관의 기관지가 주를 이룬다.

1990년대 들어오면서 한국사회의 많은 모순은 도시공간이란 삶의 터전을 통해 노정되면서, 시민운동 영역에서 도시운동이 활발하게 나타나게 되고, 이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운동담론이 도시담론의 중요한 부분으로 대두했다. 경실련의 도시개혁센터, 도시연대, 환경정의, YMCA, 서울혁신포럼 등과 같은 NGO에 참여하는 도시학자들이 주도하면서 주로 도시정책에 대한 비판제기와 대안제시를 시민운동방식으로 전개하는 가운데 도시에 관한 대안적 관점과 담론을 만들어낸다. ‘공간의 공공성’, ‘시민참여’, ‘사회적 약자의 공간권리’ 등을 도시에 관한 핵심화두로 제기하는 운동담론은 자연스럽게 현실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천담론으로서의 특징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 분야의 대표적인 논객으로는 권용우 성심여대 교수, 황희연 충북대 교수, 필자 등을 들 수 있다. 물론 이들 사이에는 이론적 배경과 이념적 입장차가 있다. 지리학을 배경으로 하는 권용우 교수는 정부의 공간정책에 비판적이면서 동시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고, 도시공학자인 황희연 교수도 비슷한 성향을 보이고 있지만, 공간정치경제학을 배경으로 하는 필자는 진보적 도시담론과 실천담론을 연계하려는 데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이들 논객들이 의견을 내는 주요 창구는 운동단체별로 발간하는 주요 출판물, 신문컬럼, 대중적 토론문 등이다.

1990년대 후반을 접어들면서 도시적 현상 중에 문화 관련 부분이 주요쟁점으로 떠오르면서 도시담론 중에 문화과학적 접근을 시도하는 논의들이 활발하게 생겨났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해 촉발된 다양한 문화이론들을 학습하고, 또한 소비적, 문화적 정체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신세대 연구자들에 의해 선호되는 이러한 논의는 기존 도시담론과 견줘 도시의 문화적 구성을 각별히 주목함에 따라 도시에 관한 문화담론의 영역을 열어가고 있다. 도시공간을 하나의 텍스트로 읽으면서 도시를 물리공간적 실체나 정치경제적 시스템으로 간주하는 주류(혹은 그에 맞서는) 담론과는 달리 도시주체의 관점에서, 장소의 관점에서 도시공간의 문화적 문맥을 읽어내려고 한다. 이들이 찾고 해석하는 도시는 실재하는 도시만 아니라, 소설이나 영화, 광고 속에 등장하는 도시에 관한 이미지나 이야기에도 주목함으로써, 도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고 있다.

문화담론으로서 도시를 해석하고 비판하는 대표적인 논객으로는 강내희 중앙대 교수, 송도영 서울시립대 교수, 홍성태 상지대 교수 등을 들 수 있다. 영문학을 전공한 강내희 교수는 포스트모던 문화에 관한 비판적 관점으로 도시공간을 ‘육체, 권력, 공간’의 차원으로 나눠 해석하는 독특한 도시읽기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송도영 교수는 도시일상 삶의 세계를 인류학적으로 규명하고 해석하는 방식으로 도시를 이야기한다. 사회학을 전공하는 홍성태 교수는 위험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차원과 도시공간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도시공간 비판론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은 그들의 관점과 의견을 발표하는 창구로 ‘문화과학’과 같은 인문학적 잡지나 독자적인 저서 출판을 주로 활용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도시의 발달단계는 성장기에서 정비기로 접어들었다. 그에 따라 도시의 미시적인 개별 장소나 건축적 공간에 대한 관심이 일면서 건축적 도시담론이 도시담론의 중요한 영역으로 등장했다. 이러한 논의는 건축이나 도시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학자나 논객들에 의해 전개되면서 언론의 주목과 함께 도시비평의 새로운 장을 열어주고 있다. 이들의 도시에 관한 담론과 비평이 주목을 끄는 것은 논의가 구체적이고 창발적이며 또한 비전적이란 점 때문이다. 건축분야에서 훈련을 받은 안목 덕택에, 이들은 도시공간을 대하더라도 개별건축과 이들이 위요된 공간의 맥락, 그 속에서 인간과 건축공간이 상호작용하는 현상을 구체적이면서 때론 형태미학적 관점으로 읽어낸다. 이를 통해 이들은 기존 도시정책과 담론을 비판하고 나아가 유토피아적인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대중적 주목을 이끌어 낸다.

이 분야의 대표적인 논객으로는 김석철 명지대 교수, 서울포럼의 김진애 박사, 양상현 순천향대 교수, 건축비평가 전진삼 씨 등을 들 수 있다. 물론 이들 사이에는 미묘하면서 중요한 차이가 있다. 최근에 ‘여의도에서 새만금으로’, ‘희망의 한반도 프로젝트’를 낸 김석철 교수는 건축공간의 논리와 실제를 국토공간 전반으로 확대에 거리낌 없는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 ‘우리도시의 예찬’ 등을 낸 김진애 박사는 특유의 강한 주관적 관점으로 도시의 건축공간이 가지는 논리를 읽으면서 정책의 잘못으로 왜곡되는 도시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 메스를 가한다. 1980년대 암울한 시절 건축학을 공부한 양상현 교수는 도시공간이 가지는 공공성의 억압문제와 대안공간(농촌)의 모색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반면, 전진삼 씨는 전문건축비평가로서 개별건축물이 만들어내는 미시공간과 그 형태미학에 대해 치밀한 해석과 비평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독자대중을 설득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5가지 도시담론은 각각의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각각의 담론을 어떠한 절대기준으로 비교형량하기가 여의치 않다. 굳이 그러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대신 담론비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중요한 함의는 한국도시의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해 상이한 도시담론간에 소통구조가 마련돼야 한다는 점이다. 여러 담론의 진영을 넘나들면서 열려진 마음으로 논의의 다양성을 학습하고 연결해내는 것은 도시담론 생산자들이 지금부터 고민해야 할 몫이다.

조명래 / 단국대 도시계획설계

필자는 서섹스대에서 '국가 주도 자본축적과정의 지역간 격차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화도시 서울, 어떻게 만들것인가', '현대사회의 도시론'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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