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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에만 몰두하면 언어의 폭이 좁아진다
전공에만 몰두하면 언어의 폭이 좁아진다
  • 유무수
  • 승인 2021.08.03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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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생명과학자의 서재』 김규원 외 11명 지음 | 담앤북스 | 256쪽

더 넓고 깊고 새로운 사유를 위한
독서체험과 독서의 유용성

    
이 책은 탐독사행(探讀思行)이라는 독서모임 회원의 공동작품이다. 생명과학 분야에서 활동하는 회원들은 읽을 책을 탐색하고, 그 책을 읽으며 사유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겨 결실을 보자는 뜻에 공감했다. 회원들은 2∼3개월에 한 번씩 모여서 서로 책을 추천하면서 읽고 토론했다. 전공에만 몰두할 때 언어의 폭이 좁아지는 것을 느낀 회원들은 인문·사회·경제·역사·예술·문학 분야의 책을 읽었다. ‘행(行)’의 일환으로 다른 이들에게도 권할 만한 책을 선정하여 소개해보자는 회원의 제안으로 책을 출간을 했다. 

병태(病態)생리학자인 한 회원은 새 학기 강의 첫 시간에 『삶을 바꾼 만남』을 학생들에게 소개한 적이 있었다. 이 책은 정약용이 양반다리로 연구에 몰두하여 복사뼈에 세 번 구멍이 났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런 정약용에게 황상이라는 15세 제자가 있었다. 황상은 열등감과 패배감에 묶여 있었다. 제자는 스승의 격려에 힘입어 정진했고 결국 추사 김정희도 만나고 싶어 하는 최고의 시인이 됐다. 어느 날 졸업생이 그 첫 시간을 언급했다. 그 책과 교훈 덕분에 대학생활을 성실하게 잘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책은 교육자로 강단에 서는 교수에게 “우리가 교육을 통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깊어지게 했다.

한방신경정신과 전문의인 한 회원은 삶에 큰 혼란과 시련이 닥쳤을 때 『다산의 마지막 공부』를 읽었다. “이제부터 죽는 날까지 마음 다스리는 일에 힘을 다하고자 하여 경전공부하는 일을 『심경(心經)』으로 맺고자 한다. 아! 능히 실천할 수 있을까”라는 문장이 심금을 울렸고 마음 다스림의 힘겨움을 고뇌하던 다산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회원은 책을 통해 다산과 대화하면서 심신을 수양할 수 있는 회복력을 공급받았다. 줄기세포 생물학자인 한 회원은 해외 학회에 갈 때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라는 자기계발서를 읽었다. 협상은 친절하고 상냥하게 할 것이며, 한 번에 끝내지 말고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적용하여 호텔의 특별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고 학회에 더욱 편하게 집중할 수 있었다.

그 외 모임의 회원들은 상황에 따라 해체되고 통합되는 뇌기능, 걷기를 통해 누릴 수 있는 축복, 죽음을 마주하며 살기, 공감과 소통을 가꾸는 삶, 마음챙김 명상을 통한 의식 확장의 의미, 늙어가며 낯설어지는 자신에 대한 성찰, 미생물과 공생하는 삶의 현실,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심미안, 새로운 세상을 소망했던 정도전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관점을 나누었다.

코로나19는 일상을 급격히 바꿔버렸다. 폐업 가게가 늘어나고 있으며 사회 전반에 코로나 블루가 심화되는 분위기다. 우울감이 깊어지는 환경에 처하여 단독적으로 상황에 억압되지 않는 상상력을 발동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프라 윈프리는 책을 매개로 하여 새로운 사유를 발달시킬 수 있었다. 그녀는 사생아로 태어났으며, 성적학대를 받았고, 14세 때 미숙아를 사산했다. 그녀에게 독서는 절망에서 희망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였다. “책 읽기가 희망을 주었습니다. 저에겐 그것이 열린 문이었습니다.” 생명과학자 12명이 독서모임에서 추구해온 것은 ‘더 넓고 깊은 사유’이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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