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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도시공간 종합적 비판…추상적 대안 아쉬워
자본주의 도시공간 종합적 비판…추상적 대안 아쉬워
  • 윤일성 부산대
  • 승인 2004.10.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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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서평_ ‘근대적 공간의 한계’(최병두, 삼인 刊, 2002)

도시공간을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서 최병두 교수만큼 사회

철학과 사회이론에 탄탄한 바탕을 두면서 한국의 도시공간문제와 환경문제를 구조적으로 분석하는 연구자를 찾아보기는 그리 쉽지 않다. 철학적 사유의 깊이와 이론적인 정치함으로 인하여, 그리고 그가 항상 추구하는 정치경제학적 방법론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그의 글을 읽어내려면 끈질김과 인내가 필요하다. 도시공간문제를 다룬 이 책에는 최 교수의 이와 같은 학문적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서론과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13편의 논문을 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공간에 대해서 보다 비판적이면서도 에세이 식으로 쓰여진 글들을 모아서 편집”했다고 저자는 말하지만, 어느 논문 하나 예외 없이, 쉽게 읽혀질 수 있는 글들은 아니다. 여기서 평자는 이 책을 읽는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추상과 구체의 변증법이 아쉽다

첫째, 비판지리학의 세계적인 거장 데이비드 하비와의 관련성을 찾으면서 읽는 것이다. 최 교수는 정치경제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도시공간을 연구한 하비의 저서들을 국내에 최초로, 그리고 계속해서 소개했다. 아마 그 과정에서 하비의 사유체계, 연구관심, 연구방법론 등이 저자의 학문세계에 상당부분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 짐작된다. 이 책의 제목에서부터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자본의 한계’(1982),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1989), ‘희망의 공간’(2000) 등 하비의 뛰어난 저서 세 권의 제목이 이 책에 선택적으로 섞여져 있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이 책을 읽는 내내 하비가 20년 동안 해 온 연구를 저자 역시 지난 20년 동안 해왔고 그 결과가 이 책으로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비와의 관련성을 찾으면서 이 책을 읽는 것은 이 책이 지닌 장점과 단점을 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지난 20년 동안 몇 권의 책으로 펼쳐놓은 하비의 문제의식을 저자의 문제의식과 더불어 압축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라면, 저자 스스로 인정하듯이 하비가 해온 작업들을 한 권의 책에 담아 내지 못한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둘째, 그가 제시하는 근대적 공간의 특성과 한계를 두고 같이 고민하는 것이다. “현실사회공간에 대한 비판”은 이 책의 곳곳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 비판은 최병두 식으로 철학적이고 이론적이며 정치경제학적이다. 저자가 정의하는 근대적 공간은 사회적 과정과 관련을 맺는 사회적 공간이며, 데카르트적 공간의식에 토대를 둔 자본주의 공간이다. 근대적 공간은 “공간에 대한 근대 철학적 인식이 실체화되는 과정, 즉 데카르트적 공간이 현실 속에서 자본축적을 위해 추상화된 공간, 계량화된 공간, 또는 인간의 삶과는 괴리된 소외된 공간, 물신화된 공간, 즉 자본주의적 공간으로 생산-재생산되고 있는 공간”인 것이다. 공간의 합리적 이용이라는 논리 하에 자본주의 사회의 도시공간은 생산공간, 유통공간, 소비공간 등으로 재조직화되며, 그 과정에서 “구체적 경험과 실천의 공간인 장소로서의 공간이 해체되면서” 삶의 조건들은 황폐해지고 사람들의 심성은 메말라간다.

여기서 아쉬운 점은 자본주의 도시공간에 대한 그의 강력한 비판이 개념적인 논의에 머무른다는 것이다. 근대적 공간에 대한 보편적인 논리를 추구하는 그의 논의에는 구체적인 것들에 대한 자세한 서술이 빠져있다. 그의 글에서, 추상화되고 계량화된 그리고 자본주의적 공간으로 재생산되는 근대적 공간과 그 속에서 살고 있는 근대인의 메마른 심성과 황폐한 삶의 조건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을 찾아보기 어렵다. 추상적인 수준에서 개념의 연역적인 논리전개에 의존하는 그의 방법으로는 근대적 공간의 특징과 한계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 실체가 잘 잡히지 않는다. 추상과 구체의 변증법이 정치경제학적 방법론의 주된 방법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 근대적 공간에 대한 서술에서 나타나는 구체성의 결여는 그의 연구에서 가장 미흡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연구가 구체적인 것에서부터 출발하여 보편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는 데까지 나아간다면, 그의 근대적 공간에 대한 현실비판은 더욱더 생동감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이 책을 읽는 세 번째의 독법은 대안적 공간 혹은 새로운 삶의 공동체에 대한 저자의 열망을 따라가는 것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이 책은 “새로운 공간을 구축하고자 하는 실천적 함의”를 가지고 쓰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의 4부에서 유토피아를 꿈꾼다. 저자가 그토록 비판한 근대적 공간의 한계를 극복한 유토피아. 어디에도 없는 유토피아는 이 책의 말미에서 가능성의 꽃을 피운다.

유토피아 공간의 변증법과 유토피아 공간의 상상력에 대한 논의는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라고 평자는 생각한다. 하비의 ‘변증법적 유토피아주의’에 내재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저자가 제시한 대안 개념인 ‘유토피아 공간의 변증법’을 읽어 나가면 하비에서 시작하여 하비를 넘어서고자 하는 최 교수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유토피아 공간을 상상하거나 만들어가기 위해 그가 제시하는 내용들은 학계나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주목받을 필요가 있다.

의사소통적 합의 강조한 공동체론 주목돼

현재의 조건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혼자서 그리고 더불어 꿈꿔야 하며, 실천적 능력이 전제가 될 때 유토피아가 가능하다는 그의 논의는 현실적인 문제와 관련이 없는 내용을 가지고 실천하지 않고 혼자 꿈만 꾸는 유토피아론은 전혀 의미가 없음을 보여준다. 또한 유토피아를 상상하거나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권위주의적 혹은 전체주의적 요소를 배격하고 충분한 의사소통에 기반 한 합의를 중시해야 한다는 저자의 논의는 새로운 삶의 공동체에 대한 성급한 기대는 공동체 운동을 실패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근대적 공간에 대한 논의에서와 마찬가지로, 저자의 유토피아론 역시 추상적인 수준에서 시작하여 추상적인 수준에서 끝난다는 점이다. 물론 유토피아 공간을 위한 12가지 원칙들이 제시되지만 그 역시 관념적 논의에 머물고 있다. 대안 공간의 모습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전혀 없다. 원칙의 제시에 머물 것이 아니라 실천방안들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한계 속에서 가능성을 보는 것. 가능성 속에서 현실 극복에의 예감을 느끼는 것. 아마 이것이 ‘근대적 공간의 한계’가 우리에게 던져주고자 한 가장 중요한 함의일 것이다. 자본주의 도시공간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가능성의 제시가 보다 더 구체적이었다면 훨씬 더 뛰어난 연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한국의 도시공간 연구에서 오랫동안 역작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윤일성/부산대·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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