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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풍기의 한자성어로 보는 세상(3): 渾金璞玉
김풍기의 한자성어로 보는 세상(3): 渾金璞玉
  • 김풍기 강원대
  • 승인 2005.04.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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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좋은 선생일까?

渾金璞玉(혼금박옥): 정련되지 않은 금과 다듬어지지 않은 옥돌. 즉 자질은 훌륭하지만 그것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

세월이 갈수록 점심을 혼자 먹는 일이 부담스러워진다. 그리 크게 나이 먹은 것도 아닌데, 요즘 들어 부쩍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런 저런 상념에 땅만 보며 식당 계단을 올라 가는데, 누군가가 아는 체를 한다. 기억이 아련하다. 그이가 자기 이름을 댔을 때 비로소 오래 전에 가르쳤던 제자라는 게 떠올랐다. 반가운 마음에 요즘은 어찌 지내느냐고 물었더니, 대학을 졸업한 뒤 어떤 기업의 홍보팀에 들어가서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취직해서 잘 지낸다는 제자를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와 헤어져서 혼자 점심을 먹으며 생각해 보니 참 기묘하게 맺어진 인연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나는 강원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 생활을 잠시 했다. 그이는 당시 내가 담임을 맡았었다. 막 고등학교를 들어온 1학년과, 막 발령을 받은 초임 교사로서 우리는 만났다. 그이는 눈에 띄는 학생은 아니었다.

하루는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폭력 사건이 벌어졌는데, 그 중의 한 학생이 나의 담임반이라는 것이다. 놀란 마음에 얼른 뛰어갔다. 친구 생일 파티를 하다가 다른 학생들과 시비가 붙어서 패싸움을 했다는 것이다. 이튿날 이 사건 때문에 퇴학이냐 전학이냐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을 때 나는 담임이 잘 알아서 지도해 보겠노라는 주장했다. 그 뒤로 그이는 아주 조용하게 한 해를 잘 지냈다. 나 또한 교직을 그만 두는 바람에 그의 뒷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바로 그이를 오랜 세월이 흘러서 만난 것이다.

내가 그 때 그 학생을 적극 옹호했던 것은 그이의 기본적인 자질이 훌륭하다는 걸 눈치 채서가 아니었다. 젊은 선생으로서 자기 담임반 학생을 지도해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그랬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만나고 보니, ‘선생’이란 학생의 현실태만을 보고 평가해서는 자격이 없다. 그의 숨겨진 재능을 보고 미래를 열어주어야 최고의 선생이 될 수 있다.

학생들의 머리 색깔이나 귀고리 갯수에 따라 눈쌀을 찌푸리는 나는 정말 선생 노릇을 잘 하고 있는 것일까.

김풍기 / 강원대 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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