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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풍기 교수의 사자성어 세상: 若烹小鮮(약팽소선)
김풍기 교수의 사자성어 세상: 若烹小鮮(약팽소선)
  • 김풍기 강원대
  • 승인 2005.03.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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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생선을 삶는 것과 같다” / ‘노자’ 60장

若烹小鮮(작은 생선을 삶듯이, 그대로 두고 기다리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뜻.)

‘노자’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삶는 것과 같다.”(治大國, 若烹小鮮, 60章) 무엇이든 자연스럽게 두면서 지켜보는 것이 가장 좋은 정치라는 의미다.

딱히 입맛이 없을 때면 더러 찾는 매운탕 집이 있다. 식당 주변 경치도 좋을 뿐만 아니라 주인의 인심도 좋아 한끼 식사에 마음이 푸근해지곤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집에서의 식사가 흐뭇한 것은, 음식을 다루는 주인의 정성 때문이다.

음식이 익을 무렵이면 식탁을 계속 오가면서 손님들이 매운탕에 손도 못대게 야단이다. 생선이 그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잘 익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깨지지 않게 잘 떠서 맛을 볼 때에만 비로소 그 요리의 참맛을 즐길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미식가 축에도 끼지 못하는 내게 주인의 이야기가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가 자신의 요리에 최선을 다하며 생선의 모양을 잘 유지시키고 맛을 잘 내려는 정성에 감동할 뿐이다.

작은 생선을 삶아보면 생선의 모양에 조금도 흠이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어떤 요리든 마찬가지겠지만 생선 매운탕도 뚜껑을 자주 열어보면서 젓가락으로 속을 휘젓는다면 생선의 모양을 유지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 맛도 엉망이 될 것이다. 되도록 요리가 익을 때까지 두고 기다리는 마음이 중요하다.

시대가 급변하면서 대학의 환경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변화의 와중에서 어떻게 좋은 교육을 제공하고 높은 연구성과를 낼 것인가는 모든 대학의 관심사다. 그 목표를 위하여 각 대학은 수많은 규정과 새로운 제도를 개발하고 시행하노라 야단법석이다.

자칫 목표치를 향해 잘 가고 있는 구성원들을 휘저어 엉뚱하고 맛없는 요리를 만드는 것은 아닌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공부하고 가르치느라 정신 없을 학교의 구성원들이 행여 새로운 규정을 익히느라 정신을 빼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강원대·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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