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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종] '진짜 공부'하는 스터디모임 6곳 소개
[한예종] '진짜 공부'하는 스터디모임 6곳 소개
  • 하영 기자
  • 승인 2021.07.09 1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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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원 공동창작스터디‘코시극’, 음악원 음악학과 스터디그룹‘지적 코뮌 서초동지부’, 연극원 극작과‘괄호’, 연극원 무대미술과‘무유 스테이지 랩’, 영상원 영상이론과‘상영기획팀’, 미술원 미술이론과‘반짝’

1. 연극원 공동창작스터디 ‘코시극’

 ‘코시극’이 되기 전 이 모임의 이름은 연극원 공동창작스터디였다. 막 학교에 입학한 연극원 20학번 학생들에게는 코로나19라는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연극을 올릴 수 없는 것은 물론 동료를 알아볼 최초의 기회가 되는 공동수업마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를 두고 보기만 할 일인가? 연출과 최가람은 엘리베이터에 공동창작스터디원을 모집한다는 포스터를 붙였다. 그렇게 20학번 무대미술과 한 사람, 극작과 두 사람, 연극학과 두 사람과 연출과 두 사람이 모였다. 이들은 이제껏 없던 연극을 연구하고 만들어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연극원 ‘코시극’
연극원 ‘코시극’

모임은 시종일관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진행된다. 사적 이야기와 공적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뒤섞이는 가운데 “우리 무슨 얘기 하고 있었지?”라고 가닥을 잡는 누군가가 나타난다. 조용해진 팀원들은 방금 나왔던 안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각자의 의견을 내어놓는다. 아이디어의 제시도, 그에 대한 기각도 거침이 없어 다시 한 차례 웃음이 터지고 만다.

그렇더라도 연극은 이들의 변하지 않는 지향이다. 앞으로의 모임을 통해 이들이 얻어가고 싶은 것은 “공연. 연극적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에 “그것을 통한 명예.” “모 연출가를 위협할 대가가 되기.”라는 추임새가 붙고 박장대소가 뒤따른다. 같은 배를 탄 사람들끼리 추동력을 냄과 동시에 사이까지 좋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환상적인 일인가.

2. 음악원 음악학과 ‘지적 코뮌 서초동지부’
 
 ‘지적 코뮌 서초동지부’라는 의미심장한 이름은 “반동적이고 급진적이라고 여길 수 있는 문제의식도 자유롭게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지어진 것이다. 2020년, 김용현과 구자혁은 철학, 문화연구, 인류학, 사회학 등의 다학제적 고민을 풀어놓는 스터디를 조직할 계획을 세웠다. “음악은 일상에 아주 밀접하게 맞닿아 있으면서도 학문과 연구의 대상으로는 인식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설령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작품과 음악가에 대한 분석으로만 소급되곤 해요. 음악학과 커리큘럼의 절반 가량도 음악사와 기초이론, 작품 분석으로 구성되어 있죠. 하지만 우리들이 관심을 가지는 건 나머지 절반에 해당하는 문화연구 쪽, 그중에서도 음악과 사람, 음악을 둘러싼 사람과 사람 간의 유동적이고 다층적인 관계입니다.”

음악원 음악학과 ‘지적 코뮌 서초동지부’
음악원 음악학과 ‘지적 코뮌 서초동지부’

 그렇기에 이 모임에서 텍스트는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지는 않는다. 사이드, 아파두라이, 슌야와 파농을 읽었지만 “결국에는 그것을 바라보는 각자의 시선이 중요”한 까닭이다. 멤버들이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건 대화를 통해 시야를 넓히고 관점을 재고하는 일이다. “학술적인 의미는 어떠한 주장이 토의되고 비판받으면서 발생한다는 걸 학부 시절 수업에서의 토론을 통해 배웠어요. 같은 관심사를 가졌지만 다른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그와 같은 학술적 의미 발생을 보다 적극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학자들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연극원 극작과 ‘괄호’

 ‘괄호’는 희곡에서 소지문을 쓸 때 주로 사용하는 기호에서 따 와 지은 이름이다. “괄호 안에 들어간 극작가의 언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연극을 떠받치면서도 실제 공연 시에 쉽게 생략되기도 하기에, 극작가들끼리 뭉쳐 우리의 존재가 생략되지 않도록 하자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연습실과 극장에서 느꼈던 고립의 감각과 희곡 자체의 문학적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소망이 이들을 괄호에 몸담게 했다. 괄호는 2019년 지원 사업에 선정된 뒤 ‘괄호는 괄호와 괄호 사이 괄호가 될 수 있을까(괄괄괄괄)’라는 창단 공연을 올렸고, 희곡 메일링 서비스인 ‘계간 괄호’도 시작했다. “계간 괄호는 10분 단막 희곡과 연작 시리즈인 릴레이 희곡이 두 달 동안 메일링되는 서비스예요. 이때 집필했던 단막 희곡은 오디오 드라마화 작업을 거쳐 ‘듣는 희곡’으로 관객과 독자들을 찾아갔는데, 현재도 괄호씨어터 유튜브 채널에서 언제든 들을 수 있어요. 지난 4월 16일부터 18일까지는 공간 쌀(SSAL)에서 낭독 공연을 진행했고요.”

연극원 극작과 ‘괄호’
연극원 극작과 ‘괄호’

 괄호 멤버들은 지원 사업 공모 준비 과정 중에 입버릇처럼 “우리 오래 보면 좋겠다”, “이거 너무 좋다”고 되뇌었다고 한다. 말과 글이 가진 힘 덕분일까, 이들은 여전히 함께이며 앞으로도 함께할 생각이다. 꾸준히 글을 쓰는 동료들 사이에서 느끼는 안정감, 극작가가 소외되지 않는 프로덕션 내에서의 소속감, 희곡의 문학적 가능성을 공유할 수 있다는 기쁨, 희곡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는 기대감까지, 괄호는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연극원 무대미술과 “무유 스테이지 랩”

 ‘무유 스테이지 랩’의 ‘무유’는 무대 공유의 줄임말이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함의 또한 품고 있다. 무대미술이 만들어지는 비하인드 과정을 아카이브함으로써 관객과 대중에게 무대미술을 알릴 계기를 마련해보자는 것이 팀 결성의 취지다. 지원 사업 기획서에서 추진한 무대미술가 열전은 한국공연예술계에 족적을 남겼던 무대미술가들의 무대를 그래픽 작업, 이미지, 글 등으로 재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미 올렸던 공연, 폐기되어 없어진 세트의 남아있는 도면들을 다시 그려서 이런 무대들이 이런 식으로 제작되었었다는 점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무대를 알리고 싶어요. 무대의 역사를, 계보를 보여주어야 현대의 무대도 관객과 공생하며 호흡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무대마다 어떤 제작 과정과 비하인드가 담겨 있는지 보여준다면 관객들에게 무대가 더 친근하게 다가올 거예요.”

연극원 무대미술과 ‘무유 스테이지 랩’

현재 무유 스테이지 랩은 지원 사업 발표를 기다리면서 블로그에 무대미술가 열전을 포스팅하는 방식을 논의 중이다. “20학번이 코로나 학번, 불운의 학번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지금 이 팀을 통해서 코로나 시대에도 함께 모여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이 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각자 하는 일을 존중하면서 때로는 이렇게 모여 하나의 일을 함께 만들어내는 게 지금의 사회에 필요한 과정이고 행위이지 않을까요?” 

5. 영상원 영상이론과 ‘상영기획팀’

 영상이론과는 영화와 영상 문화를 둘러싼 다양한 쟁점, 관점, 이론, 기획을 연구하는 학과다. 학생들은 연구자, 비평가, 문화평론가, 기획자 등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훈련받는다. 3학년부터는 세부전공으로 이론과 기획 중 한쪽을 택해야하는데, 이론을 중심으로 하는 학과의 특성상 기획 트랙은 격년으로 개편되는 커리큘럼 내에서 변화의 진폭이 크며 수업 또한 기획서를 검토하는 단계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상영기획팀은 그에 대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범했다. 2014년부터 매년 3, 4월마다 영상이론과 예술사 재학생 지원자를 대상으로 팀원을 모집하고, 프로젝트 단위로 진행되는 기획 일정에 맞추어 회의를 진행한다.

영상원 영상이론과 ‘상영기획팀’이 주관한 방송영상과 제17회 졸업영화제 GV 현장 모습
영상원 영상이론과 ‘상영기획팀’이 주관한 방송영상과 제17회 졸업영화제 GV 현장 모습

방송영상과 졸업영화제 협력은 상영기획팀이 주력해 오고 있는 연례행사로 영상원 내 유일한 학과 간 교류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학생들의 자력으로 시작된 해당 협업에서 상영기획팀은 상영시간표 프로그래밍과 비평문 작성, 감독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디어콘텐츠센터(현 융합예술센터 AT랩)가 주관하고 상영기획팀이 주최한 2020년 제1회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제 : 숨(호흡)의 경우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강화됨에 따라 온라인 영화제로 전환되어야 했다. 그러나 팀원들은 영화제 컨셉을 정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상영작 선정, 프로그램북 제작, 행사 홍보 등의 역할을 수행하며 정규 커리큘럼에서 얻을 수 있는 것 이상의 많은 실무 경험을 쌓았다고 말한다. “이론과 비평은 아직까지 아카데미의 영역에 유리되어 있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얼마든지 필드에서 뛰어 놀며 유통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영기획팀 활동을 통해 그러한 가능성을 실험하고 졸업 이후의 기반을 다져 나가고 싶습니다.”  

6. 미술원 미술이론과 ‘반짝’

“미술이론과에서 시각예술에 관해 공부하다 보면 ‘이미지가 무엇이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습득한 지식을 풀어놓는 차원을 떠나 각자의 논점을 가지고 이미지에 대해 발화해야 할 때가 오죠.” 그러던 차에 읽게 된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의 『반딧불의 잔존』에서 이들은 우리말 ‘반짝’의 뜻풀이와 닮은 미미한 빛의 메타포를 발견하게 된다. “‘작은 빛이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모양.’ 어찌 보면 우리가 앞으로 쫓아야 할 이미지의 형상 같았어요. 아주 희미할 순 있지만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잖아요. 우리들의 활동 목적이 그런 이미지들을 보는 힘을 기르는 것이기도 하고요.”

이미지연구공동체 반짝은 실라버스를 구성하여 텍스트를 돌파해나가는 방식보다는 하나의 대주제나 메인 텍스트를 두고서 다른 텍스트 내지는 소주제들을 파생시키는 방법을 선호한다. 디디-위베르만이 던진 화두에 나름의 결론을 내리기 위해 디디-위베르만의 텍스트는 물론 칸트, 니체, 아렌트, 바르부르크, 마르쿠제 등을 읽어나가는 식이다. 그와 같은 방식으로 지금까지 총 3개의 프로젝트(<반짝-일어남>, <반짝 흩어짐>, <반짝_눌러냄>)를 진행했고 각각 학술 세미나, 렉처 퍼포먼스, 웹 퍼블리싱으로 형식을 달리했다. 현재는 수료생과 졸업생으로 구성된 반짝이 지속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구성원들은 “서로 다른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존중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매번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한 명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애를 써요. 신기한 건 그 부담을 서로 돌아가면서 진다는 거죠. 애초에 각자가 고유한 영역과 개별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닐까 싶은데요.”
코로나19로 인해 불가피해진 비대면 화상회의에 대해서는 모든 모임의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피로감을 토로하고 있다. “팀의 주요 활동이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졌던 만큼 기획의 방향성이 달라지고 일정이 밀리기도 해요.” “실제로 논의를 진행하는 시간보다는 함께 웃고 떠들면서 발생되는 이야기가 프로젝트에 더 큰 영향을 주었는데,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면서 비대면 회의의 효율성에 대해 성찰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가능한 한 오래오래 이어질 우리들의 랑데부에는 소등도, 알람도 없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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