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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대 박물관·사회과학연구소 ‘하와이 초기 한인 이민자 묘비 조사 보고서’ 국내 최초로 발간
창원대 박물관·사회과학연구소 ‘하와이 초기 한인 이민자 묘비 조사 보고서’ 국내 최초로 발간
  • 하영 기자
  • 승인 2021.08.10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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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대학교(총장 이호영)는 10일 창원대학교 박물관・사회과학연구소가 광복 76주년을 앞두고 1900년대 초반 하와이 이주 초기 한인 이민자들의 묘비를 최초로 조사한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 보고서는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에서 힘들게 일하며 조국의 독립자금을 대는 데 앞장섰던 무명 독립운동가들의 마지막 기록인 묘비가 방치되고 파괴돼 사라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최소한의 기록을 남기는 자료로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평가다.

하와이 초기 한인 이민자 묘비 조사 보고서 표지
하와이 초기 한인 이민자 묘비 조사 보고서 표지

 보고서는 창원대학교 박물관이 1903년~1905년 하와이로 이주한 1세대 한인 이민자들의 묘비를 조사한 것으로, 안중근 의사 기부자 명단과 당시 하와이 이민자 선박 명부 및 여권발급 기록 등 현재 남아있는 다양한 자료를 통해 비석의 주인공을 확인한 최초의 연구이자 새로운 하와이 이민사 연구이다. 또한 당시 하와이 사회·경제사적 상황, 이민자 집단의 정체성, 이민 세대별 언어 사용 습관 등 그들의 삶과 죽음을 알 수 있는 복합적 학술자료이다.

 창원대학교 박물관과 사회과학연구소 지역미래링크센터(現 지속가능발전센터)는 2019년 ’일제강점기 미국 하와이 한인 이주 및 독립운동 자료수집과 현지조사 사업‘을 수행하고, 그 결과로 ‘죽은 자의 트랜스내셔널 공간 하와이 빅아일랜드 초기 한인 이민자 묘비’라는 제목의 이번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하와이 현지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하와이 빅 아일랜드에 정착해 삶을 마감한 초기 한인들의 묘지와 묘비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

 보고서는 20세기 초 하와이로 간 1세대 한인 이민자의 무덤이 방치·파괴되는 것을 안타까워한 하와이대학교 힐로캠퍼스(The University of Hawai'i at Hilo)의 세리 I. 루앙피닛(Seri I. Luangphinith) 교수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2019년 7월 21일~31일 루앙피닛 교수의 안내로 문경희 창원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와 김주용 창원대학교 박물관 학예실장이 초기 한인 이민자가 가장 많이 생활했던 빅 아일랜드에서 조사를 진행했다. 이에 힐로 알라에(Alae) 공동묘지에서 136기를 확인하고, 코나 이민센터 호룰로아(Holualoa) 커피농장 10기, 캡틴쿡 6기, 코할라 침례교회 3기를 찾아 기록하는 등 총 155기를 조사했다.

 현장 조사에서는 희미해진 비문 판독을 위해 한국에서 먹과 한지를 직접 가지고 가 탁본했고, 탁본 자료는 이후 창원대학교 박물관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비문해독, 각종 문헌, 기록, 사진 등의 자료와 비석의 주인공을 대조해 도출된 내용을 보고서에 담았다.

 묘비의 주인공들은 하와이 빅 아일랜드 여러 지역에 위치한 사탕수수농장 또는 커피농장 주변 지역에 정착해 살다가 생을 마감한 일반 한인들이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하와이 초기 한인을 조명하더라도 이민자 중에 널리 알려진 정치지도자나 독립운동가, 종교지도자 등에 집중됐지만, 이번 보고서는 기존 하와이 한인에 대한 연구나 예술 작품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평범한 일반인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더하고 있다.

 공통적으로 묘지와 묘비는 주인이 누구인지, 언제, 어디에서 생을 시작하고 마감했는지에 대한 정보는 물론 그들이 이민자로서 삶을 살면서도 한인이라는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았고, 나아가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귀속감을 가지고 살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조사된 비석 중 50% 이상의 묘비에 고향이 기록돼 있었으며, 고향 앞에는 ‘대한(大韓)’, ‘조선(朝鮮)‘이라는 빼앗긴 조국의 국명이 새겨져 있고, 이름이나 고향이 한글로 기록된 비석도 흔히 찾아볼 수 있었다. 

 조사한 155명의 비석 주인 중 48명이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 구제를 위한 변호비용 모금 자료인 「안중근 의사 의연금 납부 명부」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도 초기 이민자들의 국가적 소속감과 귀속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중요한 사례이다. 광복절을 기념해 무명의 독립운동가를 확인하고 조명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가운데 하와이에 잠들어 있던 비석을 통해 시대의 암흑기를 이겨내고자 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보고서는 크게 초기 하와이 한인 이주사, 초기 한인 이민자 묘비조사 내용분석, 초기 한인 비석에 대한 고찰과 각 자료 대조에서 확인된 명단 및 사진이 첨부된 부록으로 구성돼 있다. 

 현장 비석 탁본과 무덤 조사를 담당한 창원대학교 박물관 김주용 학예실장은 비석에 새겨진 내용을 분석해 이민자들의 생애사 복원을 시도했고, 비석의 형태를 고고학적 자료해석기법인 순서배열법을 통해 자료를 정리한 후 한인 이민자 비석의 시대별 변화양상을 검토하고 의미를 살펴보았다. 창원대학교 국제관계학과 문경희 교수는 비석을 통해 볼 수 있는 빅 아일랜드 한인 1세대 삶의 궤적에 대해 주목했다. 일제강점기에 타국에서 일본인 등 다른 에스닉 타자(他者)와의 관계를 통해 초기 한인 이민자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귀속성을 어떻게 구성했는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이는 그동안 하와이 초기 한인의 이주사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됐지만, 비석을 기초사료로 한 최초의 연구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하와이 현지 조사단장인 창원대학교 문경희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세월에 따라 마모되거나 익숙하지 않은 옛 한글과 한자로 기록된 비문을 읽을 수 없어서 조상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는 한인 후손들에게 올바른 정보가 제공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으며, 완전히 훼손되어 사라지기 전에 비석의 보존, 관리, 기록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윤상 창원대학교 박물관장은 “76주년 광복절을 맞아 현재의 우리가 마음 편히 살 수 있게끔 해주신 많은 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건이 된다면 하와이 여러 섬을 연차적으로 조사해 국내뿐 아니라 해외 무명 독립운동가를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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