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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풍기의 한자로 보는 세상 : 吹毛求疵
김풍기의 한자로 보는 세상 : 吹毛求疵
  • 김풍기 강원대
  • 승인 2005.03.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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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러스트 이승희
吹毛求疵(취모구자): 털을 불어서 흠집을 찾아내다. 억지로 남의 잘못을 찾아내기 위해 애를 쓴다는 의미.

사람이 살아가면서 내 행동이나 선택의 정당성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머니 털어 먼지 안나는 사람 없다는 속담은 아마 그런 어려움을 은근히 지적하려는 게 아닐까 싶다. 사람살이라는 게 一刀兩斷에 快刀亂麻 식으로 해결될 문제가 절대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안다. 어떤 삶의 맥락에서 나온 말이냐 하는 것은 발화자의 진의를 확인하는 중요한 근거 중의 하나다. 인간의 무한한 삶의 양태를 유한한 언어로 표현하자니 자연히 오해가 생길 수 밖에 없는 노릇이라고 치부하면, 우리는 애초에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세상을 살고 있는 셈이다.

대학이라는 곳이 알고 보면 참 좁은 공간이다. 연구 때문에 한 연구소에서 교수들끼리 모여 일을 하기도 하고, 스승 제자 사이에 함께 공부하느라고 같은 연구실에서 오래 지내기도 한다. 같이 살다보니 장점과 단점이 모두 눈에 들어온다. 장점을 보면서 단점을 감싸줄 것인가, 단점을 과장해 장점을 묻을 것인가.

평소에는 그렇게도 잘 지내다가 어떤 보직이라도 맡을 양이면 뒤에서 그의 단점을 비난하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그의 문제점을 찾기 위해 과도한 촉각을 세워 뒷일을 캐기조차 한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 자신의 심성이 고와질 리 만무다. 취모구자(吹毛求疵)는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이다. 덮인 털을 불어서 그 속의 흠결을 찾아낸다는 뜻이니, 일부러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어 비난하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韓非子의 원문은 이렇다 : “터럭을 불어서 작은 흠집을 구하지 말 것이며, 더러운 때를 씻어서 알기 어려운 것을 자세히 살피려 들지 말라.”(不吹毛而求小疵, 不洗垢而察難知, ‘大體’편)

사이가 나빠지는 경우, 상당 부분이 작은 오해에서 비롯되는 일이 흔하다. 오해가 원수를 만든다. 얼마 살지 못하는 인생살이에서 남의 작은 잘못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남의 잘못을 찾고 있을 때, 어쩌면 남도 내 잘못을 찾고 있지는 않을까. 정말 등골이 서늘해진다.

강원대?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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