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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논쟁: 네그리·하트의 '다중'(multitude) 둘러싼 접전
해외논쟁: 네그리·하트의 '다중'(multitude) 둘러싼 접전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4.11.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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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多衆'은 추상적·현실회피적?

▲네그리(왼쪽)와 하트 ©
미국학계가 네그리(사진 왼쪽)와 하트의 공동저서 ‘제국’과 ‘다중’을 갖고 논쟁중이다.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 11월 5일자에 기고한 스콧 맥릭미가 현단계 논쟁지형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나를 흥미롭게 전해주고 있다.

지난 2000년 출간된 ‘제국’은 미국사회에서 좌파 이론서치고는 드물게 4만부가 넘게 팔리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학계의 평은 둘로 갈렸다. 프레드릭 제임슨 듀크대 교수는 “뉴밀레니엄의 훌륭한 이론 종합서”라고 극찬한 반면, 프랜시스 후쿠야마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현실성이 완전히 떨어진다”라고 혹평했다. 이후 출간된 ‘다중’(multitude)은 ‘제국’에서 새롭게 떠오른 핵심 개념어 ‘다중’을 좀더 명확하게 풀어쓴 책으로 ‘제국’에 대한 일종의 보론 성격을 띤다.

네그리 연구로 경제학계에서 최초로 학위논문을 받았던 해리 클리버 텍사스 오스틴대 교수는 두 책에 대해 “좌파적 틀에서 벗어나 보다 다수에게 다가가려는 포스트모던적 시도였다”라며 “이들 책은 비즈니스스쿨에서도 읽힐 정도로 세계를 잘 설명해준다”라고 평가한다. 반면, ‘지극히 추상적’이란 비판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찰리 베르취 아리조나대 교수는 “주제를 세분화시켜 구체적으로 논하지 않았기 때문에 매력을 느끼기 어려운 면이 있다”라고 평가한다. 이에 대해 클리버 교수는 “네그리는 구체적 경제관련 연구를 많이 해왔기 때문에, 그런 전력이 이 책의 추상적 부분을 충분히 메워준다”라고 옹호한다.

한편 ‘다중’ 개념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댈러웨어대의 허트필드 연구원은 자신의 저서 ‘주체의 죽음’에서 ‘다중’이란 개념이 “왜, 누가 함께 결합해서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그는 하트와 네그리의 급진주의를 ‘정치학으로부터의 회피’라고 규정하고 나선다. 그에 따르면 “한쪽 운동세력을 자극하면 다른 한쪽은 언제나 그로부터 배제되기 마련”이라는 것.

이런 비판에 대해 두 저자는 ‘다중’은 “인간본성에 가깝고, 권위에 저항하며, 압제에 저항하는 하나의 힘”이라고 전제한 뒤 “우리의 다중은 아직 없는(not yet) 상태”라고 밝히고 있다. “정치적 프로젝트를 창조해내는 완전히 색다르고 독립적인 이익에 기초한 잠재세력”이라는 것이다.

이런 애매한 태도에 대해 “네그리가 대중(참여) 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가 조정되는 국면을 두려워한다”라며 “다중이라는 모호한 개념으로 현실을 회피하지 말라”고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하트는 “우리는 정책수립자가 아니다”라고 반박하면서, 네그리와 자신이 현 세계민주주의의 단계에 대해, “제국을 대체하게 될 몇 가지 개념을 발전시키고 있다”라고 ‘기다림’을 주문했다.

하트는 “현 단계에서 분명한 것은 질문이다”라며 “무엇으로 대체될 것인가, 그것은 어디로부터 올 것인가”등을 질문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답할 단계는 아니다”라며 좀 더 개념확립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하트·네그리 논쟁과 관련, 미국뿐 아니라 남미 좌파사상가들에게서도 비판서들이 꾸준히 나올 예정이다.

아틸리오 A. 보론은 ‘제국과 제국주의: 하트와 네그리 읽기’라는 책을 내년 4월에 출간할 예정인데, 그 내용은 하트·네그리의 개념들이 분석적으로 깊은 오해에 기반해 있을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에 대한 정치적 저항의 함의를 잘못 이끌어내고 있으며, 또한 남미 사상가들의 경험적이고 학술적인 분석들을 모두 무시하고 있다는 비판을 담을 예정이다. 그는 하트와 네그리의 개념들이 ‘주소불명의 제국주의’라고 비판하며, 여전히 견고한 세계자본 세력을 비판할 예정이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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