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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용 '과학입국' 우려...삶과 유리된 문제의식
전시용 '과학입국' 우려...삶과 유리된 문제의식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4.12.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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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쟁점: '사이언스 코리아' 1년을 돌아본다

정부가 ‘과학입국’을 표방함에 따라 이공계 기피 등으로 축 늘어졌던 과학기술계가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올 한해 중앙일간지들도 ‘과학과 미래’ 등 여러차례 과학 관련 기획시리즈를 내보냈고, 내년엔 TV 과학전문채널의 신설, 중앙 방송의 다채로운 기획물도 대거 준비되고 있다. 

배경을 들여다보면 이 모든 것은 과학문화재단(이하 재단)이 진행하는 과학문화확산사업의 일환이다. ‘인쇄/방송매체지원사업’이 신설돼 돈을 많게는 시리즈당 1천5백만원을 지원한다. 언론이 과학강국의 도우미로 뛰는 것이다. 이것은 좋게도 나쁘게도 볼 수 있는데, 우선 정부가 과학을 문화의 문제로 다뤄나간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이 같은 인식의 변화는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과학기술기본법으로 ‘과학기술영향평가’ 제도가 도입된 것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과학기술이 우리 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력을 정책결정자, 과학자, 인문학자, 시민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가해 미리 점검하는 문화로서 이는 과학정책결정 및 추진과정의 투명화 확보, 엘리트들의 점유물이었던 과학지식의 민주화, 과학과 인문학이 분리된 ‘두 문화’ 극복의 첫단추를 채우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아무튼 ‘참여문화’의 중요성이 확산돼 엄청난 예산이 ‘과학의 문화화’에 쓰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재단이 추진하는 ‘사이언스 코리아’ 운동이다. 포항, 충주, 순천 등 교육열이 높거나 연구기반이 갖춰진 전국 12개 도시를 과학문화도시로 선정해 전국민 과학알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 12개 거점도시에 있는 대학에 지역과학기술진흥센터를 설치하고 재단-시청-대학-지역자치단체가 네트워크를 이뤄 각종 계몽활동을 한다.

이제 1년이 지난 이 운동은 관련 지자체의 의욕이 높아 ‘지방화’ 시대의 참여민주주의의 확산의 의미에서도, 그 현황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출발단계라 각 지역별로 부산스럽게 시민과 과학을 가깝게 할 행사들이 펼쳐지는데, 중점사업은 전국 3천5백 읍면동에 생활과학교실을 설치해 주1회 강의하는 것, 전국 각 초중고교에서 신청을 받아 과학학습반을 운영해 장기적으로는 교과과정에 통합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향이 크지는 않다.

신이섭 기획평가실장은 “초등학교는 실험도 하고 개울에서 고기도 잡는 등 활발하지만, 중고교로 올라오면 거의 활동이 없는 상태”라고 말한다. 과학지식포탈을 표방하며 수십억을 투자해 개발한 ‘사이언스올’(www.scienceall.com)은 과학지식을 무료로 제공함으로써 전국민 네트워크를 표방한다. 지금까지 1백90만명에 달하는 회원을 확보했지만 거의 초등학생이라 토론방, 커뮤니티 기능이 활성화되지 않아 대응책이 요구된다.

뿐만 아니라 재단 측은 과학커뮤니케이션 활성화 방안의 일환으로 과학커뮤니케이션 협동과정(석사)을 올해부터 서강대에 설치,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가 담당해 끌어나가기 시작했고, 역시 서강대에 2003년부터 과학문화아카데미를 설치해 과학 관련 종사자들의 재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박성철 교수부장은 “국책연구소 홍보담당자, 기자, PD, 교수들이 주로 와서 배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것이 과학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심화학습이 아니라, 기초적인 과학개론을 강의하는 수준이어서 국내 커뮤니케이션 담당층의 비전문성을 뒷감당해주는 차원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이것 말고도 과학문화재단은 과학문화 관련 기초연구조사지원사업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과학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중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이 시점에서 왜 ‘과학문화’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과학이해 수준이 높아져야, 국가정책에 대한 대중동의가 자연스럽게 생겨나고 과학강국이 돼 2만불 소득국가가 된다는 입장이다. 과학 관련 전공교수들은 ‘사이언스 코리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고, 직접 관계된 학자들은 그 의의와 한계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과학자사회와 문화에 대한 토론 필요

문화운동은 기본적으로 ‘삶’에서 출발해야 한다. 네덜란드에서 성공한 ‘사이언스 숍’ 운동이 시민들의 불편함을 과학자들이 직접 해결해주고자 한 과학지식의 공공적 활용에 대한 공감대 형성에서 비롯됐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사이언스 코리아’는 여전히 추상적 과학지식을 주입식으로 풀어나가려는 한국교육의 제도적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방적 계몽에서 벗어나겠다고 하지만 1년에 단 한권의 과학책도 읽지않는 국민이 90%가 넘는 나라에서 어떻게 그게 가능할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예를 들어 영국의 성공한 독서캠페인인 ‘북스타트’ 운동을 빌어와 몇해 전부터 ‘사이언스 북스타트 운동’을 펼쳤지만, 그 효과는 별로 없었으며 올해 이 부분 예산은 대폭 삭감돼 있어 과연 ‘지속성’에 대해 의문이 들게 한다.
문제는 우리 삶 속에 문법화된 과학문화는 외면한 채 과학문화가 ‘외부’에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과학정책 담당자들과 학자들의 사고방식(주변부인식)에 있다. 과학문화는 과학을 다루는 과학자와 업계 종사자들의 주변에 존재한다. 가령 PBS(project base system) 안에서 개인간 치열하게 경쟁하는 학자들이 바로 ‘문화’이고, 과학자로서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있는 이들의 현실이 문화이다. 하지만 이런 본질은 항상 뒷날의 숙제로 밀려난다. 김환석 국민대 교수는 ‘과학자사회’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며 “그것의 형성, 규범, 보상체계, 계층구조(성별, 권력구조), 사회화과정, 인지적/사회적 연결망” 등을 분석하고자 하지만, 실제로는 외국의 관련도서에 대한 리딩모임 제안에 그치고 있다.

문화운동의 본질을 파악한 리더가 없는 상태에서 과연 ‘사이언스 코리아’라는 운동이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과학에 대한 관심은 과학의 위험성에 대한 꼼꼼한 숙지를 통해 훨씬 더 강렬하게 생겨날 수 있다는 점을 과학의 긍정성에 덧붙여 추가적으로 상상하지 못하는 과학문화운동은 활로가 좁아 보인다.

 요즘 이공계 위기의 핵심은 우수인력의 해외유출에 있다. 탈민족주의 시대에 과학자들의 국가 소속감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사회지도층의 자녀들이 미국의 시민교육을 받는 현실에서, 능력 있는 교수를 좇아 떠나는 젊은 과학자들을 말릴 수는 없다. 과학 인재들이 꿈을 구체적으로 펼쳐나갈 공간의 합리성, 그 공간의 살맛남에 대한 솔직하고 공개적인 토론이 없이는 이공계 위기는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인식이다. 기본적으로 대학의 과학교육과 연구환경이 변해야 한 입시제도의 비효율성도 줄어들고, 중고교에도 과학을 위한 기초공부환경이 조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사이언스 코리아’에 동원된 지방대 과학자들이 열심히 사회봉사를 하고 있지만, 더욱 필요한 것은 자신들의 문화에 대한 과학자들의 비판적 성찰이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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