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03:00 (토)
"형법이여, 개혁하라"
"형법이여, 개혁하라"
  • 곽병선 군산대
  • 승인 2005.04.0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평_『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 조국 지음| 박영사 刊| 571쪽| 2005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박종철군 물고문 사건 이후 최소한 노벨평화상을 받은 정권하에서만큼은 고문은 사라졌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믿음마저 깨버린 살인 협의 피의자 조모씨 ‘구타 사망’사건에 이르기까지 과거 군사독재정권하에서나 있을 법한 국가권력 의한 형벌권의 폭력성이 아직도 수사관행이라는 명목 하에,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다. 수많은 이들의 피 흘림 대가로 권위주의 체제가 붕괴되고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졌지만 아직까지 형사피의자?피고인에 대한 수사기관의 위법행위가 자행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실체적 진실발견’과 ‘적정절차’라는 형사소송법의 두 이념에 대한 논의는 형사소송법학을 함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형사소송법은 형사절차에 관해서 단순히 기술적으로 규정한 법이 아니라, 국가이념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절차를 규정한 이념적인 법이라 할 것이다. 법과 정치의 관계에서 법이 정치상황을 이끌어 내는 경우보다 법이 정치상황을 법의 체계 내에서 나중에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의 현실도 지금까지 많은 민주화투쟁의 산물로 형사소송법의 내용이 수차례 개정돼 오면서 ‘실체적 진실발견주의’에서 ‘적정절차의 이념’으로 점차 논의의 중점이 옮겨져 왔다. 위법한 수사를 통해 획득한 자백과 증거물에 있어서는 그 증거능력을 배제한다는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exclusionary rule)이야말로 이러한 논의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저자가 그토록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에 애착을 갖는지, 그리고 왜 그것만이 다시는 이 땅에 박종철군과 같은 국가형벌권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 여기는지를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저자는 만약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의 증거능력을 배제하지 않는다면 이는 수사기관에 의한 불법행위를 공식적으로 묵인?조장하는 일이며, 이러한 묵인은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휴지조각으로 만드는 행위”라고 진단하고 있다. 또한 “수사기관의 위법행위를 제재하기 위한 민사적 또는 행정적 대안은 이미 실패해 왔으며, 앞으로도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위법한 증거의 증거능력을 배제하지 않고서는 적정절차의 요청에 반하는 수사기관의 위법한 수사를 근절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칫 수사기관에 대해서 “헌법적 요청을 회피하라는 공개초청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 저자의 현실적 진단이다. 필자 또한 수사기관의 위법한 수사를 근절하기 위한 처방은 증거배제 이외엔 달리 다른 방도가 없다는 저자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이다. 과거 수십년 동안 아무런 거리낌 없이 행해져왔던 위법한 수사관행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생명력을 자랑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우리가 실체적 진실발견이라는 이념의 일정한 희생을 필연적으로 수반하면서까지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을 관찰하고자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단순히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이라는 하나의 법학적 이론을 설명하는 책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저자가 인식한 것처럼 이 책은 ‘형사사법의 개혁’을 지향하고 있다. 사법개혁이 사회 도마위에 올려진 이때에 이 책의 내용 하나 하나가 진정한 사법개혁을 위한 논의의 장에서 그 역할을 충실히 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저자가 책에서도 소개한바와 같이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은 “형사피의자?피고인의 절차적 권리를 명확히 하고 수사기관의 위법행위에 대한 사법적 통제를 보장함으로써 형사법제체를 합리화시켜내는데 기여해 왔으며, 또 할 것”임은 분명하다. 그렇기 위해선 무엇보다 하루라도 빨리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이 이 땅에 뿌리를 확고히 내려야 할 것이며, 또한 그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기 위해선 이 법칙의 생명을 근원적으로 유지시켜줄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저자도 인식하고 있다 시피, 그 힘은 다름아닌 일반 시민들의 형사절차상의 기본권에 대한 자각이라 할 것이다. 이 점에 있어 이 책이 좀더 쉽게 쓰여져 법전공자뿐만 아니라 비전공자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교양책 수준으로도 출간되었으면 하는 욕심을 가져본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수사기관의 위법한 수사관행에 종지부를 찍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면서 저자가 책 첫 장에 밝힌 것처럼 이 책을 故 박종철군에게 바쳤다면 우린 이 책을 토대로 하여 이룬 현실을 그에게 바쳐야만 할 것이다. 조국교수의 학문적 노고에 사의를 표하면서, 수사 일선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곽병선 / 군산대 형법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