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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 지방대 無대접
[딸깍발이] : 지방대 無대접
  • 교수신문
  • 승인 2001.05.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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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29 09:45:02
서울대학교의 옛 문리과대학인 인문 사회 자연대학의 3백여 교수들이 ‘기초학문을 외면말라’는 성명을 발표했다고 한다. 그 성명의 배경과 맥락은 물론 정확한 내용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왈가왈부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어 마디 얘기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우선 ‘대학 중의 대학’인 서울대에서조차 기초학문이 외면당하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과 서글픔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에서 기초학문이 외면당하는 기제는 다음과 같다. 시쳇말로 ‘돈 되는’ 또는 ‘잘 나가는’ 분야에는 여러 형태의 연구비나 사업비가 제공된다. 그런데 그냥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꼭 대학에 ‘대응자금’을 요구한다. 학교 ‘경영자’는 다른 지출을 줄이거나 다른 곳에서 대응자금을 조성한다고 말하지만, 이 대응자금은 결국 대학이 쓸 수 있는 ‘기성회비’에서 짜낸 것이고 그만큼 ‘돈 안되는’ 학문분야의 빵의 크기는 작아진다. 즉 돈 되는 분야가 잘 나가면 잘 나갈수록 그 대학의 기초학문 분야는 더 헐벗고 굶주리게 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서울대는 다를 것으로 나는 믿었다. 뛰어난 인재들과 대학에 투자되는 재원을 독점하면서, 건물을 기부하겠다는 제안에 관리비용까지 주지 않으면 받지 않겠다고 조건을 붙일 만큼 당당하고 여유있는 서울대가 아니던가. 그런 서울대조차도 기초학문 분야의 몫을 뽑아서 돈 되는 분야를 밀어준다는 것인가. 기초학문에 뿌리를 두지 않은 응용학문, 그리고 문·사·철의 교양을 결여한 전문지식은 사상누각처럼 한때는 번듯하더라도 더 번성할 수 없다는 진부한 이야기는 사족일 것이다.
그렇지만 ‘지방대’의 사정은 더 큰 서글픔을 자아낸다. 지난해 서울대에 제공된 연구비 총액은 1천5백억원쯤이라고 들린다. 내가 몸담고 있는 ‘지방대’와 비교하면 교수 수는 2.5배가량인데, 연구비는 12.5배에 달하고 있다. 교수 개인으로 계산하면 서울대 교수는 지방대 교수의 5배쯤 되는 연구비를 받는 셈이다. 물론 대부분은 이공계 응용학문분야에 집중되었겠지만 기초학문 분야의 경우도 ‘지방대’보다는 사정이 훨씬 나은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이러저러한 재단들이 연구비를 제공할 때 ‘서울대’라는 이름에 가중치를 주고 있다고 의심하는 사람이 적지 않으며, 이점은 인문사회계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유하자면, 서울대의 기초학문 분야가 푸대접의 상태에 있다면 지방대의 그것은 ‘무대접’의 상태에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까지 나서 ‘부의 창출이나 기술발전의 뒷받침’을 대학의 임무로 선포하고 있으니, 철학과를 없앴다는 어느 지방대의 소식도 이제는 남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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