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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기획 : ‘한국 美論을 재검토한다’-(1)좌담회
신년특집기획 : ‘한국 美論을 재검토한다’-(1)좌담회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5.01.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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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론가들의 삶과 철학 살펴야 … 미술사학계 定說도 비판 필요

지난 1세기에 걸쳐 ‘한국미’에 대한 논의는 끊이질 않았다. 서구예술의 침투과정에서도 우리 예술의 원형을 찾으려는 시도나 민족 고유의 미론을 확보하려는 노력들이었다. 그러나 이런 논의들은 전통의 틀에 매이거나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한계도 있었거니와, 민족주의적 관점에 치우쳐 ‘한국미’를 왜곡하기도 했다. 요즘 미술사 영역에서 한국미에 대한 논의들이 계속되고 있고 관련 도서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지만 좀더 학문적 시야를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에 교수신문사에서 2005년 상반기 기획으로 ‘한국 美論을 재검토한다’ 기획을 준비했다. 기존 논의를 비판하고 좀더 객관적인 관점에서 한국 미론을 논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이번 기회로 창발적인 ‘한국미론’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편집자주

일시 : 2004. 12. 20(월). 오후 4시   장소 :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피카소룸
사회: 최영진 교수신문 주간
참석자: 권영필 한예종 교수(미학), 홍선표 이화여대 교수(미술사), 이인범 한예종 한국예술연구소 연구원(미학)

사회: 지난 1세기에 걸쳐 ‘한국미’에 대한 논의가  다양한 관점에서 이뤄져 왔습니다. 최근 여러 ‘한국미’ 논의들이 논쟁형식으로 이어지고 있기도 하고, 또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합니다. 미술사, 미학 분야 역시 한국미에 대한 연구는 끊이지 않고 그 줄기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에 대한 논의가 ‘미론’에 대한 메타적인 성찰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았고, 단발적 시도로 그쳤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지금쯤 한국미에 대한 여태까지의 논의들을 전체적으로 그려보고, 그 특징과 개성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 후에 왜 한국미를 논해야 하고 어떻게 논해야 하는가도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권영필: 근대 이후 한국미에 대한 논의들은 다양한 각도에서 이뤄져 왔죠.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논쟁들은 미학적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전개되진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은 오히려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재점검해보고 앞으로의 과제도 짚어보는, 소위 회고와 전망의 시점에 이른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가능성 속에서 한국미의 관점을 ‘아름다움’의 차원을 넘어서는 미적 범주론적 의미로까지 확대시킬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보편적인 문화가치가 생성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인범: 그 동안의 한국미에 대한 논의들이 지녔던 가장 큰 문제점은 기본적으로 민족 국가주의 틀에 갇혀 진행돼왔다는 데 있습니다. 미와 예술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는데 말이죠. 심하게 말하면 서구나 일본이라는 위력적인 타자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동어반복이었다고 할 수 있죠. 그래서 한국미 논의는 오히려 왜소하고 궁색했던 것 같습니다. 이는 서세동점과 일제 식민주의가 드리워놓은 그늘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불행한 의식을 거둬내고, 보편적이고 글로벌한 맥락에서 당당하게 우리의 예술과 미의식에 대해 논의할 때가 됐습니다. 기존 논의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는 그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홍선표: 맞아요. 알게 모르게 내면화시켜왔던 우리 예술정신과 작가들이 창작활동에 반영해왔던 의식들을 드러내고 비판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해요. 예컨대 ‘비애’로 일컬어졌던 한국미는 우리가 부정했던 것이면서도 동시에 내면화시키기도 했죠. 마치 그런 특징들이 한국인의 정서인 듯 여겨져 왔는데 이는 전통에 대한 해석이 축적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명제로 규정하는 것이 문제였다고 봅니다. 그래서 논의가 빈약하고 깊이가 없었어요. 비판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되돌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회: 한국미론의 역사적 특수성과 그로 인해 발생한 문제점들을 지적해주셨습니다. 논의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근대와 근대 이전을 구분해서 한국미론을 살폈으면 합니다. 조선시대와 근대의 불연속성도 중요하니까요. 그런 후 미론가들이 보여준 작품에 대한 미적 감식안, 감상, 관점 등을 정리해나가야죠.

홍선표: 여타 분야와 마찬가지로 ‘미’라고 하는 것도 그 개념 자체가 서구에서 수입돼 조선미 등의 개념으로 확립됐다고 봅니다. 근대 이전을 함께 다루는 것은 좀 무리이고, 그 대신에 근대 이후에 우리가 어떻게 서구의 눈으로 당대적 작품들을 봐왔는가를 성찰하는 것도 요즘까지 반복되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을 종식시키는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봅니다.

권영필: 무엇보다 한국미 담론이 일제치하라는 시대상황에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시대적 한계이자, 동시에 발전사적 관점에서는 씬테제(종합)를 위한 안티테제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면이 있죠.

이인범: 지나치게 이데올로기화 돼있었죠. 1920~30년대는 ‘조선의 부재’를 증명하는 방법으로서 조선의 예술을 보려고 했죠. 즉, 당대의 국가 존재위기를 예술작품과 미론으로 증명하려 했습니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야나기 무네요시부터 시작됩니다. 야나기가 “조선에도 독자적 예술이 있다. 독자적인 예술이 민족의 독립 가능성을 보여준다”라는 얘기를 했던 겁니다. 문화가 곧 정치적 주권의 상실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시기이고, 어떤 의도에서든 시대를 극복하는 하나의 대안으로 부상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조선이라는 존재의 부정에 대한 대항담론으로서 말입니다. 지금도 다를바 없어요. 그래서 마치 한국미론은 미학 예술학적 추구의 성과로 여겨지기보다는 때론 민족 신앙 같이 비의적으로 비쳐집니다.

홍선표: 사실 문명론, 문화론, 전통론이 기반돼야만 우리의 미론을 제대로 논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일제 때 국민국가 기획의 주체위치를 상실했던 우리는 ‘국가’보다는 ‘민족’에 초점을 둘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종족주의와 결부된 민족주의, 즉 동일성과 단일성의 신화가 형성됐구요. 당시 주요 저널들은 전부 다 백의민족 같은 것만 강조했었어요. 이런 상황들이 근대의 미 담론과 직접적인 상관성을 지닙니다. 대표적인 것이 ‘민예미’입니다. 더 큰 문제는 지금까지도 이것들이 되풀이 되고 축적되고 있다는 점이죠.

이인범: 우리가 한국미를 종교적 주술 같이 반복하며 내면화시켜 왔던 것은 우리에게 그것들이 민족정신의 본질인 양 관념화돼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회: 백색미, 자연미 등을 말하는 겁니까.

이인범: 비애미’, ‘자연미’, ‘무기교’, ‘해학’, ‘신명’ 등 다 마찬가지입니다. 야나기가 ‘비애’를 말할 때는 근거를 가지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관점으로 상대화시키고 그 근거가 철학적 차원인지 아니면 직관적 차원인지 등을 따져나가면 되는데 그 결과를 놓고 ‘맞다-아니다’의 양진영으로 갈려버리니까 문제라는 것이죠. 그 밖에 예술 속에는 미의식이나 시대, 계급, 지방, 젠더, 환경, 이데올로기, 사회 경제 등의 문제들이 담겨 있을텐데, 그리고 거기에 수많은 기질들이 섞여 있는데, 경직된 개념과 틀 때문에 그런 것들이 전혀 발견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술을 통해 하나의 삶을 읽어내려는 시도가 없었고, 그런 시도들이 쌓여서 생겨난 철학이나 미학이 부족한 것이죠. 이번 기획에서 이걸 잘 살렸으면 합니다.

홍선표: 근대적 관점에서 한다면 ‘자생성’ 논의라고 해도 결국 구시대적인 것의 반복일 뿐일 겁니다. 다만 관점을 달리해 근대 미론가들의 내면 속으로, 그들의 취향과 사색 속으로 깊이 침투해서 그것이 한국미의 명제들과 연결될 때는 의미있는 작업이겠죠.

권영필: 중요한 지적들입니다. 그런 것들이 바로 시대적 한계이지만, 그런 한계를 인정하고 그 시대를 볼 때 우리가 다루려는 미론에서 뭔가 다른 미적 경험들을 이끌어낼 수도 있을 듯합니다.

사회: 새로운 차원의 논의가 이뤄지려면 각 논의들이 갖추어야 할 조건들은 무엇일까요. 글쓰기의 기준들도 필요할 텐데요.

권영필: 동아시아에서 자기 민족의 미적 특성에 관해 의미를 부여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둘밖에 없습니다. 중국인들조차 중국미를 논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니콜라우스 펩스너가 영국예술에서의 ‘영국성’에 대해 쓴 적이 있긴 합니다. 우리의 관심을 끌만하죠. 거기 서문에 내셔널리즘에 대한 논의가 있는데, 그러나 오히려 그는 내셔널리즘의 반대적 측면을 봐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즉 감성적, 감정적인 것의 반대를 봐야 한다고 말입니다. 한국미에 대한 객관성을 확보하려는 입장에서 어느 정도 타산지석이 된다고 봅니다.

홍선표: 고유섭은 관변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것도 고려합시다. 그리고 이 기획의 가장 큰 의의는 반복성을 탈피하는 것일 겁니다. 요즘 모든 학계가 탈근대 관점에서 근대를 반성하고 있는데, 이 기획에 참여하는 논자들이 비판받는 관점에 서면 안되겠죠. 저는 비교론적 방법에서 ‘한국미’를 찾아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가령 ‘흥’이라는 게 있다면, ‘중국 흥’, ‘일본 흥’, ‘한국 흥’이 있을 것 아닙니까. 이것저것 서로 다른 작품들을 끌어 모아 ‘한국미’라고 엮어낼 게 아니라, 중국, 일본과 공통되면서도 차별적인 미를 찾아나가는 게 결국 ‘한국미’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또 탈근대주의에서 근대미학에 대한 반성적인 논의들이 있다면 그런 것들도 반영시켜 볼 필요가 있구요.

사회: 한국미술을 논했던 외국 미론가들을 본격적으로 짚어보는 건 어떨까요.

권영필: 그것은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입니다. 유니버설한 시각에서 한국미술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미가 어디쯤 위치하는가를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죠. 이를테면, 에카르트가 왜 그렇게 한국미에 천착하고 그것을 보려고 노력했는가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보기엔 그가 한국미를 세계 미술사 속에 올려놓고 바라본 것 아닌가 싶어요. 그 당시 그들(외국 미론가들)은 대부분 세계 미술사에 관심을 갖는 바탕 하에 한국미술의 위치를 염두에
두었을 겁니다. 그들의 논의가 만족스럽든 혹은 그렇지 않든 간에 그들의 논의는 우리의 ‘한국미’논의가 반성적인 틀을 잡아나가는 데 도움을 줄 겁니다. 안드레 에카르트 뿐만 아니라, 디트리히 잭켈, 야나기 무네요시, 세끼노 타다시 등을 포함시키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홍선표: 각각의 미론가들의 논의를 살펴볼 때, 반드시 그들이 처한 당대의 이데올로기적 지반도 함께 살피는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겁니다. 대개 그런 입장과 기반 속에서 방법론이 형성되기 때문이죠. 물론 이데올로기로 미론가의 입장을 대체하는 시각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논의 가운데 새로운 계보들을 그려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권영필: 홍 교수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일례로, 가장 많이 알려진 야나기 무네요시의 예술관, 미술관은 독자적으로 제대로 연구되지 못한 측면이 있어요. 제가 하나 제안한다면 고유섭과 야나기와의 관계가 어떠했느냐 하는 문제의 틀을 이 참에 지양하고, 당시의 세계적인 이론 조류, 조형 사상 등의 관점에서 야나기와 고유섭을 보자는 거죠. 야나기, 고유섭, 에카르트가 서로 단편적인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논쟁만 할 게 아니라, 각자가 세계 미술을 개별적으로 어떻게 섭렵했는지를 규명하고 그런 후에 다시 이 세 사람을 비교하는 게 필요합니다. 

이인범: ‘우리는 하나’임을 열창했던 ‘붉은 악마’의 신화는 축구장으로 족합니다. 전체주의는 정치에서나 예술론에서나 가공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한국미의 정체성 규명에 대한 집착은 국권상실의 콤플렉스에서 비롯됐고, 한때 그 극복을 위한 시도로서 순기능을 했습니다. 그러나 국가나 민족이라는 이름의 미학적 파시즘의 위험성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우리의 미의식과 예술이 지닌 풍요로운 해석 가능성은 오히려 민족의 동일성에 대한 환상을 거둬내고, 관용심을 갖고 취미나 입장의 다양성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열릴 수 있을 겁니다. 그건 일제강점기 일인학자들의 견해라고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사회자: 본 기획에 참여하는 필진마다 나름대로의 방법론이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본 기획이 미술사를 아우르면서도 미학적으로 체계적인, 심도 있는 논의를 끌어내기 위해 필자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분석틀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일은 방지해야 겠지요.

권영필: 기왕의 연구자들이 ‘한국미’를 어떻게 정의하는가라는 개념정립도 중요하지만, 구체적으로 한국미술의 미를 어떤 장르와 어떤 작품이 가장 잘 표출해 내고 있다고 보는지를 밝혀내는 것이 관건이 될 거라고 봅니다. 또한 보다 새로운 논의를 위해, 필진들은 대상 미론가들에게서 간과되었던 요소들이나, 소홀히 다루어진 부분들을 찾아내고 비판적 각도에서 평가하는 것이 필요한 일입니다.

이인범: 한국미론이기에 앞서 미론, 예술론으로서의 보편적 덕목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비교예술학적 방법을 실마리로 삼는 것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국내에서 정설처럼 된 미술사적 해석일지라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며 논란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고착화된 논의를 상대화하는 데에는 주장만이 아니라 거슬러 올라가 그것을 배태시킨 이론적 배경과 방법적 토대를 검토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결국은 한국미가 한국이라는 특수한 자연, 정치사회, 문화사상 이 갖는 원리들에 바탕한 것이고, 그걸 포착해낸 것이 한국미론이 돼야 세계에서도 통할 수 있거든요.

홍선표: 지금까지 너무 집단적 개성, 집단적 정체성을 신화화시키고, 아름다움을 범주화, 내면화했어요. 또 다시 오늘날 아름다움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되는 무수한 코드로 분화해서 상품미학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국미를 너무 강박적인 관념 하에 두지 말고, 시대와의 조화 속에서 살펴야 할 겁니다. 삶에서 나온 작품들에 아름다움의 본질을 살펴야만 반성적인 논의와 새로운 토론이 이뤄질 겁니다.

권영필: 궁극적으로 한국미는 미학, 미술사, 철학, 인류학, 민속학, 문학 등 모든 인문학을 아울러서 공통점들을 찾아내야 진일보한 논의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 또한 만만치 않은 현실적 한계입니다. 기존의 한국미 논의의 테제들에 대해 안티테제를 구성한다면 궁극적으로 씬테제로 발전할 수 있을 겁니다. 이번 논의에서 관점을 넓힘으로써 보다 풍부한 한국미 논의를 위한 예비적 단계로서의 작업을 이뤄야 할 것입니다.

사회: 외국과의 비교, 기존 태제에 대한 안티테제 구성, 집단성 경계, 장르별 한국미 구현의 격차 등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앞으로 이를 고려해서 의미있는 미론의 풍경을 만들어나가야 겠습니다. 바쁘신데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

정리: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연재 순서>

1. 고유섭 → 김임수 계명대 교수

2. 안드레 에카르트 → 권영필 한예종 교수

3. 야나기 무네요시 → 이인범 한예종 한국예술연구소 연구원 

4. 김용준 & 이태준 → 홍선표 이화여대 교수

5. 윤희순 →최열 미술평론가

6. 맥킨 → 조은정 한남대 겸임교수

7. 디트리히 잭켈 → 박영숙 런던대 교수

8. 최순우 → 권영필 한예종 교수

9. 김원룡 → 이주형 서울대 교수

10. 이동주 →

11. 조요한 → 민주식 영남대 교수

12. 에필로그 → 기획의 진행과 의의에 대한 종합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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