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야 누구나 중학교에서 대학까지 10년이 넘게 배워 온 영어이긴 하다. 그런데도 외국인 앞에서 한 마디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외국책이나 신문 잡지를 받아보는 사람도 별로 없어 보인다. 그 나라말 한 마디 몰라도 관광여행에는 지장이 없는 세상이긴 하다. 또 나라를 대표해 외국에 나가는 정치 지도자들도 태반이 통역 없이는 꼼짝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가르치는 영어의 쓸모는 도대체 무엇일까? 교과과정에 나오는 영어 교육의 목적이 빈말이 된 것만 같은데도, 이에 대한 반성이나 개선방안 같은 건 거의 눈에 띄지도 않는다.
영어를 꼭 써야 할 자리나 직장에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배우게 마련이다. 학자나 번역가, 무역업자, 통역가 등은 같은 학교를 나왔어도 곧잘 하고들 있으니, 타고난 재능이나 환경 탓도 있겠지만 무슨 다른 방도가 있는 모양이다. 한데 그런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않고, 나머지 사람들은 영어 쓸 일이 평생에 몇 번도 없는 게 사실이다. 일상 대화에 영어 낱말 섞어 쓰기를 자랑으로 아는 객기 정도가 고작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얼마나 놀라운 시간과 노력의 낭비인가.
외국말 공부는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의 4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한데 말하기와 듣기는 그 나라 사람들과의 절실하고 다급한 만남 없이는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외국에서 유아원이나 초등학교 다니는 우리 아이들은 반년만 지나면 곧잘 입과 귀가 열린다지만, 어른들은 그렇지 못한 게 사실이다. 엘에이 교포들 중에는 하루 종일 영어 한 마디 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는 말도 들었다. 교포끼리만 사귀어도 별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급한 필요가 짐짓 마련되기 전에는 말하기와 듣기 교육은 맥을 추지 못한다. 한편 읽기와 쓰기는 본인의 노력으로 극복될 수 가 있다. 고교나 대학의 교재를 보면 그 수준이 꽤 높은 편이다. 그걸 부지런히 이를테면 남달리 익혀만 나간다면 웬만한 책이나 신문 잡지를 읽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니 공부의 방향은 아무래도 이쪽으로 쏠리게 마련이다. 회화에 능통한 교사가 그리 흔하지 않은 우리의 실정과도 맞을 것이다. 일제 때 일본인 영문과 교수들은 대체로 회화를 할 기회도 능력도 없었고, 그들에게서 배운 우리 교수들도 마찬가지여서 해방 직후에는 미군이라도 나타나면 피했다는 뒷이야기도 있었다. 미국 박사들이 수두룩한 지금은 사뭇 다르긴 하다.
중등학교 사정도 따라서 많이 달라지겠지만, 들어서보다는 읽어서 얻을 게 더 많은 것이 외국말일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