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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단 외우기' 수학능력과 무관..."전혀 도움안되는 촌극"
'19단 외우기' 수학능력과 무관..."전혀 도움안되는 촌극"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5.04.04 0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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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진단: 수학자 36인이 본 '19단 외우기 열풍'

‘19단 외우기 열풍’이 불고 있다. 그리고 이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그러나 수학교수 30인에게 의견조사를 실시한 결과 90% 이상이 이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표명할 정도로, 19단은 수학의 본질은 물론 한국의 수학교육을 건강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 너무나 쉽게 드러났다. 도대체 이 근거 없는 열풍의 발원지는 무엇이며 그것이 끊임없이 확대되는 우리 사회의 왜곡된 학습욕구의 정체는 무엇일까. 과연 19단의 수학적·교육학적 진실은 무엇인지 짚어보고 이 열풍을 가능케한 사회적 조건을 엿봤다./편집자주

 

언론사가 주동한 ‘인도 19단 외우기 열풍’은 ‘헛다리 벤치마킹’의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수학전공 교수 36명에게 물어본 결과 ‘19단 외우기’가 “수학교육에 악영향을 미칠 것”(18명)이라는 답변과, “수학학습능력 증진과 상관없다”(12명) 등 부정적 답변이 80%가 넘었다. “수학능력이 뛰어난 일부 학생들에게는 수와 친숙해지고 계산이 빨라져서 효과적일 것”이라는 답변(4명) 또한 “평범한 학생들에게는 19단 외우기보다 더 효과적인 교육방법이 많을 것”이라고 답해 실제적으로 긍정적으로 본 교수들은 단 2명에 불과했다.

김태균 공주대 교수(수학교육)는 “수학의 기본은 연산이다. 대수, 기하, 집합이 모두 연산에서 출발한다. 19단은 연산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고 그 원리를 외우는 과정에서 깨닫게 하는 긍정적 요소도 많다”라고 말한다. 박형민 목포대 교수(가환대수)도 “수를 자꾸만 다루면 수리능력이 아무래도 빨라지고 개발이 된다”라고 밝힌다. 그러나 두 교수의 견해 또한 살펴보면 초등학교 교육의 현실과는 별 상관없이 ‘數’를 전공한 학자로서 그것이 갖는 수학적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기 때문에 ‘암산’에 대해서는 입장이 유보적이다.

이처럼 학원가와 일부 학교에서 열풍처럼 번지는 ‘19단 외우기’가 전문가들이 보기에 “쓸데 없는 일”인 까닭은 그것이 갖는 수학적 근거, 학습능력과의 관계, 교육여건에서의 합리성 등이 터무니없이 빈약하기 때문이다.

수의 패턴 익히기, 구구단으로 충분

19단 옹호론은 ‘19단을 외우면 기본적인 수리능력이 발달한다’는 주장으로 시작한다. ‘큰 수에 겁을 안내게 된다’, ‘수의 알고리즘을 은연중 익히게 된다’는 것이 그 근거로 제시된다. 이에 대해 홍진곤 건국대 교수는 “19단에는 수학적 구조가 별로 없다. 단순기계적인 훈련 이상의 의미는 없다”라고 잘라 말한다. 수의 기본적인 패턴 익히기는 구구단으로도 충분하고, 구구단을 활용해 큰 수를 계산하는 게 오히려 수의 알고리즘을 익히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큰 수에 겁을 먹고, 남보다 잘 외지 못하는 것에 대한 열등감을 심어줄 가능성” 등의 역효과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그 다음 ‘계산이 빨라진다’는 주장이 뒤를 잇는다. 이것은 이론적으로는 맞지만 현실을 고려하지 못해서 비합리적이다. 백석윤 서울여대 교수는 “인도의 경우 19단을 활용할 수 있는 케이스를 많이 만들어서 문제를 내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라고 지적한다. 이중권 동국대 교수도 “19단을 외운 아이들을 주변에서 많이 봤는데, 문제가 나오면 구구단으로 풀지 19단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외운 것을 금방 잊어먹더라”라고 경험담을 전한다.

세계 수학계의 흐름이 계산력이 바탕이 되는 대수, 방정식 등의 이론수학보다는 사고력과 상식적인 추리력, 창의력 등을 중시하는 이산수학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으로 볼 때 ‘계산’의 강조는 시대에 뒤처지는 느낌까지 준다.

19단 옹호론은 뒤가 캥겼는지, ‘인도’라는 후광을 통해 배후를 두둑히 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수에 강한 인도가 19단을 교과과정에서 오래 가르쳐왔고, 이를 기반으로 우수한 인재들을 길러 IT 강국이 됐다는 것이다. 19단과 IT강국의 폭력적 결합은 논외로 치더라도 인도에서 19단교육이 보편화돼 있는 것에 대해서 모 대학 교수는 “誤報”라며 실제 인도에서 보편화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인도가 수학강국인 것은 “심도 깊고 강도 높은 수학교육을 중고교 때 많이 시키기 때문”인 것이지 19단이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는 것. 또한 인도가 수학에 강한 문화적 이유도 “그 나라 사람들이 복잡성의 사유를 즐기고 당연시해온 큰 맥락에서 살펴야지, ‘19단’이라는 아주 작은 아이템을 도입해서 그 문화를 이식하겠다는 생각은 상식 이하”라는 진단도 내린다. 윤정호 이화여대 교수(수치해석)는 “인도수학자들이 뛰어난 건 사실이지만, 정말 최고의 학자들은 유태인들이 많다”라고 강조하며 “하고 싶은 말 다하고, 상대방의 아이디어를 잘 활용하는 브레인스토밍이 강한 민족의 속성이 영향을 미친다”라고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19단 캠프가 마지막으로 내세우는 것은 이른바 ‘두뇌개발’이라는 일반론이다. 특히 19단을 외우면 좌우 뇌가 균형적으로 발달한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과학적 사실과 정반대의 주장이라서 당혹감마저 안겨준다. 민윤기 충남대 교수는 “인지학적으로 볼 때 저장능력은 좋아지겠지만, 반면에 추리능력은 개발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저장기능을 활용할수록 여러 가지 원리와 논리를 스킵하는 경향이 생겨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배문정 서울대 강사(인지심리)는 “우측뇌는 공간지각을 하고, 좌측뇌는 세밀한 언어처리 등을 하는데, 19단을 외운다고 우측뇌가 발달하지는 않는다”라고 ‘좌우뇌 발달설’을 일축한다. 배 강사는 “주산은 다르다”라면서, “주산은 시각과 촉각을 골고루 사용하고, 곱셈 말고도 덧셈, 뺄셈, 나눗셈도 같이 하기 때문에 뇌의 여러 기능이 사용된다”라고 차별화 했다.

사회현실을 수학적 교육모델로 개발해야

이렇듯 전문가들이 바라본 ‘19단 외우기’의 장점은 잘못된 근거에 기반한 오류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과학적 오류를 벗어나서 우리 교육현실에 비춰볼 때 ‘암기교육’과 ‘결과’만을 중시하는 풍토를 더욱 고착화시킬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19단이라는 게 엄마들이 옆집 아이와 비교하기 딱 좋은, 1등이 되기 위해 아이들을 ‘암기머신’으로 만들고 있는” 게 현재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박은홍 아영교육문화연구소 연구원은 “잘 외우는 것이 공부를 잘 하는 것이라는, 학습에 대해 잘못된 관념을 심어줄 수 있다”라고 우려한다. 이것이 학자들이 5학년 이하 아동에게 가르치는 걸 절대 반대하는 핵심적인 이유다.

“개념을 모르는 상태에서 도구만 주니까 내용만 조금 바뀌어도 청맹과니가 돼 버린다”(황동주 교육개발원 연구원), “논리적 사고, 다양하고 유연한 사고가 바로 수학의 본질인데 19단은 그런 것에서 멀어지게 만든다”(백석윤 서울여대 교수) 등의 지적은 그동안 잘못된 우리 교육현실에 끊임없이 가해진 비판이었는데, 이런 현실비판과 극복의 에너지는 ‘열풍의 광기’ 속에서 단숨에 쓰러져버리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중권 동국대 교수는 “강남에서는 별 희한한 방법이 수학문제를 푸는 데 다 동원된다. 심지어 학습지를 보면 책 한권 전체가 숫자 하나씩을 늘려가면서 같은 유형의 문제를 풀게 해서 ‘유형’을 외우게 하는 것도 있다”라고 개탄한다.

요즘 수학이 강조되는 것은 우리의 다양한 삶의 유형이 수학의 세계에서 발견되고 있다는 것, 따라서 거꾸로 생각하면 수학을 통해서 사회 여러 방면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그런 ‘상동성’의 원리에 대한 깨달음에 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벽에 부딪혔을 때 막힌 것을 뚫고 꼬인 것을 푸는 수학적 사고의 다층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하지만 ‘19단’으로 제출된 ‘신학습법’은 이런 “수학의 학문적 본질에 대한 학습효과는 봉쇄하고, 맹목적으로 학습하고자 하는 ‘욕구’를 늘릴 뿐”이라는 게 이상욱 수원대 교수의 지적이다. 이 말은 “한국의 높은 교육열 운운은 교육을 빙자한 높은 출세욕구”라는 점을 지적해온 최봉영 항공대 교수(국문학)의 말과 어딘지 닮아 있다. 전명진 세명대 교수는 일선 교사들이 ‘19단’에 무작정 끌려가지 말고 “사회현상을 수학적인 모델로 개발해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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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에 2005-04-15 18:18:58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20진수가 아닌 10진수를 쓰기 때문입니다. 얘를 들어, 십진법 하에서, 46의 의미는 40+6 이고 35의 의미는 30+5 이지요. 그래서, 46과 35 의 곱은 46*35 = (40+6)*(30+5) 이고 답은 배분법과 구구단을 사용해 세 번의 덧셈으로 쉽게 계산 됩니다: (4*3)00 + (4*5)0 + (6*3)0 + (6*5) = 1610.

이 경우 20진법하에서는 46*35 의 의미는 (40+6)*(20+15) 이고, 배분법과 19단을 이용하면 세 번의 덧셈으로 다음과 같이 계산 됩니다: (4*2)00 + (4*15)0 + (6*2)0 + (6*15) = 1610. 따라서 19단을 쓴다고 해서 십진수 계산 능률이 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19단을 (뇌에) 저장하려면 구구단에 비해 다섯 배 이상의 메모리가 요구되는데 계산 능률의 향상은 거의 없으니 비효율적인 것이 명백합니다.

19단 2005-04-06 15:02:55
구구단을 수학을 잘하기 위해서 외움니까? 원리 되로라면 3 x 6은 3을 여석번 더하면 됩니다. 그러면 덧셈만 하면 곱셈은 필요없지 않습니까? 간단하게 생각을 합시다. 인기없는 수학을 누가 계속공부하겠습니까? 그것도 초등학생들이... 그냥 구구단 보다는 19단을 알면 편리합니다. 19단을 알면 수체계를 보다 규칙적으로 서술한 인도의 베다수학과 같이 미분적분과 같은 개념을 수를 이용하여서도 알수가 있다고 하니, 획일하된 수학교육에 쉽게 지겨워하는 학생들의 대안으로도 발전가능성이 있으니 나쁠것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한가지만 질문을 합시다. 왜 중고등학교에서 함수, 미분, 적분 등을 배움니까? 그것도 똑같이 말이죠. 사실 이것 몰라도 몇개 전공과목 빼고, 전공하거나 살아가는데 아무문제가 없습니다. 이것은 저의 생각이 아니고 미국의 유명한 수학자의 말이기도 합니다. 수체계만 가지고도 위의 이론들은 설명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19단 외우면 좋죠, 아니 외우게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