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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인본' 의존한 연구 비판...검열의 상호성 탐구
'영인본' 의존한 연구 비판...검열의 상호성 탐구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4.12.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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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리뷰: 동아시아학술원 주최 '식민지 검열체제의 역사적 성격'(12.17)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이 일제 치하에서 식민지 경영의 주요 수단으로 기능했던 ‘검열체제’를 전체적으로 조명한 학술대회를 열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검열은 ‘판금’, ‘방영금지’ 등 검열 결과의 한 유형과 동일시돼온 경향이 있었다. 1970~80년대 군부의 판금도서목록에서 우리의 눈을 붙잡은 것은 ‘수갑’과 ‘포승줄’이었고 검열 주체들의 욕망도 그에 못지않게 단순화되는 감이 있었다. 무단통치기, 문화통치기 등을 거쳐 형성된 식민지 검열제도는 이런 군부 검열의 모델이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때때로 군부 검열은 식민지 검열의 연장선상에서 그것의 강압성을 지나치게 작동시키다가 민주화의 불씨를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식민지 검열제도는 군부시절의 그것과는 달리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문화적으로 잡아먹기 위해 운영된 것이었다. 그리고 ‘동양적 근대의 창출’이라는 일본 세계전략의 일환으로서 거점별로 유형을 이루며 관리돼온 것이었다. 그것은 식민지의 지적 활동을 제어하기 위해 매우 현실적인 측면에서 다듬어졌으며, 다른 측면에서는 결코 만만치 않은 유교이념을 간직한 조선의 내면에 ‘콤플렉스’로서의 ‘결여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큰 틀에서 움직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런 제도적 규정에 포섭되면서도 그것과 삶이 융합되면서 형성된 당시 식민지 조선의 문필활동에 문법화된 문화적 관습들을 가깝게는 군부 검열의 계보학적 기원으로, 멀게는 한국 언론의 총체적 파행운영과 운명적으로 매개시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력의 피어남은 ‘검열’이라는 주제가 갖고 있는 학문적 매혹이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총 5편의 논문들은 이런 식민지 검열체제의 역사적 성격이 무엇인지를 드러내기 위한 기초적 작업이라 할 수 있다. 1부에서는 정근식 서울대 교수(사회학)와 한만수 동국대 교수(국문학), 최경희 시카고대 교수(동아시아학)가 각각 ‘일제하 검열의 실행과 검열관’, ‘검열, 覆字, 그리고 원본 확정에 대하여’, ‘출판물로서의 근대문학과 텍스트의 불확정성’을 발표했다. 정 교수의 글은 검열제도의 형성을 총 3기로 나눠서 각각 어떤 인물들로 구성됐는지, 일본인과 조선인의 구성비율은 어떤지, 그들의 교육약력과 의식수준을 살피기 위한 문필활동의 흔적을 비롯해 방대한 자료를 대상으로 해서 깔끔하게 기초자료를 구조화시켰다. 한 교수는 그동안 ‘검열’과 ‘복자’ 문제를 5년 넘게 다뤄온 전문가답게 그것의 귀납적 개념규정부터 시작해, 검열과 복자의 유형까지도 대표성 있게 끌어내고 있으며, 이런 유형화된(붓칠, 연판깎기, 공란으로 두기, 문단삭제 표시) 검열출판물들의 비교검토를 통해 식민지기 문학연구에서 원본확정을 어떻게 해야할 지를 매우 명석한 방식으로 정리하고 있어 가장 돋보이는 발표였다. 최경희 교수는 푸코의 권력-지식 이론을 식민지기에 투영시켜 그 시대 문학이 검열관과 작가의 공동생산물이라는 다소 앞서나간 주장까지 펼쳤다.

2부에서는 박헌호 성균관대 연구교수가 ‘문화정치기 검열과 그 대응의 내적 논리’를, 한기형 성균관대 연구교수가 ‘문화정치기 검열체제와 식민지 미디어’를 각각 발표했다.

박헌호 교수는 식민권력과 언론매체의 관계를 중점에 두고, 언론매체들이 검열관들과 어떤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혀 있었는지와 동시에 민족적인 인쇄자본이 검열에 대항하기 위해 동원한 언어의 표현구조를 살피고 그 인식론적 기반을 따졌다. 한기형 교수는 검열이 한국의 미디어를 통한 한국의 근대 형성을 왜곡시킨 국가폭력이었으며, 그것이 어떻게 한국의 근대적 표현을 막고 관리했는지 살폈다. 각 논문들은 역할분담해 식민지 검열의 역사성을 전체적으로 추적하고 있어서 꽤 성공적인 앙상블을 이뤘지만, 돋보이는 것은 역시 한만수 교수와 정근식 교수의 논문이었다.

▲붓질복자를 국과수가 “慶北大邱府南山町四九 趙 楊 春”으로 해독해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한 교수는 특히 붓질로 칠해진 복자의 복원 가능성을 모색했는데, ‘조선의 언론과 세상’에 있는 붓질 복자 3곳을 표본으로 채택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맡겼다. 이 책을 표본으로 선택한 이유는 검열당하지 않은 원본이 살아남아 있어 국과수 검사결과와 비교할 수 있다는 점이며, 붓질이 진하게 된 곳과 연하게 된 곳이 골고루 분포돼 붓질 복자의 과학적 복원가능성을 가늠하기 위함이었다. 국과수의 판독결과 70.6%의 해독률에 83.3%의 정확도, 해독성공률은 59%를 보였다.

 
또 하나 한 교수는 한국문학 연구가 대부분 ‘영인본’에 의존해 이뤄지는데 영인본이야 말로 가장 믿을 수 없는 판본이라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깔끔하게 영인하려고 복자와 검열당국의 경고표시나, 한번 더 보기 위해 밑줄 친 부분까지 싹 다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본확정을 위한 기초적 작업으로서 출판하기 직전의 교정쇄를 검열하는 교정쇄검열과 영인본 문제를 검토해 국립중앙도서관의 검열본과 시중 유통본을 꼼꼼히 대조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기형·박헌호·최경희 교수의 논문이 실증적 치밀함과 그에 기반한 논리전개이기보다는, 다소 산만한 내러티브를 보여주며 또한 지나치게 근대성의 구현과 왜곡이라는 테마에 붙들려서 자유로운 논의를 전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놀랐던 점은 정근식 교수의 논문에서 살펴지는데 일제 검열관들이 각종 잡지에 발표한 글들이 당대 출판, 사상, 문학, 예술동향을 한해 단위로 정리하고 있어 좋든 나쁘든 일종의 ‘출판저널리즘’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들의 글을 조선인이 쓴 글과 비교하면 당대의 동향을 훨씬 더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이번 학술대회는 여러모로 풍부한 정보를 주고 또 협동연구의 성실성을 보여준 의미있는 학술행사로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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