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지리학’이라는 말이 국내에 탄생했다. 지난 11월 5일 동국대 한국문학연구소(소장 김태준 동국대 교수)가 주최한 국제학술대회 ‘한국 문학지리학의 새로운 모색: 타자체험과 자기구성으로서의 여행’에서다. 주최측은 “한국인의 해외체험과 외국인의 한국체험을 드러낸 글쓰기를 학제간 논의해 한국학의 전망을 모색하려 했다”라고 밝힌다. 혜초의 구법순례 과정에서 탄생한 ‘왕오천축국전’을 필두로 연행사와 통신사의 해외 체험, 서양인들의 조선체류기, 신라와 당 사이에 있었던 문인들의 교류 등의 글쓰기에서 ‘타자체험’과 ‘자기구성’을 논해봄으로써 ‘문학지리학’이라는 뭔가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을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
‘지리학’과 ‘역사학’의 차이 고려해야
문제는 문학의 옆자리로 끌어들인 '지리학'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발표자들이 별로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문학지리학을 위한 출발선상의 토론’을 발표한 조동일 계명대 석좌교수의 글과 논문들을 대비시켜 보면 잘 알 수 있다. 조 교수는 불교의 시공간 인식을 빌어 지리학을 공간의 학문으로, 역사학을 시간의 학문으로 파악한다. 지리학은 ‘橫’의 학문이고 역사학은 ‘縱’의 학문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문학을 지리학과 맞닿게 하는 시도는 당연히 문학적 상상력의 횡적 확장이라는 측면을 연상케 한다. 조 교수는 “도서관에 가보면 역사학에 관한 책은 차고 넘치는데 지리학은 일천하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한국은 영토도 넓고 복잡하지 않을뿐더러, 밖을 향한 제국적 이미저리를 펼쳐본 적이 없기 때문이리라. 따라서 지리학은 불쾌한 기억까지 안겨주는 학문이다. 그러나 문학지리학에 호감이 가는 것은 그것이 미지의 공간을 탐색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서구 오리엔탈리즘이 권력욕에 휩싸인 것이라 해도, 기본적으로 ‘타자’에 대한 호기심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제국의 콤플렉스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요즘 우리도 호기심 어린 스코프로 세계를 바라보고 상상하고 싶다는 욕망도 불끈 치솟는다. 지리적 상상력의 정교함을 보여주는 ‘오르배 섬 사람들이 만든 지도책’(프랑수아 플라스 지음, 솔 刊), 지리학의 방대함을 보여주는 ‘지리학을 빛낸 24인의 거장들’(한국지리정보연구회 엮음, 한울 刊), 지리적 상상력의 지평이 넓어지는 과정을 기술한 ‘공간과 시간의 역사’(그레이엄 클라크 지음, 푸른길 刊) 등을 보면 지리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정신에 유익한지를 잘 알 수 있다. 출판평론가 표정훈 씨는 “요즘 사람들은 지리학이라 하면 面을 떠올리고 일정한 영역에 대한 배타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민족과 연결시키는데, 지리학의 묘미는 그게 아니라 線의 흐름이며, 선들로 이어진 網의 세계”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조동일 교수는 문학지리학의 구체적 구현으로 ‘지방문학사’ 연구를 선택하고 있다. 지방화시대를 맞아 지방의 고유한 문학적 표현들을 정리, 분석하자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한껏 올려놓았던 문학적 아우라가 서서히 무너지는 발언들이 이어진다.
물론 “각 지방의 문화특질론을 문장가나 만담가 수준의 논객에게 맡겨두지 말고 학문에서 감당해야 한다”라는 지적들을 보면 “세계화는 지방화와 함께 간다”라는 조 교수의 기본 문학사 서술의 틀이 지리학과 잘 만나고 있다는 점을 눈치챌 수 있다. 다만 그 방식이 기존 하던대로 민속학적이고, 구술사적인 차원에만 머물지 말고, 미적 분석으로까지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학’의 지리학은 시대착오적
그런데 이번 학술대회에 발표된 논문들은 이런 문학지리학의 복합적 욕망과 과제를 살피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고, 아예 단추가 잘못 끼워진 발표문이 있다. ‘한문화권 형성 초기 한시 창수를 통한 동북아 국가간의 문화교류’를 발표한 이혜순 이화여대 교수는 현 시점의 동북아 문화공감대가 존재해야하고, 또 이어져왔다는 당위성 전제 아래 당에 놀러간 신라 시인들의 한시를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발표문에서 “문화교류”의 흔적보다는 중국과 신라 지식인들의 동일성이 더 잘 읽히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들은 서로에게 ‘타자’가 아니었다는 점을 새삼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혜초의 서역기행과 『왕오천축국전』’을 발표한 정수일 前 단국대 교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 교수는 ‘왕오천축국전’이 8세기 인도사정을 알려주는 유일한 문헌이라며 그 가치를 높이면서, 그 일을 ‘한국인’이 해냈다는 다소 국수적인 인식을 펼쳐놓는다. 정 교수가 문명교류사에 대한 권위자임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인도의 풍물을 기술한 한 승려의 기행문에서 “우리 겨레의 세계정신을 개창한 위대한 선현”이니, “간결한 필치와 정확한 표현=진귀한 문학서”라니 하는 표현들은 너무 과장된 것이고, 결국 민족의 ‘기원’에 바람을 불어넣는 작업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 더 큰 戱劇은 이 발표문에 토론자로 나선 ‘인도전문가’인 이옥순 박사(인도사)의 발상이다.
이 씨는 “혜초에 대한 긍정적 찬사와 평가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라는 주례사적인 발언을 冒頭에 걸면서 “서정적 여행기이기 때문에 사료적 가치는 떨어지며, 결국 혜초라는 여행자가 재구성한 세계, 혜초의 자아의 반영에 다름 아니다”라는 지적을 한다.
학제간 소통은 이래서 정말 어렵다. 둘 다 역사학자이지만 정 교수가 문학의 한계를 감안하면서 그것의 사료적 가치를 추구한 반면, 이 씨는 문학에 대한 원초적 불신감을 어설프게 드러내는 데 머무르고 있어 안타깝다. 전적으로 동의하든, 반대하든 이 씨의 논평은 자기 자신에게로 진지하게 겨눠져야 할 듯 보인다.
문학작품을 읽는 자세에 대한 성찰 필요
이옥순 씨가 첫 단추만 잘못 낀 상태라면, ‘국토순례와 민족의 자기 구성’을 발표한 구인모 동국대 강사는 첫 단추부터 마지막 단추까지 잘못 끼워서 너무나 어색해져버린 상황이다. 미리 말하자면 첫 단추는 ‘민족’이고 두 번째 단추는 ‘베네딕트 앤더슨’이다.
▲백두산에서 제주도까지 뻗어내려오는 민족정기의 순수함을 식민지기 시정풍경에서 발견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최남선의 백두산근참기. 하지만 이런 시각은 민족과 역사적 상상력에서 비폿된 것이지 결코 지리학적 상상력의 존재를 보여주지 못한다. © |
▲백두산근참기 © |
그러나, 문학지리학은 가능하다
하지만 민족공동체를 환기시켰다는 점은 부분적으로 인정할 지라도, “중요하다”는 점은 왜 그런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구 씨가 ‘국민문학’을 강조하기 때문인데, 국민문학이 이런 과정에서 그 추진력을 얻었다는 것은 하나의 역사적 단면에 대한 고고학적 인식은 될지 모르지만, ‘민족문학’, ‘국민문학’ 등이 갖는 오늘날의 위상과 어떤 연결점을 갖는지에 대해서 전혀 밝혀지지 않기 때문에 그것에 중요성을 부여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긴 힘들지 않을까. 더군다나 이번 학술대회의 취지가 ‘타자체험과 자아인식을 통한 문학지리학’이라는 점을 떠올려볼 때 백두산에서 수직으로 뻗어내려오는 ‘거대서사’ 속에 갇혀서 당대의 두 문필가의 장대한 기행문을 필요에 따라 발췌독서하는 것은 선과 망을 찾아서 리좀적으로 이동하는 지리적 상상력과는 영 부합하지도 않는다.
아무리 시대사적 과제가 중요했더라도 ‘여행’을 떠나는 사람의 마음이 ‘민족의 순수성의 발견’에만 사로잡혀 있었을 것이라는 단정은 너무 순진하다. 근대시기 국토기행문에 대한 연구가 잘 안돼 있고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식의 접근은 이제 더 이상 효과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여러모로 이번 학술대회는 ‘문학지리학’이라는 매혹적인 화두를 던졌지만, ‘국학’의 강화라는 차원에서 상상력을 발동시킴으로써 그 상상력 자체를 구속당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그것은 역시 근대성을 증명하려는 과제와, 개인에 대한 근대의 억압적 측면을 지적하려는 탈근대 욕망 사이에 학계가 가로놓여 있다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 왜 우리는 지리학을 표방하면서 역사적 공간에 스스로를 가두는 모순을 범하는 걸까.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의 여행이 반드시 자유롭고 여유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지리학과 문학이 잘 융합해서 의미있는 풍경을 만들어내는 방법은 ‘방법론적 자유’를 택하는 게 아닐까.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1. 학술회의의 기획에 관한 지적과 이혜순, 정수일 선생의 발표에 대해: 학술회의가 문학지리학이라는 거창한 주제를 소화하기에 역부족이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여러 모로 반성할 여지가 있다고봅니다. 다만, 이 주제를 가지고 기획하고 고안한 의욕적인 과정과 발표자들이 몇십년 또는 몇년에 걸쳐 고민한 학문적 온축에 대해서 간명하게 단정하는 태도는 다소 아쉽게 느껴지는군요. 이혜순 교수의 노작은 초기한문학에 대한 자료의 미비를 일본과 중국의 간접 사료를 가지고 8-9세기 동아시아 한문화권의 문화교류의 자료들을 발굴하고 긴장 속 상호이해의 증거를 찾아내고 있는데, 이것이 오늘의 관점에서 신라인의 화이론을 내면화하는 방식으로만 의의를 축소시키는 것은 강기자의 단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혜순 선생의 원효에 관한 언급은 문화교류의 평등성과 상호이해의 적절한 예로 든 것이지요. 원효가 예외적 개인이라는 맥락에서 거론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정수일 선생의 발표에서 혜초의 국적 문제를 두고 협소한 민족문학의 관념에 근거한 것으로 보는 것은 이주와 여행의 경험에서도 그는 이방인이 아니라 신라인이라는 것, 민족의 일원이라는 신원을 확인한 것입니다.
이옥순 선생에 대한 비판 부분은 강기자의 소견이니 넘어가기로 하겠습니다.
강기자께서는 이혜순 선생과 정수일선생의 기조발제가 '문학지리학의 새로운 모색: 타자체험과 자기구성으로서의 여행'이라는 주제에서 그 의의가 크지 않다고 하셨는데, 이번 학술회의가 문학지리학의 하위장르로 설정된 지방문학과 여행문학에서 특히 여행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8-9세기 여행을 통한 타자체험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 않을까요.
2. 구인모 선생의 발표에 대해서는 구인모 선생이 직접 해명할 기회를 갖기로 하고, 제가 발언한 부분만을 가지고 언급하도록 하지요. 문학지리학의 지평에서는 국토순례가 단순히 상징적 의례로서 상상지리의 공간의 민족적 전유라는 명제까지도 포괄하는 것이지요. 최남선을 비롯한 이들의 국토순례는 단순히 국토발견과 민족을 구성하는 한 과정이엇고 이는 다시 국민문학을 창출하는 경로로 이어진다는 전제를 구 선생이 제시하고자 한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구 선생의 발표가 국토순례를 통한 민족 영성의 창출은 중국이라는 제국과 일본이라는 제국의 틈바구니에서 이루어진 위기인식의 산물이라는 점을 증빙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요. 강기자의 지리학적 상상력이라는 말은, 아직 생성중에 있는 문학지리학이 단순히 지리학과 문학의 매개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3. 문학지리학의 공간성에 대한 반론에 대하여: 공간성에 대한 인식이 기본적으로 철학적인 문제라고 보는 것은 강기자의 올바른 판단이라고 봅니다.하지만, 여기에서 문학이 지리학을 흡수한다는 표현은 온당하지 않다고 봅니다. 시간으로 구획된 문학의 담론을 공간으로 자리매김한다는 점에서 문학지리학은, 조동일 선생의 부연 설명도 있었습니다만, 기본적으로는 지방문학과 여행문학이라는 두 축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만, 토론 자리에서는 상상의 공간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지요. 지방문학이라는 지역성(localty)에 기반을 두고 현지인인가 외지인가, 아니면 외국인인가의 구별이 가능할 것입니다. 여행문학이란 국내여행과 역외여행으로 나누어 한국인의 외국여행과 외국인의 한국여행으로 구분할 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문학지리학은 지리학과의 만남이라기보다는 지리공간의 확장과 여행이라는 타자체험에 관한 문헌자료에 기반을 둔 학제적 담론의 성격이 짙은 것이지요. 여기에서 지방화와 세계화가 지방성과 세계성을 두루뭉실하게 넘어가며 서구 담론을 전용하는 이중의 세계화 담론이라는 것은, 보는 이에 따라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비판될 소지가 있습니다. 우리를 중심 한 켠에 놓고 세계와 소통하는 방식이 굳이 세계화하는 서구의 담론으로 표현해 버리는 것은 학문의 근거를 새롭게 틀짜는 발상의 전환을 공간적 관점에서 바라보자는 논리 전체에 대한 성급한 예단이 아닐까요.
어쨌거나 문학지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담론을 창출하려는 학술회의의 불비했고 누락된 부분에 대한 정당한 지적과 비판은 고맙게 받아들이겠지만, 발표자들의 오랜 학문적 노고가, 정수일 선생 비판처럼 1000년 전의 문헌자료와 동서 문명교류에서 신라인 스님의 문명탐험기를 협애한 민족주의로 매도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견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