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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쟁점: '문예진흥기금'을 성찰하다
문화쟁점: '문예진흥기금'을 성찰하다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5.03.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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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예술은 밀린 방값에 대한 변명인가

오늘날 문예진흥기금은 과연 제대로 운용되고 있을까. 이런 질문은 그러나 쳇바퀴 돌듯한 그런 저런 답변밖에 끌어내지 못한다. 문예진흥기금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때다. 문학, 연극, 무용 등 각 장르별로 지원체계를 쇄신하려는 노력을 진행하고 있지만 법으로 정해진 ‘기금’의 테두리 안에서 스스로의 상상력을 한계짓고, 기금의 사회적 성격과 역할을 창조적으로 전유해나가지 못하는 현재의 ‘개선논의’는 좀더 인식론적 차원에서 재론될 필요가 있다./편집자주

최근 한국문화예술진흥원(원장 현기영·소설가)이 복권기금 52억원을 투자해 ‘힘내라, 한국문학’이라는 문학회생 프로젝트를 선언했다. 매달 우수문학을 선정하고 보급하는 것인데, 문학의 질적 제고로 침체된 한국 문학시장을  살리자는 취지다.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이왕 하는 것, 제대로 하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1백20명의 추천위원회와 12명의 심사위원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과연 “힘 있는 한국문학”을 고를 수 있는 안목을 어떻게 안배하는가의 측면이다. 현재로서는 현역 문학기자와 전국대학 문창과 전임교수로 ‘추천위’를 구성하고 있다. ‘힘내라’ 측의 차창룡 홍보팀장(시인)은 “매달 쏟아지는 문학작품을 일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추천위 구성의 기본원칙이라고 입장을 전한다. 그러나 최종 심사위원 12명을 어떻게 구성할 지에 대해서는 미정이다.

문제는 기존의 문학에 대한 비판과 성찰의 과정없이 문학의 질적 도약이 가능할까라는 대목에 있다. 현재 52억원의 예산 가운데 문인에 대한 직접지원은 3억원에 불과하고, 나머지 금액은 출판사(권당 2천만원 상당 구입)와 잡지(연간 30종 지원)에 돌아간다. 차 팀장은 “창작지원금을 받아 시를 다 써놓고도 출판해줄 곳이 없어 책을 못내고 있다”라며 “이번 사업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4백여개의 문학출판사가 1천여곳으로 늘어났다”라며 출판계의 활발해진 움직임을 전한다.

한국 정통문학에 투자를 꺼리는 출판사들과, 갈 곳 몰라하는 문인들의 사정은 현실적으로 그 고충이 다가오는 부분이다. 하지만 과연 '우수잡지'의 타이틀을 붙일 수 있는 한국의 문예지들이 연간 30종이 될 수 있는 지는 의문이다. 자칫 공급을 맞추기 위한 ‘수요 짜내기’를 불러올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니, 그것을 떠나서 30종의 잡지이면 왠만한 중앙지와 지방지가 거의 포괄될 것인데, 그렇게 될 때 우수와 비우수의 구별이 사라지고 말지도 모른다. 이런 부분에 대해 차 팀장은 “지난해 관련 전문가들, 관계자들과 함께 공청회를 열어 몇번씩 논의해서 결정된 것”이라며 추후 생길 수도 있는 문제점은 적극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포커스 없는 제도로는 ‘효과’ 불투명

문학에 비해 연극, 무용 등의 여타 예술 분야는 전년도와 비슷한 규모 속에서 제도적 혁신을 꾀하고 있다.

연극 분야 심사위원을 오래 해온 안치운 호서대 교수(연극이론)는 “단체와 극장 단위의 지원을 해체해서 배우들에게 돌아가는 몫을 대폭 늘리는 방안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밝힌다. 1천만원을 지원받아 무대 위에 올려진 연극에서, 배우들이 2주 동안의 연기료로 “50만원 정도를 받거나 아예 받지 못하는” 사례가 허다했다. 그러니 좋은 배우가 나서질 않고, 지원작품도 신인들의 데뷰장소로 획일화되는 양상이 심각해 그것의 타개책으로 논의되는 것이다.

또한 작년 연말 현대무용가 홍승엽 씨의 수상거부로 문제가 된 ‘올해의 예술가상’의 정상화 방안을 논의하는 합동심포지엄도 지난 25일 개최됐다. 안치운 교수는 “올해부터 ‘사후평가’가 ‘사전지원’보다 그 비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작품으로 보상받지 못한 지난날들에 대한 自省의 분위기는 일단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그리고 ‘문예진흥기금’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많은 관계자들이 기금의 사회적 본질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지는 의문이다. 현재 문예진흥기금을 잘 운용하기 위한 토론회들의 양상을 보면 누가 봐도 서로 부딪힐 수 있는 "옳은 말"들만 진열되고 있는데, 결론적으로는 심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의 확보라는 것에 집중되고 있다. 방현석 중앙대 교수(소설가)는 얼마 전 오늘날 예술의 위기는 “예술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정의 실종”이라고 진단한 바 있고,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동의한다. 예술에 대한 사회의 외면이, 예술이 부패하고 나태하고 서열화되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예술적 가치’의 실종을 원인이라고 분석해 놓고서도 해결책은 그와 대응되게 짜내지 못한다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제도적 한계로 인정하고 넘어갈 문제인지, 아니면 정색을 하고 '안티'를 걸어야 할 문제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이번 ‘힘내라 한국문학’의 경우를 살필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하나의 '아 프리오리'를 인정하고 있다. 그것은 문학과 출판을 일심동체로 여긴다는 점이다. 출판 없이 문학 없다는 것이 무의식 중에 전제돼 있어서 한국문학을 살린다는 취지의 운동임에도 뽑혀나오는 슬로건은 "침체된 문학출판의 활성화"이다. 사소한 차이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현실에서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차이를 지니는 게 '문학'과 '출판'의 진흥이다.

50억의 기금을 작품과 작가에 돌리는 것과 매체와 출판사에 돌리는 것은 두가지를 상징한다. 작품과 작가의 출판종속현상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상업자본의 논리와 예술을 더욱 밀접한 관계로 만들어 놓는다는 점이다. 문단의 속사정을 전하는 한 시인은 "현재의 문학출판이 어렵다보니 작품을 내줄 출판사가 없고, 그러다보니 작품들이 몇몇 정통 문학출판사에 몰리게 되고, 그 문학출판사의 가치관과 부합되는 혹은 코드가 맞는 작품이 출판되고, 결국 문학출판이라는 것이 현실에서 창작되고 있는 문학을 '대표'하지 못하게 되는 왜곡현상이 벌어진다"고 말한다. 설득력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인식은 '책으로 출판된 작품이 과연 독자에게 읽힐 것인가'의 문제, '우수도서라고 해서 문학독자들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는가'의 문제, '출판되지 못한 작품들이 우수한 문학이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괄호 속에 넣고 있다.

우수 도서를 도서관·교도소 등에 보낸다는 ‘연결방안’도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도서관운동’이라는 다른 맥락의 ‘문화운동’과 맞물림으로써 추진의 동력이 분산될 여지를 안겨준다. 도서관에 책을 보내는 것은 문예진흥원이 꼭 해야할 일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런 방안 대신 문학의 침체원인을 분석하고, 좋은 문학을 고르는 선별기준을 다양하게 마련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만약 해당 월, 연도에 좋은 작품이 없다고 판단되면 상금을 이월시켜야 한다는 조건 등, 양질의 작품이어야 한다는 사회적 욕구를 반영하는 장치를 ‘명목’으로라도 다양하게 설치하고 홍보해야 좋은 작품을 써내기 위한 ‘창작의 동력’이 마련될 거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조태준 배제대 교수(연출)는 “지원해주는 측과 받는 측이 ‘제도’의 취지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지적하며 “제도에 대해 상호 이해의 접촉점을 넓히고 그 부분에 대해서 ‘약속’을 실천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조 교수는 지난해 대전 지역 문예진흥기금 심사자로 활동했는데 “이걸 지원한다고 작품이 나올까” 싶을 정도로 의문이 가는 기획안들 뿐이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열악한 창작환경을 생각하면 지원해주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게 그의 솔직한 심정이다. 지방뿐만 아니라 중앙의 경우도 “지원받은 작품 가운데 정신적 자극을 주는 작품이 없다”라는 지적은 매년 나오는 레파토리가 됐다.

문예지원금은 ‘예술에 대한 예의’

그렇다고 “먹은 만큼 뱉어내라”는 식으로 솔직단순하게 예술의 논리를 이끌고 갈 수는 없다. 현재 반복 생산되는 제도개선의 논의를 볼 때, 한 사회가 뛰어난 예술작품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예우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관점에서 논의의 물꼬를 틀 필요도 있어 보인다. ‘문예진흥’으로 표현되는 한국의 ‘국가 파트롱’은 작가들을 거느렸던 봉건시대의 귀족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귀족들과 작가 사이엔 ‘부자’와 ‘가난뱅이’라는 계급적 종속관계 이외에도, 평범한 영혼을 상승시키는 ‘사부’와 ‘제자’의 역전관계도 존재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술은 마치 ‘빚쟁이’처럼 국가를 향해 예술에 할당된 세금을 내놓으라고 재촉하는 상황이다. 오늘날 공적자금의 성격이 대부분 '공중으로 휘발'되는 데 있듯, 예술에 대한 국가의 애정은 마치 '부모의 잔정' 같은 것이어서 도무지 회수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문예진흥'이란 단어는 그야말로 '계속적인 위기의 항상적인 모면'을 뜻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예술이 기댈 곳은 여전히 자취방이요, 몇달째 밀린 방값에 대한 변명의 '말빨'일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예술에 대한 사회적 신뢰의 상실은 예술의 주민등록증이 낡았기 때문이다. 낡은 주민증은 '작품성'이 확인돼야 재발급이 가능하다. 문예진흥기금은 그런 재발급 비용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지출 목적을 분명하게 '예술 다운 예술'로 못박을 필요가 있다. 만약 이것이 이런저런 정치적 맥락에 흔들린다면, 작품성을 둘러싼 끊임없는 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현실은 매년 입증하고 있다. 무용계의 대표적 잡지인 ‘몸’지와 ‘댄싱스파이더’(www.dancing.co.kr)에서는 지난해 홍승엽 ‘수상거부’ 후유증이 평론가들 사이의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홍 씨의 ‘우수상’ 거부 이유는 “현장성이 중요한 무용을 직접 보지도 않고 비디오로 보고 판단할 수 있느냐”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2차적 이유이고 좀더 본질적으로는 ‘현장에서 보지 않고 비디오로 봤기 때문에 나보다 한단계 낮은 김윤규의 ‘솟나기’가 최우수로 뽑혔다’는 인식이 전제돼 있다. 무용평론가 김남수 씨는 “홍승엽의 춤이 김윤규보다 낫다는 것은 상식”이라고 말한다. 김 씨는 심사위원장인 채희완 부산대 교수(미학)를 가리켜 “어떻게 작품을 직접 보지도 않고 최우수작을 선정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며 질타한다. 채희완 부산대 교수(미학) 측은 “전문가는 비디오로도 평가가 가능하다. 홍 씨의 문제제기는 예술인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위”라고 반박한 상태다. 이에 대해 김남수 씨는 “무용에서 현장성은 절대명제”라고 지적하면서 “마당극이 이상적인 현장예술, 무대예술일 수 있는 것은 그 드높은 현장성 때문이 아닌가”라며 채 교수가 비평가로서의 책무를 져버렸다고 비판했다.

‘다양성’과 ‘깊이’의 상충

김윤규 씨의 ‘솟나기’가 ‘민족예술’의 관점에서 볼 때 ‘秀作’이라는 것에는 김남수 씨도 동의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평소엔 전혀 민족적이지 않던 심사위원 평론가가 이 작품에 나타난 진보성을 극찬”함으로써 진보평론가로 변신하는 것이 “상을 주기 위해 비평의 정체성도 아랑곳않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게 김남수 씨의 결론이다. “김윤규 씨가 심사위원인 채희완,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의 제자라는 것”은 의혹을 증폭시킨다.

이런 문제는 결국 심사의 기준이 ‘예술성’에 확고히 기반하고 있지 못하며, 설령 ‘예술성’에 중점을 둔다 하더라도 예술적 ‘가치’에 대한 시각이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시각의 다양성이 내외부의 ‘상식’을 어긋날 정도라면 그것은 ‘다양성’이 아니라 평론가들의 ‘자질’의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해둘 필요는 있다.

아무튼 문학, 연극, 무용에 걸쳐서 ‘문예진흥’의 차원에서 지원되고 있는 돈과 예술의 관계에 대해 고찰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예술이 처한 사회적 실존에 대한 좀더 내밀한 성찰이 필요한 듯싶다. 예술적 가치의 실종을 선언하는 사회가 “예술적 다양성”이라는 것을 제도적으로 갖추려고 노력하는 것은 과도한 ‘형식주의’일 수 있다. 그리고 문예진흥기금을 여타의 사회보장적 지원체계나 혹은 학술연구지원체계와 어떤 차별점이 있는 지를 명확히 구분짓는 인식론적 노력이 필요하다. 예술상에 있어서 ‘형평성’의 정도가 여타 사회보장 체계, 연구 지원 체계와 얼마나, 어떤 식으로 달라야 하는지를 가슴 깊이 되물어야 ‘문예진흥기금’의 ‘법적 실체’가 아닌 ‘사회적 실체’가 드러나서 그에 대한 생산적 논의와 합의도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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