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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찬의 한자어원학 산책(1)-命
최영찬의 한자어원학 산책(1)-命
  • 최영찬 전북대
  • 승인 2005.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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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과 운명

▲일러스트 이승희 ©
자주 사용되지 않거나 쓰기에 복잡하여 널리 알려지지 않는 한자를 흔히 어려운 글자라고 한다. 자주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알지 못하고, 획수가 많아 쓰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글자는 자주 경험해보지 않고 숙달되지 않아서 단순히 모르는 한자일 따름이다. 따라서 그러한 한자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안 써도 되고 일상에서 몰라도 된다.


 실제로 어려운 한자는 자주 접하고 쓰기도 그리 어렵지 않지만 그 개념이 광범하고 다양하여 정확하게 사용하기가 쉽지 않는 한자인 것이다. 한자의 특징이 뜻을 그려서 의미를 표현하기 때문에 어쩌면 여러 개의 부수로 이루어져 획수가 많은 한자일수록 오히려 의미는 간명할 수 있다. 부수를 여러 개 합해서 이루어진 글자는 이미 여러 개의 개념을 제시하여 그 의미를 더욱 구체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자주 사용되면서 어려운 한자 중의 하나가 命자이다. 유명한 주희의 제자 진순이 펴낸 북계자의(北溪字義)에서도 첫 번째로 다루고 있는 글자이다. 일찍이 공자도 “命을 알지 못하면 모범적인 사람이 될 수 없다”라고 할 만큼 매우 중요시한 개념이다. 실제로 命자는 생명(生命), 천명(天命), 운명(運命), 사명(使命)등 자주 쓰여지고 있지만 그 의미를 따져 들어가면 상당히 복잡한 한자이다.

 
 일반 사전에서는 命자를 목숨, 운수, 분부, 명령, 자연의 도 등의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원래는 입구(口)와 부릴령(令)자로 이루어져 글자 그대로 구령이나 명령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갑골문과 금문에서는 命자와 令자는 같이 통용되었다. 그리고 갑골문의 令자는 사람이 꿇어앉아서 발호령을 듣고 있는 모양을 형상하고 있다. 그러므로 命의 본래 의미는 주재자 즉 인격천의 명령이라는 의미와 인간의 주관적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외적?내적 제한의 의미를 갖는다. 한편 이러한 命자의 의미는 장구한 역사 속에서 그 시대의 문화적 특성과 사상가들의 철학적 특성을 대표할 만큼 다양하게 변천되어 왔다. 즉 종교적으로는 상제의 명령으로 사용되었고 철학적으로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자생성, 자연성, 본성의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또 윤리적?정치적으로는 당위적 사명, 소명, 혁명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요컨대 命자의 개별의미는 다양하지만 크게 명령과 운명의 두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즉 命을 천이나 인간의 본성에서 오는 명령으로 사용하는 경우와 객관적인 제한을 뜻하는 운명으로 사용하는 경우다. 중용(中庸)의 “하늘이 나에게 명한 것을 성(性)이라고 한다”라는 구절에서는 명령으로 이해된다. 이후 성리학에서는 천명의 命을 천리의 유행으로 이해하여 천명을 본성의 근원이라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논어에서 공자가 “나이 50에 천명을 알았다”라고 말한 경우에서는 두 의미 모두가 포함되어 있다. 명령으로 해석할 때는 “천명의 내용을 안다”는 것으로 천의 명령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는다는 의미이다. 공자는 나이 50세 후반까지 열국을 주유하면서 자신의 사상과 포부를 설파하였지만 모두 실패하였다. 命을 객관적인 제한으로 해석할 때 공자 50세 후반까지의 행적과도 일치한다. 천하의 질서를 인정(仁政)과 인교(仁敎)로 올바르게 인도한다는 것은 자신의 주관적인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일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천명을 운명의 命으로 해석한다면 命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여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공자는 이후의 운명을 새롭게 열어갔던 것이다.

최영찬/ 전북대 중국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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