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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사를 말하다: 20년간 구술사 해온 정근식 서울대 교수
구술사를 말하다: 20년간 구술사 해온 정근식 서울대 교수
  • 정리 강성민 기자
  • 승인 2005.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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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로서의 구술사 연구…‘소리’를 ‘말’로 바꾸다

구술사가 많은 학문 분야로 편입돼 지배적으로, 부차적으로 활용되면서 그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정근식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지난 1980년대5·18연구부터 구술사를 활용하기 시작해, 제주 4·3연구, 한센병력자 연구, 사할린 귀환자 연구에서 구술사를 적극적으로 추구해온 대표적인 학자다. 그는 사회학과 인류학, 역사학 분야에 걸친 공동연구를 통해 각 학문에서의 구술사 방법론을 겪어본 몇 안되는 학자이기도 하다. 그의 개인적인 구술사 연구의 사연과 함께 방법론적 고민을 들어봤다. 아래는 정 교수가 말한 주요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 편집자주

구술사적 방법론은 이중성을 띠는데, 즉 증언을 기록한다는 객관성의 차원도 있지만, 이와 달리 신세타령과 같은 주관적인 입장의 경험들도 드러나게 되는데 이것을 어떻게 연구에 반영할 것인가다. 과거의 숨겨진 일들을 들춰내기 위해 구술사 방법을 취하면 어떤 문제들이 발생하는가에 대한 반성이다. 두 번째로 구술을 받고 기록하고 풀어내고 하는 것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를테면 언어의 순수성의 문제다. 구술은 순수상태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 구술을 들으려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 사이에서 이뤄진다. 이때 구술을 들으려는 사람의 의지가 강하면 그의 문제의식에 따라서 편집되거나 혹은 어떤 부분은 증언되고 어떤 부분은 증언되지 않게 된다. 따라서 구술을 듣는 사람의 주관성이 작용하게 된다.

또한 정리의 맥락에서 보면, ‘증언의 신체성’이란 게 있다. 실제로 많은 부분이 생략되거나 생략 부분이 의미들을 많이 갖고 있거나 방언을 그대로 적지 않을 때 생기는 문제점이 있다. 즉 말이라는 것은 시간의존적이고 장소의존적이고 맥락의존적인데, 이것이 글로 옮겨지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생긴다. 이런 것들을 어떻게 객관성을 담보한 자료로 써먹을 수 있을까, 어떻게 일반화할 수 있을까. 질문이 한두 개가 아니다.

또 인터뷰라는 것은 굉장히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데, 깊이의 측면에서 구술사연구는 우월할 수 있지만 시간소요 때문에 넓이의 측면에서 멀리 나가지 못한다. 그리고 증언은 순수공간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 항상 정치적 맥락 속에 놓여 있다. 즉 학생이 질문하는 것과 교수가 질문하는 것, 90년대에 질문하는 것과 오늘 질문하는 것이 다르다. 또 너무 오래된 사건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원래 구술사가 마이너리티와 교육을 덜 받은 사람들을 위해 개발된 건데 학력이 낮다거나 기억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에게 의존할 경우 예상 못할 문제들이 발생하게 된다. 이런 이들은 육하원칙에 의해서 정확하게 설명하는 능력이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언자료가 체계적으로 수립되지 않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수집하고 보관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작년에 처음으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한때 정신문화연구원에서 구술사 사업을 했었다. 일부 기관에선 국가가 그것을 담당해야 한다는 문제제기도 나온다. 좀더 체계적인 준비와 작업이 필요한 연구 분야다.

그리고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시간에 따라 동일한 사람이 과거의 한 사건에 대해 10년 전과 오늘날 어떻게 다르게 증언하는가의 차이에 대한 조사 작업이 전혀 없다. 또한 성별에 따라 증언이 어떤 차이가 나는가에 대한 세분화된 연구도 없었다. 또는 지배자 입장과 피지배자 입장을 나눠 그들간 어떤 다른 방식으로 기억되는가를 본 방법론적 연구가 없었다.

최근 많이 이뤄지고 있는 분야는 한국전쟁경험, 한센병력자들, 그리고 과거에 중요한 정책결정을 담당했던 사람들에 대한 구술채록이다. 이에 대한 체계적인 자료수집훈련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문제다.

구술은 다른 의미에서 자신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정리하고 있는가에 대한 주관적 의미부여에 대한 하나의 발견도구로서의 역할을 한다. 즉 자기해방적 의미다. 과거의 어떤 이유로 인해서 큰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구조적으로 침묵 당해왔던 것을, 정신적 심리적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말을 하게 함으로써 자아해방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봤을 때 심리치료적인 효과가 있다. 이런 부분이 근래에 새로 주목되고 있다. 이것은 사회학적 접근이라기보다는 임상심리적 접근이랄 수 있다. 그런 것은 역사적, 정치적 요인 뿐만 아니라 인구학적 요인이 있다. 갈수록 노령화가 심화되고 노인들의 고독이나 소외가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다. 핵가족화 되고 가족이 붕괴되는 상황에서 노인들이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거나 말동무할 상대가 없다. 예전에 이주자가 많은 미국에서 소수 언어족들이 겪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단일언어권이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없었는데 근래 외국인노동자들이 생기면서 커뮤니케이션 단절이 생겨 그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노인들이 소외되는 것은 증언을 드러내주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산업으로 성립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나는 1980년대 후반 5.18 참여자들의 채록연구에 참여했다. 그땐 젊은이들을 상대로 했고 사건 이후 시간이 9~10년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방법론상으로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다가 제주 4.3사건을 채록하다보니 심하게 부상당한 사람들은 말을 못하더라. 그들은 몸으로 밖에 표현하지 못했다. 그런 것을 경험하면서 말이 완전한 기록은 아니구나 생각했다.

한국전쟁 겪은 사람들 역시 말이 자유롭지 못하다.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여기서도 말의 한계를 느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아직 공개 안됐지만 북한으로 돌아간 장기수 할아버지들 채록이 많이 돼있다.

1990년대 중반으로 가면서 말만 옮기는 것은 한계가 있구나 느끼면서 영상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어떤 표정으로 말하는 가를 포착하는 것이다. 영상채록의 중요한 부분이 장기수 할아버지들이었다. 그분들이 돌아가신 다음에 공개한다는 조건하에 채록했다. 근래 영상채록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교육사부분에서도 이쪽 연구방법을 취하려 한다. 문헌만으로는 전부 커버할 수 없는 분야에서 구술사 연구는 중요하게 채택되고 있다.

구술증언 채록은 어느 시기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일제 말과 한국전쟁 시기가 굉장히 큰 덩어리인데, 이들의 나이가 현재 80일 경우 60년 전 일을 증언하는 것이다. 내 개인적인 연구는 5.18 참여자들에 대한 채록, 한국현대사 해방정국시절에 활동했던 자들에 대한 기록, 한센 병력자들에 대한 구술증언, 그리고 사할린에서 다이아스포라 상황에 있는 조선 까레이스키에 대한 증언채록을 해왔다. 최근에는 한국전쟁 참여자들에 대한 증언채록, 경성제국대학이나 해방직후 서울대 격변기 교육관계자들에 대한 증언채록을 한다. 그래도 가장 극적인 것은 한센병력자들에 대한 증언채록이었던 것 같다. 그것 자체는 치료적인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장 말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이들이다. 그들은 말을 하고 있음에도 하나의 ‘소리’로서만 여겨지는 것이다. 침묵 당한다는 의미는 정치적으로 억압받는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말을 해도 말로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의미가 크다.

지배층의 경우는 그건 비밀과 관계된 것일 경우 구술사가 필요하다. 현실과 만들어진 문헌 사이에 괴리가 클 경우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비교해보면 정치적으로 억압당해 침묵당한 사람들 비중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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