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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대학교재 비평인가
왜 대학교재 비평인가
  • 이민선 기자
  • 승인 2005.04.25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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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깁기 판치는 교과서…“교육 空洞化 불러올 것”

기획: 교재비평을 시작하며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있어 대학교재는 중요하지만 실제로는 언제나 뒷전이었다. 강의실의 인프라 구축, 교수법은 논하면서도 정작 수업의 질을 판가름할 수 있는 '교재'는 언급되지 않았다. 설왕설래조차 없는 사이에 한국 대학의 강의실은 수입원서가 자리를 점령해나갔다. 이것은 교재를 쓰는 목적, 방법에 대한 논의가 부족한 것도 이유이지만 무엇보다도 교재에 대한 비평적 담론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교수신문은 이 부분에 착안 아래와 같이 교재평가 기획을 준비했다. 앞으로 한 달 후부터 격주로 본격적인 교재비평을 시행한다. <편집자>

▲ © 교수신문
학생 입장에서 대학교재는 천덕꾸러기다. 한 학기만 지나면 더 이상 들쳐볼 일도 없고, 더욱이 소장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큰마음 먹고 구입한 교재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책장정리 시 솎아내 버린다. ㅇ대 사회학과 대학원 과정에 있는 신 아무개 씨가 그러한 사례. 신 씨는 얼마 전 서가정리를 하면서 학부 때 사들였던 수업교재를 정리했다. 신 씨가 집중적으로 정리한 책은 2001년 학부 전공수업이었던 박 아무개 교수의 수업교재. 계속해서 사회학을 전공하기는 하지만 허술하기 짝이 없는 내용과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번역으로 가득한 박 교수의 교재를 1~2권만 빼놓고 창고에 넣어뒀다.

대학교재는 솎아내기 1순위

사실 한국의 대학교재가 질 관리가 되지 않는다는 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예컨대 학생들 보고서만큼이나 짜깁기가 횡행하는 현실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김진방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경제학 분야에서도 일부 고학년 대상의 교재의 경우 여기저기서 짜깁기한 것으로 보이는 책이 있다”라고 말한다. 교재내용의 일관성이 없고 깊이가 부족한 교재가 종종 보인다는 것이다.

기존 내용을 ‘내 것’으로 소화하지 못한 채 바쁘게 정리하다보니 교재 내용에 한국적 현실을 많이 담아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학문 1세대가 서구이론과 현실을 무조건적으로 수입하고 이를 대학교재에 반영했던 것과 비교했을 때 상황이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영학의 경우 한국기업 경영의 문제를 수업시간에는 많이 다루지만 실제로 이를 대학교재에 반영한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현영석 한남대 교수(경영학)는 “글로벌 시대이니 미국과 일본 기업의 문제가 곧 우리 기업의 문제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금보다 5배 이상 한국과 한국기업의 문제를 교재에 반영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꾸준히 개정판을 내지 않는 것은 더 큰 문제다. 환경 분야에서의 경우 여전히 1980년대, 1990년대 자료를 사용한 채, 아직도 2000년 이후의 최신 자료를 싣지 않고 있는 현실은 놀랄 만 하다.

번역 교재 수준도 바닥을 헤매는 것은 마찬가지. 책 한권을 몇 명의 연구자가 나눠서 번역하는 경우 앞뒤 용어가 맞지 않고 문체가 틀리는 경우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현실이다. 어느 자연과학 전공 교수의 고백처럼, 이마저도 바쁜 교수들을 대신해 대학원생이 번역하고 있어 번역의 수준은 불문가지다.

물론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최근 수입 원서를 대체할 수 있는 토종 대학교재가 출간되고 있기는 하다. 한규석 전남대 교수의 ‘사회심리학’, 전의찬 교수 외 5인의 ‘지구를 살리는 환경과학’, 조동성 서울대 교수의 ‘21세기를 위한 경영학’, 김민환 고려대 교수의 ‘한국언론사’ 등은 각 전공분야별로 대표적인 교재로 손꼽히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학교재 내용에 대한 합의가 부족하고, 교재선택의 기준은 애매모호하기만 하다. 자연계열의 모 전공이 대표적인 사례. 이 전공분야에서 가장 많이 선택된 어느 교재는 한때 스무 명에 가까운 교수가 교재저술에 참여했다. 교재를 채택한 대학의 교수가 교재에 이름과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학생들이 소외감을 느낄 뿐만 아니라, 많은 대학에서 교재로 선택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그렇다고 교재 내용이 만족할 정도로 충실했던 것도 아니었다. ㄷ대 김 아무개 교수는 “각 대학에서 그 교재를 10년 정도 사용하고, 그 과정에서 출판사에서 열심히 교정한 까닭에 ‘다행히’ 내용 자체가 엉터리까지는 아니었다”라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이 전공입문 교재가 채택하는데 있어서 ‘채택률’이 기준이 됐고, 그 이전에 ‘좋은 교재’에 대한 내용에 대한 합의는 더더욱 없었던 셈이다.

대학 교재내용 합의·선택기준이 없다

번역교재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한국학계에서는 번역서에 대한 서평은 전무한 상태이고, 체계적 번역을 확인하는 시스템이 학문 분야별로 마련된 것도 아니어서 ‘제대로 된’ 번역교재를 손쉽게 구할 수 없다. 다만 강의시간에 번역교재를 사용하다가 문제점을 확인하고 인식하는 수준에서 그칠 뿐, 이러한 정보를 공유하지 못하는 상태다. 이정모 성균관대 교수(심리학)는 “전공분야별로 뛰어난 번역교재가 어떤 것이 있는지 보여줄 필요가 있다”라고 말한다.

대학교재의 전형을 제시하지 못한 채 대학교육의 질적 발전을 도모한다는 것은 사상누각에 불과하고, 이점은 대학교재의 공급자인 해당 전공분야의 교수들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홍성구 강원대 교수(신문방송학)는 “대학교재 부분을 이렇게 계속 방치하다보면 대학교육의 空洞 상황을 초래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현영석 한남대 교수 역시 “한국기업처럼 한국의 대학교육이 해외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려면 대학교재의 문제부터 개선해 나가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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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현 2005-04-25 22:28:24
과장이 심한 것 아닙니까?

신 씨가 집중적으로 정리한 책은 2001년 학부 전공수업이었던 박 아무개 교수의 수업교재. 계속해서 사회학을 전공하기는 하지만 허술하기 짝이 없는 내용과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번역으로 가득한 박 교수의 교재를 1~2권만 빼놓고 창고에 넣어뒀다.

도대체 학부 한 학기 교재가 10권쯤 되나요? 집중적으로 정리하고 1-2권 남겨두고 창고에 넣었으면 도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