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9 08:40 (월)
시각: 우리 언론의 미 대선보도
시각: 우리 언론의 미 대선보도
  • 최경진 대구가톨릭대
  • 승인 2004.11.1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론장 역할 포기...이념적 골 파는 지식인들

최경진 / 대구가톨릭대 언론학

미 대선이 조지 부시의 승리로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면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일종의 선거후유증으로 술렁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그 어느 나라보다 미국과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에게 미 대선은 최근 그 어떤 현안보다 중요한 이슈였고 사건이었다. 미 대선 결과가 한반도 정책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될지 또는 냉각상태의 북핵문제 논의를 어떤 양상으로 진전시키게 될지, 과연 6자회담 성사 가능성은 있는지 등 국제적으로 매우 민감하고도 중요한 현안들이 미 대선 결과라는 변수에 의해 그 향방이 가늠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발 빠른 국내언론들은 관계 전문가나 교수들을 초청해서 인터뷰나 토론 등을 통해 나름대로 미 대선전후 국제정세 진단과 더불어 특히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정세변화를 논의하는 등 시사의제 마련에 분주하고 있다. 하지만 미 대선을 종합적으로 다양한 맥락에서 진단하고 분석하면서 보도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이른바 ‘경마식’ 중계보도 등에 치중하면서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오마이뉴스, 10월 27일자 ‘한국시각은 없고 외신중계만’).


조지 부시와 존 케리 후보간의 TV토론이 누구에게 우세했고 지지율 상승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에 지나치게 치중했기 때문이다. 미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 이를 인용보도하는 데에만 급급했을 뿐 정작 양 후보 진영에서 제시한 정책공약이나 국제관계 공약 등에는 무관심했다는 지적이다. 설상가상으로 미 대선과는 무관한 가십성 보도마저 나와 독자를 우롱하는 듯 했다(국민일보, 11월 20일자 10면 ‘미 공화당 지지자들 성 만족도 높다…ABC, 민주당보다 적극적’).


선거가 끝나고 존 케리 후보의 패배연설이 있은 직후부터 한국 언론은 부랴부랴 향후 대미관계 등에 대해 지면과 방송시간을 할애하기 시작하면서 의제개발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존 케리 소속의 민주당은 국내언론 정치뉴스에서 게 눈 감추듯 자취를 감추고 말았고 오로지 조지 부시와 공화당이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한 교수들이 중심이 된 외교 전문가들은 미 대선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서만 언급했지, 대선 후 미국에 대한 우리의 능동적 외교자세나 역량에 대한 근본적인 분석은 내놓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조선일보, 11월 8일자 ‘한반도에 미칠 영향은’).


뿐만 아니라 부시나 미국에 대한 찬반 성향의 논조를 담은 우리사회 지식인층의 이분법적 이데올로기는 자칫 사안을 분열과 대결구도로 몰아갈 우려마저 있다. 지나친 적대도 문제지만(11월 4일자 경향신문 사설, ‘美대선, 유감스런 부시의 당선’) 안보위기를 앞세워 대미의존을 동맹으로 미화시키는 것도 허구성이 있다고 본다(11월 4일자 동아일보 사설, ‘美 대선, 한미동맹 재도약 계기로’). 더 나아가 진보?보수의 대립과 관련, 대한민국을 김일성 추종세력과 박정희 추종세력의 각축장쯤으로 본다면 이는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조선일보, 11월 5일자 칼럼 ‘金日成도, 朴正熙도’).


한 마디로 언론의 자의적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을 바라보는 우리사회 지식인층의 시각을 이분법적 인식의 틀 안으로 넣어 범주화하는 것은 언론권력의 또 다른 모습이다. 결국 여론형성의 공론장을 주도하는 언론이 우리사회의 미국 전문가 그룹이나 지식인 계층을 자의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방송과는 달리 신문의 경우, 보수신문들과 진보신문들은 자사의 논조에 맞는 논객들에게만 지면을 할애하기 일쑤고 지상토론회나 좌담회 역시 다양한 견해를 피력할만한 전문가들이 등장하기보다는 비슷하거나 같은 목소리를 내는 지식인들로만 채워지고 만다. 그래서 요즘 신문들을 보면 다양한 견해들이 교류되는 토론장이라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독자들을 주도하는 듯 하는 주장이 난무하는 성토장 같기도 하다.


서로 다른 생각과 주장을 담은 지상 토론회나 인터뷰는 언제부턴가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다양한 입장과 안목이 교류되는 공론장이 제공됐던 때는 그래도 ‘서로 다름의 미학’이 존재했고 지식인들이 나름대로 소신을 갖고 토론하면서 주장을 펼칠 수 있었다. 지금처럼 매체들이 자사의 논조를 이유로 한쪽으로만 치우친 주장들만을 담는다면 지식인들은 운신의 폭에 그만큼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 나름대로 분명한 이념과 주관이 있는 지식인들이 ‘그들에게 어울리는 매체가 이미 정해져있다’면 이는 지나친 과장일까. 슬픈 지식인의 현실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