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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인문교양 출판유통, 문제있다
기획취재: 인문교양 출판유통, 문제있다
  • 김조영혜 기자
  • 승인 2005.03.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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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부익부빈익빈…대형출판사는 선금 받고 중소형은 어음 장사

출판계의 불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온라인 서점의 영향과 난맥의 유통구조가 그 골을 더욱 깊게 판다. 중소형 인문사회 출판의 경우, ‘위탁판매’라는 출판유통 구조에서 대형출판사 위주의 선불지급 관행으로 소형출판사가 손해를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신간서적이 나오면 일단 서점에 납품하고 어음을 받아, 수개월 후 팔리지 않은 책을 반품해 잔고처리를 하는 것이 출판계 관행이다. 그러나 대형출판사들이 납품과 동시에 서점에 현금지급을 요구해, 자금사정이 한정돼 있는 서점으로서는 소형출판사들의 어음을 현금화하지 못하고 있다.

인문서를 주로 출판하는 한 소형출판사 대표는 “대형출판사들이 서점에 책을 위탁할 때, 선지불을 받기 때문에 3~4개월 어음을 끊어 현금전환만을 기다리는 소형출판사들은 자금회전이 어렵다”라고 말했다.

지난 3월 5일 폐업한 진솔문고는 대형출판사 위주의 유통구조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강남역 근처에 위치한 진솔문고는 최근 교보·영풍문고 등 대형서점이 강남역에 지점을 개설하면서 채산성이 악화됐다. 진솔문고는 폐업 신청을 하며, “재정여건상 채권 12억원 중 6억원만을 지불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출판사들로서는 납품비의 절반을 떼이는 셈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대형출판사와 소형출판사의 양극화 현상은 여지없었다. 선지불을 받은 대형출판사들은 팔리지 않은 책까지 반품받아 過지불 상태가 됐지만, 어음처리한 소형출판사들은 받아야 할 납품비의 절반밖에 챙기지 못했다.

납품비의 절반을 떼인 이제이출판사의 전응주 대표는 “대형출판사는 서점이 부도나면 걸어놨던 보증금을 돌려받고 오히려 돈을 번다지만 소형출판사는 몇십만원의 푼돈도 절반밖에 받지 못한다”라며 울상을 지었다. 진솔문고의 경우, 10여개의 대형출판사들이 1억3천여만원의 보증금을 걸어놓았으며 이중 일부 출판사들은 과지불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서점이 망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보는 것은 힘없는 소형출판사인 셈이다. 이산출판사의 강인황 대표는 “서점이 망하면 매출규모에 비례해서 손해를 보는게 정상인데, 출판의 경우 반대”라고 말하기도 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당장 몇십만원 때문에 출판사 문을 닫지는 않겠지만, 누적되면 언젠가는 망하는 게 당연지사”라는 것. 

그러나 대형출판사의 선지불 요구를 ‘자사 이기주의’만으로 몰 수도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일빛출판사의 이성우 대표는 “대형출판사일수록 판매부수가 많고 베스트셀러도 많기 때문에, 서점은 현금지불을 해서라도 책을 유치할 필요성을 느끼지만 언제 망할지 모르는 소형출판사에 선지불을 하기는 어렵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민음사 정대용 영업부장은 “선지불 거래는 공격적 영업 전략의 일환이고 선지불을 받았다고 해서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민음사도 진솔문고 정산 후 수백만원의 피해가 났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법적으로는 책을 납품하고 어음을 받기 때문에 출판유통구조를 위탁판매로 정의내리기도 어렵다”라며 “미수금을 받기 위해 서점 재고조사를 철저히 하는 것은 출판사 역량에 달린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주의 경쟁 체계에서 경쟁력 있는 출판사가 현금 거래를 하고 미수금을 철저히 받아내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출판사들이 과지불 또는 미수금을 돌려주거나 돌려받는 정산과정을 철저히 밟지 않는 것은, 출판유통 구조가 불투명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매상, 소매상, 출판사 직거래 등 중복거래로 인해 정산과정이 복잡하게 얽혀있고 각각 공급하는 도서정가 할인율이 다르기 때문에 출판사로서도 자사의 책이 어디서 얼마나 팔리는지, 정산에 있어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 또, 유통과정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납품된 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독자들에게 유통되는 지도 알 길이 없다. 논형출판사의 소재두 대표는 “학술서를 비롯한 서적 분류를 위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판매현황을 투명하게 공유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근본적으로 불투명한 출판 유통구조는 출판사들의 과도한 할인율 경쟁 때문이기도 하다. 사계절출판사의 이교성 영업과장은 “문제의 시작과 끝은 출판사들에 달려있다”라며 “대형출판사 10~20개가 모여 공급률을 정확히 명시하고 지킨다면, 도서정가제가 안정돼 출판유통구조도 투명해 질 것”이라고 제안했다. 결국 대형출판사를 위시로 한 출판사들의 공급률 안정을 위한 노력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형출판사들의 반응은 차갑다. “대형출판사들의 연대는 일종의 담합으로 법적인 제재를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출판사들끼리 협정을 맺는다 해도 지켜질 지 확신은 할 수 없다”라는 것.

결국 불투명한 출판유통구조를 바로잡기 위한 대안은 출판사들의 손에 달려있지만 대형출판사들을 움직일 유인책은 없는 셈이다.  
김조영혜 기자 kimjo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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