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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없는 대학- 용역업체 동원, 형사고발 남발
고뇌없는 대학- 용역업체 동원, 형사고발 남발
  • 손혁기 기자
  • 승인 2001.05.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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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29 17:42:35
분규가 있는 대학에서 대화를 통해 풀어가기 보다 학생들을 형사 고발하는 등 손쉬운 해결 방법을 택하고 있다. 대학의 입장에서는 분규를 조속히 해결하고자 이와 같은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이는 “교육기관으로서 갖춰야할 기본적인 책무를 저버리는 처사”라는 것이 사태를 걱정하는 교수들의 지적이다. 교육기관이 학생을 고발하는 것이 당연시 여겨지기조차 하는 상황에서 서로에 대한 불신은 깊어가고 대화를 통한 해결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또한 이들 대학에서 학생들의 점거농성을 저지하거나 수업복귀를 위해 사설 경비업체인력들을 동원하는 것도 사태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않고 오히려 당사자들간의 갈등만 증폭시키는 결과를 불러오고 있다.

학생들의 수업거부와 총장실 점거가 장기화되고 있는 덕성여대에서는 지난 4월 말 권순경 총장 직무대행이 김나영 총학생회장(정치학과 4년)등 6명의 학생을 업무방해와 재물파손 등으로 북부경찰서에 형사고발 하는 일이 벌어졌다.

대학측은 “수차례의 설득과 면담을 통해 사태를 해결하려고 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아 수업을 정상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점거농성을 풀고 수업을 정상화하면 이를 취하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학생총회를 통해 수업거부에 들어간 학생들이 몇몇 대표를 형사 고발했다고 해서 농성을 철회하거나 수업에 복귀할 여지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형사고발 당한 이후 이를 계기로 학교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감정 대립양상으로 까지 흐르고 있다.

교협 교수들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한상권 교수(사학과)는 “교육의 원리는 실종되고 법의 논리만 남았다”며 개탄하고 “제자들을 전과자로 만들겠다는 것은 교육자의 자세가 아니다”고 말했다.

박원국 이사장의 복귀와 교협 소속 교수 등 학내교수 5명이 재임용에서 탈락하면서 또다시 분규가 불거진 덕성여대에서는 지난 3월말부터 학생들이 총장실과 행정동을 점거하고 있으며, 수업거부가 한 달이 넘도록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서정범 경찰행정학과 교수의 재임용 탈락으로 분규가 촉발된 한세대에서도 지난 4월 김순미 총여학생회장 등 8명의 학생들이 군포경찰서로부터 업무방해혐의로 출두요구서를 받은 상태이다.

학생들의 수업거부를 중지시키기 위해 학교측이 사설경비업체직원들을 동원하는 것도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있다.

한세대는 지난 6일 밤 10시 사설경비업체직원 1백여명을 동원해 학생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대학건물에 진입하려 했으나 이를 저지하는 학생들과 새벽까지 대치하다 군포경찰서의 중재로 철수시켰다.

남병권 총장 비서실장은 “수업복귀는 협상과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며 “책걸상을 들여놓기 위해 경비회사의 인력을 투입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이 있은 후 교협·학생들과 대학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교수와 학생들은 대학이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 하지 않고 물리력을 행사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세대 교협(회장 정진호 경영학과)은 성명을 통해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전혀 없음을 만천하에 드러낸 폭거”라고 규탄했다.

실제로 용역업체직원들이 학교에 진입하기 전까지 교협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하루에 두세건의 의견밖에 오르지 않았으나, 6일 이후에는 하루에도 십 여건의 게시물이 오르고 있으며, 내용도 원색적인 표현과 비난·비방이 많아졌다.

학생에 대한 형사고발과 사설경비인력의 동원은 분규가 장기화되고 있는 대학에서 궁여지책으로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사태가 오히려 악화되고 부작용이 속출하자 이를 비판하는 교수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박정원 전국대학교수회 교권위원장(상지대 경제학과)은 “대학이 떳떳하다면 공정한 기관에 감사를 요청하던가, 적극적으로 해명해야지, 고소 등의 비교육적 처사로 대처하는 것은 교육기관의 정신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혁기 기자 pharo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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