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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무용론 확산을 대하며
책 무용론 확산을 대하며
  • 강내희 / 서평위원·중앙대
  • 승인 2001.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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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수상]

근래에 들어와 책 문화가 위협을 받고 있는 듯하다. 소위 영상세대가 등장해 책과는 거리가 먼 문화적 활동에 빠진 인구가 늘어난 데다가, 디지털 복제 기술로 문자 텍스트의 기술적 조건이 크게 바뀐 때문이라고들 한다. 컴퓨터 화면이 책을 대체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겠다. 바야흐로 정보의 바다 ‘서핑’이 독서보다 더 쓸모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책 무용론이 확산되고 있다.

과연 책은 쓸모가 없어질까. 책 무용론의 확산에는 문명 변동에 대한 오해가, 그리고 이 변화를 활용하여 이득을 보려는 이해타산이 작용하는 것 같다. 먼저 오해를 살펴보자. 디지털 복제가 중요한 문명적 전환을 가져올 것임은 분명하다. 이 기술은 지식과 정보의 저장 및 검색이나 생각의 표현과 텍스트 구성, 저자와 독자의 상호 작용 등을 획기적으로 전환시킨다. 이에 따라 지식 생산이나 미학적 실천도 크게 바뀔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책의 쓸모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책이 중요한 지적 도구가 된 것은 지식과 정보의 효과적 저장이라는 기술적 효용성 때문만은 아니다. 지식과 정보의 생산, 예술적 표현은 인간의 신체적 조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책이 정보와 지식의 저장이나 습득에, 서사나 논증과 같은 상상적 혹은 지적 실천에 활용되는 것은 그것이 신체에 맞기 때문이기도 하다. 들고 다니고, 펼쳐서 읽기에 책만큼 편한 것이 어디 있는가. 오래된 도구라도 쓰임새가 좋은 것은 그냥 사라지는 법이 아니다. 비행기가 나와도 자동차는 계속 타지 않는가. 디지털 복제로 책이 필요 없다는 것은 오산이다.

책 문화를 위협하는 것은 오해만이 아니다. 최근 정부는 디지털 콘텐츠 사업에 부쩍 열을 올리고 있다. “산업화는 뒤졌지만 정보화에는 앞서가자”는 구호를 힘차게 외치며 말이다. 이 과정에서 웃지 못할 일도 생기는 모양이다. 그러잖아도 대학도서관, 공공도서관 가릴 것 없이 부족한 것이 장서인데, 정보화를 추진한다며 도서 구입 예산까지 가져다 쓴다는 것이다. 책 무용론은 그렇다면 정보화담론으로 이득을 챙기는 쪽에서 퍼뜨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책의 가치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책 문화는 보호받을 필요가 있다. 영상문화, 디지털문화의 발전 속에서 변동을 겪고 있는 문자문화의 정상적, 바람직한 전개를 위해서도 책은 소중히 다뤄야 한다. 책을 여느 공산품과는 다른 문화적 산물로, 소중한 지적 매체로 간주하고, 그것의 가치를 올바로 평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책 문화가 지닌 문명사적 의미를 놓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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