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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사회경제공간으로서 접경지역』 박삼옥 외 지음| 서울대출판부 刊| 338쪽| 2005
서평_『사회경제공간으로서 접경지역』 박삼옥 외 지음| 서울대출판부 刊| 338쪽| 2005
  • 안영진 전남대
  • 승인 2005.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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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지역은 어떻게 구조화되는가...시대적 계기 살피려는 노력 부족

1990년대 초반 이후 냉전을 마감하는 역사의 흐름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고 지구촌 곳곳을 감싸고 있지만, 한반도에서는 냉전의 유령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반도 냉전의 표상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인 국토의 분단과 그 체제의 지속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반세기를 훌쩍 넘어선 국토 분단은 한민족의 삶을 내륙적이거나 도서적인 것으로 유폐시키고 자아실현의 기회를 심대하게 제약해 왔을 뿐만 아니라, 국토공간의 구조와 이용, 그리고 품격에 수많은 부작용과 문제점을 야기해 왔다.

한반도는 말 그대로 반도로서 섬과 대륙으로 통하는 두 개의 길을 가진 이른바 ‘複道’ 국가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국토가 분단되면서 남과 북은 각기 섬나라가 아니면서 섬나라로, 내륙국이 아니면서 내륙국으로 뒤바뀌게 되었다. 이러한 국토가 지닌 지리적 성격의 변화는 남북 사이에 국경의 성격을 지닌 채 버티고 있는 휴전선과 결코 무관치 않다.

이론적으로 국경은 ‘분리’와 ‘접촉’의 두 가지 기능을 함께 수행한다. 하지만 한반도의 휴전선은 냉전체제 하에서 오랫동안 접촉과 연결의 역할을 도외시한 채, 오로지 분리와 단절의 역할만을 고집해 왔다. 따라서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휴전선과 그에 인접한 넓은 帶狀 지역은 남북한 사이에 가시적 심리적 장벽으로 남아 있는 동시에 냉전의 온갖 부조리를 고스란히 안아 왔다.

이 책은 남북 분단과 냉전의 상처와 폐해가 누적되어온, 그 과정에서 한층 심화된 사회적 소외와 경제적 낙후를 면치 못하고 있는 우리 국토의 문제지역 가운데 하나인 이러한 ‘접경지역’(borderlands)을 주목하고 있다. 저자들은 1990년대 들어 남북화해 무드에 힘입어 본격적으로 시작된 접경지역에 관한 인접 분야의 발빠른 대응에 자극받은 점이 없지 않으나, 그러한 현실적 필요성에 입각한 다소 성급하고도 단기적인 접근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오히려 접경지역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과 장기적인 변화 과정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기초적인 접근의 유의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지난 반세기 동안 좋든 싫든 간에 휴전선이 수행해온 기능과 연계하여 독특한 유형과 성격으로 결정화된 접경지역의 구조와 변화에 대한 적실한 분석을 내세우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사회?경제공간으로서 접경지역의 형성과 변화를 논구하기 위해 이론적 접근, 실태 파악, 소외성과 낙후성을 화두로 한 구조 분석, 그리고 향후 연구 전망 등의 탄탄한 내용 체계를 구성해 나가고 있다.

이 책의 미덕은 접경지역을 민족의 교류와 협력의 중심지로 그리고 평화와 통일의 진원지로 만들어야 한다는 선언적 주장이나 개발과 보존이라는 정책적 당위론을 그저 주입하는데 있지 않다. 도리어 접경지역이 인간의 생활과 생락의 공간으로서 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지, 정체 및 저발전이 어떤 기제로 내재화되고 확대 재생산되어 왔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고통과 그늘이 무엇인지를 무미건조할 정도로 객관적으로 정직하게 그려냄으로써, 이 특수한 공간에 대한 독자의 관심을 끌어내고, 장차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물음을 스스로 던지게 하는데 있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숨은 메시지는 그 동안 갈등과 대립, 폐쇄와 수동을 연상시켜온 접경지역의 부정적 인식을 극복하고, 화해와 협력, 개방과 능동을 구현하는 접경지역의 긍정적 면모를 일깨워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바로 억압과 배제와 차별의 접경지역이 우리 국토의 당당한 일부로서 본래의 권리를 찾고 대접받을 때, 냉전의 일방적인 ‘경계긋기’ 자체와 이를 단초로 하여 뿌리 내린 이 지역에 대한 그릇된 인상으로 또 한번 강요된 ‘이중적’ 아픔이 치유되고 국토 통합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도 흠결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접경지역의 실태를 시대적으로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서 계기적으로 그려내지 못한 점에 아쉬움이 남는다. 무엇보다 지난 50여 년간 분단과 냉전 속에서도 시대 상황은 크게 달라져 왔고, 접경지역도 이러한 외적 환경과 상호작용 속에서 내적인 발전논리를 바꿔 왔다. 이러한 변화의 궤적과 그에 따른 접경지역의 변화 양상을 뚜렷이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

또한 저자들도 의식하고 있듯이, 통계적 지표와 구조화된 설문조사의 결과에 크게 의존하다보니 정작 지역 주민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의식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접경지역의 접근과 이용을 둘러싼 다양한 집단(예컨대 국가, 지자체, 주민)의 상이한 이해관계와 이에 따른 지역의 구조적 성격과 유형적 차이를 좀더 입체적으로 밝혀내지 못한 점이 엿보인다.

하지만 이 책에는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학문적 시야에서 소외된, 그리고 밝은 부분만을 따라가는 우리 학문의 낙후성을 자각토록 하는 주제를 발굴하여 밀도 있게 천착한 저자들의 용기와 정성어린 노력과 땀이 베여 있다. 독도의 주권과 간도의 복권을 포함한 우리 국토 사랑의 또 다른 '프론티어‘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안영진 / 전남대?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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