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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은 혼자 하는 것이고, 미쳐야 하는 것이다”
“학문은 혼자 하는 것이고, 미쳐야 하는 것이다”
  • 이숭원 서울여대
  • 승인 2004.11.07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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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세이 3-고독

이숭원 / 서울여대 국문학

때는 바야흐로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 가을은 추억을 반추하게 한다. 대학 강단에 선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이십삼 년의 세월이 흘렀다. 1981년 8월 충남대학교의 전임강사로 발령을 받았을 때 내 나이 스물일곱. 피가 끓고 힘이 치솟는 젊음의 절정에 있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총각 교수였기에 학생들과 구분이 안 돼서 학생으로 오인한 수위 아저씨에게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학생들과 술집에서 어울려 토론에 열을 올리다가 멱살잡이 싸움을 벌인 적도 있다. 강의 중에 잡담을 하거나 딴청을 하는 학생이 있으면 벌컥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고 달려가 귀싸대기를 올려붙이기도 했다. 지금 같으면 폭력 교수로 대자보에 오를 만한 행동을 그때는 그렇게 거침없이 했다. 온몸으로 젊었기 때문이리라.


젊을 때는 꿈도 많아서 앞날의 설계도 거창하게 잡았다. 일년에 논문을 세 편 이상 쓰고 2~3년 간격으로 책을 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논문이나 책의 숫자를 떠나서 젊은날의 내가 정말 닮고 싶었던 것은 김윤식 선생님의 투신과 열정이었다. 4학년 1학기 비평론 강의 시간에 들어오신 선생님께서는 특유의 침통한 표정으로 이렇게 강의의 서두를 시작하셨는데 그 한 마디는 나이 오십이 된 지금까지 내 가슴에 박혀 지워지지 않는다.


“학문에 대한 열정은 고독을 동반하는 동시에 광기를 동반하는 것이다. 학문은 혼자 하는 것이고 미쳐야 하는 것이다.”


사람과 어울려 떠들고 놀기를 좋아하는 나는 광기는 차치하고 고독의 자리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물 두 살 되던 해 봄 처음 들었던 그 말의 매혹은 지금도 내 마음을 단단히 사로잡고 있다. 그래서 오십의 나이에도 언젠가는 고독과 광기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다짐을 가끔 되풀이해 보는 것이다.


▲고흐의 '자화상' ©
비록 학문의 자세에서는 고독과 광기의 경지를 보여주지 못하지만, 고독이 시의 본질적 조건이라는 점은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또 시를 강의하는 교실에서는 시에 몰입해서 광인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 적이 꽤 있다. 그것은 대학교수로 가기 전 어느 여자고등학교의 교사로 일하던 때부터 비롯되었다. 국어시간에 조세희의 난쟁이 연작 중 '칼날'이라는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수업을 중단하고 말았다. 대학을 갓 졸업한 총각 국어선생이 수업을 하다가 낙루를 하였으니 단시간에 학생들에게 소문이 퍼졌다. 티없이 맑고 양순한 그 학생들은 나를 나약한 정신과 불안정한 감정을 가진 교사로 보지 않고 인간적 연민과 문학적 감성이 풍부한 선생님으로 받아들여 주었다. 그 이후 내게는 눈물을 흘리며 문학수업을 하는 선생님이라는 원광이 드리워지게 되었으니, 이제는 대한민국 아줌마가 되었을 그 학생들에게 축복 있기를!


그후 대학 강단에 서서도 김종삼의 ‘앞날을 향하여’를 읽다가 눈물을 흘렸고, 박재삼의 ‘추억에서’를 강의하다 목이 메었고, 김사인의 ‘지상의 방 한 칸’을 이야기하다 교실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다. 얼마 전에는 수업 중에 임영조 시인에 대한 추모의 글을 읽다가 울음이 북받쳐 끝을 맺지 못했다. 학문의 세계에서는 보여주지 못한 고독의 열정이 시에 대한 애호의 자리에서는 부분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워즈워스는 ‘무지개’에서 하늘의 무지개를 보며 가슴 설레던 어린날의 경이감이 늙을 때까지 지속되기를 염원하였다. 나의 경우 시에 대한 열정이 시에 처음 매혹을 느낀 10대의 사춘기로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 다행스럽다. 지금도 좋은 시를 보면 가슴이 설레고 남에게 그 시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싶은 충동이 솟구친다. 이 마음이 일흔, 여든 살까지 이어지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그리하여 정년퇴직하는 그날까지 대학에 처음 발을 디뎠던 스물일곱의 열정으로 강의하고, 정년퇴직 이후에도 좋은 시를 보면 설레는 마음으로 글을 쓰게 되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고독과 광기의 문제임을 1976년 불혹의 나이에 막 접어든 김윤식 교수는 스물 두 살의 젊은 나에게 가르쳤다. 가을이 고독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울수록 그분의 쓸쓸한 뒷모습이 짙게 떠오르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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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권 2004-11-07 23:03:59
선생님...
이렇게 선생님을 만나니 새로운 느낌을 주네요.
선생님의 글이 쩌렁쩌렁하면서도 맑고 투명한 소리로 들려옵니다. 언제나 열정과 위트로 좌중을 휘어 잡으시던 그 목소리가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쳐야 미칠수 있지만, 그래도 미쳐도 미치지 못하는 것도 있는 것 같더군요.

왠지 이번 가을에는 남산길에 깔려있는 낙엽을 밟고 싶어집니다. 코 끝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절대 고독의 세계에 빠져 볼 수 있다면...

선생님,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