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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패러다임이 바뀐다…한국은 한발 뒤쳐져
과학기술 패러다임이 바뀐다…한국은 한발 뒤쳐져
  • 이정모 성균관대
  • 승인 2004.12.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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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향_국내 융합과학연구와 인지심리학

2002년을 기점으로 미국, 캐나다, 유럽공동체는 미래 과학기술의 틀을 급격히 재구성하고 있다. 그 틀은 과학기술에 대한 종래의 한국적 고정관념을 넘어서는 틀이다.

2001년 미국 상무성과 과학재단(NSF)은 나노과학 연구자들의 요청을 수용해, 미래 과학기술연구, 산업발전, 과학기술교육 및 정책면에서 과학기술이 어떤 틀에서 추진돼야 할지를 과학기술계를 이끌고 있는 주요 학자군과 전문가들, 정책연구자들에게 의뢰했다. 그 결과, 향후 20여년 동안 추진해야할 과학기술의 새로운 틀로 도출된 것이 ‘NBIC 융합과학기술’이다. 미래 과학기술은 Nano(나노), Bio(생명과학), Info(정보과학), Cogno(인지과학)의 4개의 핵심축이 수렴, 융합돼 교육, 연구, 응용개발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자극받은 캐나다는 1년 후 ‘Innovative Disruption Technologies’라는 개념으로 재구성한 틀을 내놓았다. 유럽공동체에선 미국의 NBIC 틀에 유럽의 특성을 가미한 CTEKS(유럽지식사회를 위한 융합과학기술) 틀로 2004년 9월에 제시했다.

서구의 이러한 미래과학기술 틀 재구성의 주요 특징 셋을 말한다면; 첫째, 과학기술의 각 분야들이 초기단계부터 수렴, 융합되어 연구, 교육, 개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0세기 후반 이전엔 자연(인간의 신체 및 심리현상 포함)의 여러 현상 자체가 분화된 것으로 간주됐고, 따라서 과학기술의 각 분야가 물리, 화학, 생물 등으로 독립적인 영역을 구축해왔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변화가 일어났다. 그 동안 이뤄진 물리, 생명, 정보과학의 연구, 인간 노와 마음에 대한 연구, 나아가 각종 공학연구결과들이 집적되고 수렴되면서, 종전의 쪼개진 단위의 연구들은 과학적 설명 도출이 어렵고, 비효율적인 작업임을 알게 됐다.

우리는 과학기술의 틀을 짜야 하는 새로운 변혁의 문턱에 이르렀다. 더 이상 낱개로 조각난 ‘자연(nature)’ 개념이나 과학기술개념이 아니라, 자연의 통일성, 과학의 수렴적 통일성에 바탕한 효율적 과학기술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한 접근은 미래 인류문화와 복지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클 것이며, 이런 절실한 인식에서 NBIC 융합과학기술 틀이 도출된 것이다.

둘째는 전통 자연과학공학기술과 인간과학의 긴밀한 연결의 부각이다. 미국 NSF의 NBIC 틀은 궁극적 목표를 인간의 수행 개선에 두고 있다. 인간요소와 연결된 과학이어야 인류미래에 중요한 의의를 지닐 것이다. 유럽의 CTEKS 틀은 이를 사회문화적 요인으로 확장시켰다. 여기엔 자연히 인지과학이 핵심으로 들어오게 된다. 인지과학은 컴퓨터, 마음, 뇌가 정보처리라는 원리에 기초하는 유사한 시스템이라는 것을 제시해, 정보처리 패러다임, 인공지능, 디지털 사회 등을 출발시킨 복합과학이다. 감각, 신체운동, 인지 및 감성의 정보처리적, 신경적 메커니즘, 그리고 각종 인공물과 인간의 상호작용, 사회적 인지 등이 모두 인지과학의 영역이기에, 인간요소가 연결된 미래융합과학기술의 핵심축이 되는 것이다. NBIC는 복잡계 연구에 상위수준의 뇌-마음을 통합해 복잡계 과학 개념을 확장시키고 있다.

셋째는 과학교육의 재구성이다. NSF는 이러한 새 틀의 과학기술 중심사회를 이뤄내기 위해 초등학교부터 과학교육과 훈련 틀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전통적 이공계 과목의 학습, 교육 틀이 NBIC 융합기술 중심으로 전면적으로 재구성돼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 융합과학기술 틀은 한국 과학기술 미래에 어떤 시사점을 지니는가. NBIC 융합과학기술의 구체적 연구 주제로 거론된 것을 일부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유전자연구 게놈 프로젝트처럼 인간의 뇌, 특히 인지기능을 리버스 엔지니어링해서 밝혀내는 인간 인지체 연구, 개인의 학습인지기술의 뇌원리에 기반한 개선, 개인 대 개인 또는 개인 대 컴퓨터기기 간의 인지적 커뮤니케이션의 개선, 신경공학을 포함한 인간-기계 상호작용의 완벽성 추구 및 인간/로봇의 실용적이면서 ‘지능적인’ 생활/작업 환경 구축, 신체기관 혹은 생리적 안정의 감시를 대체하는 것으로서의 나노기술 기반 이식과 재활 생명체계, 1천여개의 세포덩이를 최소분석단위로 하는 현재의 뇌영상기법에 나노기술을 도입해 한두 개의 세포를 최소분석단위로 하는 뇌영상기법을 개발해 인지기능 규명, 뇌인지 기능 작동 원리가 구체적으로 구현, 계속 개선되는 인간같은(humanlike) 지능형 로봇개발 등이다.

이러한 수렴적, 융합적 과학기술이 연구, 교육되기 위해선 20세기적 틀인 IT-BT-NT를 3두마차로 하는 국내의 미래과학기술 정책 틀은 수정돼야 한다. 인간 같은 로봇, 인간 감성과 인지에 가장 적합한 각종 기기의 개발, 산업 등 각종 상황에서의 인간의 감각-인지-운동 능력의 증진 등은 인지과학이 연계되지 않고서는, 그리고 분할된 과학교육으론 도출해내기 어렵다. 기존 국내의 융합과학기술 연구는 협의의 융합이지, 포괄적인 새 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NBIC적 융합과학기술이 추구되지 않은 것에서 이미 한국 과학기술의 한계가 몇몇 분야에서 드러나고 있다. 서구의 인지과학기술 역사가 30여년을 넘었는데 국내 유수한 이공대, 과기대에 변변한 인지과학 과정 하나 없다. 가장 시급한 것은 과학교육 체제의 전반적 재구성이다. 한국의 융합과학기술의 미래를 위해 기존 과학교육정책과 연구지원정책 틀이 재검토돼야 할 것이다.

이정모 / 성균관대 인지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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