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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찬 교수의 ‘한자 어원학 산책’(2): 天
최영찬 교수의 ‘한자 어원학 산책’(2): 天
  • 최영찬 전북대
  • 승인 2005.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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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알기 위해서는 天을 알아야 한다”

▲ © 일러스트 이승희
“하늘은 사람의 시초이며 부모는 사람의 근본이니 사람이 궁하면 그 근본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면서 괴롭고 피곤하면 하늘을 부르지 않은 이가 없고 병으로 고통스러우면 부모를 부르지 않은 이가 없다” 사마천이 사기에서 하는 말이다. 하늘은 지상을 뒤덮고 있는 광대한 공간이지만 거기엔 무언가 초월적인 힘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건 고대의 어느 민족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소박한 사유였다.

天이라는 개념은 모든 시대를 통해 또 모든 영역에 있어서 사유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왔다. 일찍이 동양문화에서는 우주의 끝없는 창생과 순환의 모습을 물리적 자연의 우주로서가 아니라 인간이 바라보는 인문적 우주로 파악했다. 하늘은 高明하여 덮지 않은 것이 없으니 知를 상징해왔고, 땅은 博厚하여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있으니 德을 상징해왔다. 中庸에서도 말했던 바와 같이 “인간을 알기 위해서는 天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동양문화의 기본정신이다.

동양에서의 하늘은 고원하여 신비롭기만 한 세계가 아니었다. 우리의 시조 단군을 낳은 환웅의 고향이 하늘이었던 것처럼, 우리의 정서속에는 하늘이 결코 통래 불가능한 세계가 아니었다. 선행을 하면 하늘에 올라갈 수 있고 악을 지으면 낙향 할 수 있는 가깝고도 친근한 하늘이었다. 天地는 하나의 짝이었기에 그 둘은 전혀 다른 세계가 아니었다.

天자의 기원은 이러한 동양문화의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天자를 大자위에 一자를 첨가하여 上天을 지시하고 동시에 지고무상을 뜻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說文에 의하면 天은 머리, 이마 그리고 꼭대기의 의미를 갖는 顚자와 동의어다. 고대에서는 하늘이 바로 머리가 됐다. 갑골문과 금석문에서는 직접 인간의 모습을 그려 天을 형상했다. 곧 인간의 모습에서 특히 머리윗부분을 돌출시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天자를 기원설에서 보면 天자에서 맨 위의 一자는 한일자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天자는 큰머리를 갖는 사람을 형상한 것이다. 天자가 만들어질 때는 아직 조직적인 천체라는 개념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天자가 우리들의 머리위에 있는 광범위한 하늘로 쓰이지는 않는 것 같다. 고대에서는 이마에다 먹물로 문신하는 형벌인 묵형을 天刑이라고 했고, 마융은 직접 “이마에 묵형하는 것이 天이다“라고 했던 것을 보면 짐작이 간다. 머리의 형상이 하늘이라는 의미로 가차돼 사용됐던 시기는 대략 周대로 추정된다.

인체에서 가장 윗부분이 머리이기 때문에 天자는 머리를 형상화해 높다는 의미가 제일 먼저 나왔고, 그 다음 넓다는 의미로 확장됐다. 그리고 天자에 가치의 의미가 첨가되면서 존경과 경외의 대상인 신이나 인군의 의미로까지 사용되기에 이른 것이다. 오늘날 사용된 天자에 내포된 의미를 종합해 보면 인격천, 형이상학적천, 도덕천, 자연천, 존귀성과 선천성을 뜻하는 천 등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대략 서주시기에 이르기까지는 대부분이 종교적인 의미로 天의 개념이 사용됐다. 주대말기 제자백가의 학문이 흥기된 이후 많은 학자나 시인들의 사상 속에 이성의 빛이 들어 天에 대한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어졌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天을 도덕적인 것과 대자연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즉 도덕천과 자연천이다. 이러한 天개념의 사상사적 변천은 인본사상의 대두로 말미암아 인간이 신의 속박에서 점점 벗어나는 과정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아무튼 오늘날까지 전승되어온 天자의 의미는 여전히 종교적, 형이상학적, 도덕적, 자연적, 존귀성과 선천성 등의 의미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최영찬 / 전북대 중국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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