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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연애는 안전한가요
당신의 연애는 안전한가요
  • 김재호
  • 승인 2021.05.28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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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 지음 | 미디어일다 | 215쪽

“너를 많이 사랑해서 그래.”
“사랑한다면서 이것도 못 해줘?”
사랑이라는 말로 정당화되는 폭력들
‘사랑싸움’이 아니라 ‘데이트폭력’이라 인지하기까지

저자는 갓 대학을 졸업한 사회 초년생 시절, 직장인 스터디 모임에서 재치 있는 말과 날카로운 분석력, 청소 등 궂은일도 앞장서서 하는 태도, 사회적 약자를 생각하는 따뜻한 모습 등으로 주변에서 인정받는 한 남성을 알게 된다. 사회 초년생인 그녀와 달리 그는 이 업계에서 경력이 많고 유능해서 믿고 따를 수 있는 선배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가 어느 시점부터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현하며 다가왔다. 두 사람은 친밀해지기 시작했다.
좋은 사람을 만나 알콩달콩 연애하기를 꿈꾸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그녀. 그러나 연애가 시작되자 설레고 행복한 시간도 잠깐. 이내 두 사람은 자주 다투게 된다. “다른 사람과는 문제없던 일들이 그와는 다툼 거리가 되곤 한다.” 사귄 지 2개월 차에 쓴 일기의 첫 부분이다.
그녀가 친구들과의 약속이나 지인들과의 모임에 나갈 때마다 그는 언성을 자주 높이곤 했다. “역시 넌 사람을 배려할 줄 몰라.” 그는 그녀가 ‘이기적이고 자기 자신밖에 모른다’며 비난했다.
그녀는 그럴 때마다 “그의 통제와 간섭이 불편했지만 나에 대한 ‘근심과 보호’라고, 남다른 ‘애정과 관심’이라고 이해했다. 나를 위하는 마음이 너무도 큰 나머지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얼마 후 그녀는 “어느새 그와만 만나고 그와만 대화를 나누었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만났으며 하루 평균 너댓 시간씩 통화했다. 그와 모든 일정을 공유”하기까지 이른다. 또 “그가 한 말에 상처 입으면서도 연인 사이에 있을 수 있는 ‘다툼’으로 이해”한다.

사랑인지 폭력인지 헷갈린다면 그것은 폭력이다
나에게 모욕적인 말을 하는 사람과 사랑을 고백하는 사람이 같은 사람이었다

2017년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데이트폭력 피해를 경험한 20대 여성들의 경우(복수 응답으로), 이후에도 연인과 관계를 유지한 이유에 대해 ‘헤어질 만큼 폭력이 심하지 않아서’와 ‘노력하면 변할 것이라 믿어서’, ‘여전히 사랑했기 때문에’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사랑’은 가해자와 피해자에게 다르게 작용한다. 가해자는 피해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폭력’을 행사하지만, 피해자는 가해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용서’한다. 그러나 결과물이 폭력인데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과 이해만 요구한다면 과연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녀는 서서히 ‘정상적인 연인관계’가 아님을 깨닫기 시작하지만 단호하게 그와 헤어지지 못한다. “그를 생각하면 고통스럽고 헤어지고 싶었지만 동시에 문제아를 둔 보호자의 심정으로 그를 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의 폭력은 걷잡을 수 없이 심해졌다.

연애 당시 인터넷에 업로드했던 일기, 데이트폭력을 분석한 부록들 담겨
이별 후 피해 회복과정에 도움 준 여성단체에 무한한 감사와 지지 보내
책 인세의 전액 지역 여성의전화에 기부하기로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데이트폭력 피해를 경험한 여성 중 4.8%만이 경찰에 신고했다고 답변했다. 데이트폭력은 친밀한 관계라는 특성상 중대한 폭력이 발생하기 전에는 신고에 소극적인 경향을 띤다. 경찰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데이트폭력 신고 건수는 2019년 19,904건으로 하루 평균 55명꼴이다. 그렇다면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데이트폭력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일까.

“그에게서 벗어난 지 약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결코 그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내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나는 무엇이 잘못된 줄도 모르고, 피해자를 탓하는 문화에 동참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온전히 공감해주는 ‘한 사람’만 있으면 산다고 한다. 나의 그 ‘한 사람’은 한 여성단체 활동가였다. 그 선생님에게 처음으로 꽁꽁 감추어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다시는 반복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을 담아, 그를 만난 시작부터 끝까지, 그와 있었던 사건과 그때의 감정을 모두 쏟아냈다.”

“이제 그의 존재는 더 이상 나를 휘두르지 못한다.”
“나는 소중한 존재이고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그의 실체가 보인다.”

책의 전체 구성은 연애의 시작부터 헤어짐, 이별 후 회복하는 과정까지 시간순으로 담겨졌다. 그리고 저자가 연애 당시 인터넷에 업로드한 일기로 각 장이 시작되며, 이어서 당시 있었던 사건들을 재해석한다. 그리고 각 장의 뒷부분에는 데이트폭력을 분석한 부록들이 실려있다.
즉, 일기로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재현하며 당시에는 ‘폭력’이라 인지하지 못했던 일들에 대해 관련 자료들과 전문가들의 연구에 비추어 자신과 그 사람의 행동을 재정리한다.

“이후 가장 공을 들인 일은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왜곡된 인식을 버리고 그와 만난 8개월의 기간을 재해석하는 작업이었다. 그가 내게 왜 그랬는지, 나는 왜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내가 당한 일을 스스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구하려 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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