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3:30 (금)
"때론 인터뷰이와 불화하는 인터뷰어를 원한다"
"때론 인터뷰이와 불화하는 인터뷰어를 원한다"
  • 최성일 출판평론가
  • 승인 2004.12.11 00:00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트렌드 비평: 올해 나온 인터뷰집의 문제

최성일 / 출판평론가

전기 평전류, 사진집과 함께 대담집은 한동안 우리 출판의 질적 후진성을 대변하는 지표로 이야기되었다. 3대 선진 출판 장르의 하나라는 대담집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에 와서의 일이다. 2001년 국내 기획의 대담집 두 권이 독자의 호응을 얻은 이래, 다채로운 기획물이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지난 4년간의 국내 기획 대담집 출판의 흐름을 돌이켜 보면, 아쉬움 또한 없지 않다. 다양성은 어느 정도 확보했으나, 내실은 좀 부족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든다. 대담집의 내실을 다지는 일은 일차적으로 인터뷰어의 몫일 것이다.

아무튼 인터뷰의 전문성과 관련해 2004년 출간된 대담집을 살펴보는 작업은 유의미하면서도 신중한 접근을 요한다. 남재일의 ‘나는 편애할 때 가장 자유롭다’(시공사 刊)와 백은하의 ‘우리시대 한국배우’(해나무 刊)는 서로 많이 닮았다. 우선, 偏愛하면서 소통 의지를 드러낸 점이 그렇다. 偏僻되면 곤란하겠지만 편애하기는 어찌 보면 인터뷰어에게 불가피한 측면이다.

편애는 인터뷰 대상자의 인선에서부터 나타나는데 남재일은 부제목에다 이를 “우리 시대 자유인 11인”이라고 언명했다. 하지만 편애하는 범위와 세기는 백은하가 더 좁고, 더 강력하다. 남재일이 만난 자유인 11명은 국내 작가들과 법률가, 여성운동가, 그리고 일본 작가들로 이뤄져 있다. 반면, 백은하가 만난 20인은 모두 동시대의 우리 배우들이다. 그 20명 중에 ‘국민배우’ A와 ‘월드스타’ K, 그리고 주가가 높은 H가 빠진 점이 눈에 띈다.

적어도 인터뷰 대상자만을 놓고 보면, 두 저자에게는 분명 전문성이 있다. 또 둘은 인터뷰어로서의 자질도 충분하다. 그러나 영화 전문 인터뷰어, 문학 전문 인터뷰어라 부를 수는 있어도 전문 인터뷰어라고 칭하는 데에는 머뭇거리게 된다. 그것은 전문 영역과 전문적 자질의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독자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두 사람은 기자 출신이다. 인터뷰는 기자의 주된 업무이기에 아무리 인터뷰를 잘 해도 기자를 전문 인터뷰어라고 하진 않는다. 물론 두 저자는 기자를 그만 두고 책을 펴냈다. 게다가 남재일은 인터뷰 대부분을 프리랜서 신분으로 썼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중앙 일간지 문화부 기자의 후광이 남아 있다.

유려한 문체와 멋진 배우들의 사진이 어우러진 백은하의 인터뷰집은 아주 좋은 책이다. 인터뷰를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책에 등장하는 배우의 이미지가 하나같이 좋다는 점은 신기하기까지 하다. 거부감을 희석시키는 백은하의 마술.

남재일의 솜씨 또한 이에 뒤지지 않는다. 남재일의 인터뷰 가운데 소설가 장정일 편에만 출전 표시가 없다. 그런데 글이 어딘지 익숙하다. 알고 보니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행복한책읽기 刊)에서 읽었다. 그 때 이 전직 기자의 글솜씨가 남다르다 여겼는데 책에 실린 다른 인터뷰들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남재일의 인터뷰 가운데 김훈, 강금실, 이창동, 장정일 편이 잘 읽히고, 여성운동가 로리 주희와의 인터뷰는 제일 안 읽힌다. 잘/안 읽히는 인터뷰의 차이는 많든 적든 인터뷰이에 대한 정보의 유무와 관련이 있는 듯싶다.

나는 김훈을 별로 안 좋아한다. 그런데 남재일의 인터뷰를 통해 김훈의 몇몇 견해에 호감을 갖게 되었다. “현대식 공장은 생명을 가진 것에는 유해한 공간이다”는 그 중 하나다.

로리주희와의 인터뷰는 안 읽는 편이 나았겠다. 이는 물론 내가 여성운동에 무지한데다가 반페미니즘 성향까지 있어서일 것이다. 나도 그녀의 이름에 대해 남편성을 땄냐고 묻는 여기자와 다를 바 없다. 아니면 부모성 함께 쓰기를 하면서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은 건지. 책에 이에 대한 설명이 없어 모르겠다. 그녀의 발언은 불편하지도 불쾌하지도 않았다. 다만 짜증이 났다. “노동자에 감정이입할 만한 계급적 정서”, “대중들은 모르니까”, “소통되지 않는 가정은 무덤” 같은 표현이 특히 그랬다. 그런데 남재일은 아주 긍정적인 어조로 인터뷰를 마무리해 나를 의아하게 했다.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대담집과 전문 인터뷰어의 앞날이 그리 밝진 않을 듯싶다. 이 글의 애당초 기획 의도는 지승호의 ‘마주치다 눈뜨다’(그린비 刊)까지 묶어 전문 인터뷰어의 활약상을 부각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사회 탐구’를 부제로 하는, 시쳇말로 요즘 잘 나가는 전문 인터뷰어의 이 책을 나는 읽지 못했다. 읽기 어려웠고, 읽을 수 없었다. 왜 그랬을까.
“아직은 보편적으로 인터뷰 자체가 자기 텍스트로 인정받기는 힘든 것 같다”는 인터뷰 자체의 텍스트적 한계성과 지승호의 자체 분석대로 일정 부분 그에게 “아마추어적인 부분이 있어서일 것이다.” 실제로도 인터뷰가 너무 길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옮겨지면서 여과의 과정을 거쳤겠지만 이 책에 실린 인터뷰들은 인터넷의 속성을 편집하는 데 실패한 걸로 보인다.    

    
하지만 더 큰 원인은 내게 있다. 나는 이제 “현재 우리 사회에서 첨예한 문제들에 대해 발언하는 지식인 및 언론인들과 함께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대화의 기록”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나는 이 책에 등장하는 “우리 사회에서 몇 안 되는 교양있는 지식인들”에게 대체로 유감이 없다. 내가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 까닭은 텔레비전의 ‘심야토론’과 ‘100분토론’을 안 보는 것과 같다. 심드렁해서다.

감히 말한다는 단서를 달았어도 “이 책은 시대의 전망에 대한 나름의 뜨거운 성찰이자 이 시대와 일정 부분 의도적으로 불화하는 지식인들의 고뇌에 관한 기록이다”라는 진술은 머리말 문구로 부적절하다. 또한, 니체의 경구를 방패삼으려 하지만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말의 진수성찬인 대담집일수록 말을 아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때로 인터뷰이와 불화하는 인터뷰어를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거 참... 2004-12-17 02:11:49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공부 많이 하신 분들이라 좋으시겠네요. 잘 모르시고 하신 말씀도 '내 느낌이 그러니까 늬들도 그리 알아.'해 버리시면 다 믿을테니까. 그리고도 그걸 '내가 좀 게을러서 그래. 니들이 부지런히 생각해서 새겨들어야지.'하고 훈계하실 수 있으시니까.

튀고 싶으셔서 그런 어조를 차용하신건지는 모르겠지만, 주관적인 검증을 하지도 않으시고 주관으로만 말하시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 책을 만들어 내기 위해 수 많은 날들을 뛰어다녔을 사람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신 듯 합니다.

수긍할 수 없는 이유를 들이 밀고 '내 생각은 그래. 근데, 사실은 그거 관심 없어서 잘 몰라.' 해 버리시는 태도에 아연실색합니다.

좀, 알고 얘기합시다.

도데체. 2004-12-17 01:16:27
적어도 어떤 책에 대한 글을 쓴다면...
게다가 출판평론가 라는 꼬리까지 달고 다니는 입장이라면
책을 한번쯤은 읽고 나서 써야하는거 아닐까요?

읽어보지도 않은책에 대해서 [감히] "앞날이 밝진 않다." "실패한걸로 보인다". "시대착오적이다"는 판단을 내리는 저의와 근거가 무엇인지 심히 궁금하군요. 새로나온 ROCK아티스트의 CD를 사서 비닐뜯고 속지좀 넘겨본 후에 휴지통에 던져 넣으면서 "난 사실 ROCK 분야 싫어하는데 이 앨범도 졸작이네." 하는거랑 뭐가 다를까 싶네요. 그러고서도 음악평론가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관심도 없고 심드렁한 분야의 텍스트를 단지 "대담집" 이라는 이유로 같은 범주에 넣은 후, 읽어보진 않았는데 몇장 넘겨보니 실패작 같다고 감히 속단하는 무모함을 보면 "도데체 이 사람이 출판평론가라는 최소한의 직업윤리는 갖춘 사람인가?" 하는 의문 까지 드는군요. 혹시 지승호 인터뷰어에게 어떤 열등감 이나 컴플렉스 또는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해 의도적으로 깎아내린 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리고, "마주치다 눈뜨다" 는 최소한 "테마가 있는 책읽기" 보다는 성공작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