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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체로서 인간, 욕망의 대상 아닌 가능성의 존재
객체로서 인간, 욕망의 대상 아닌 가능성의 존재
  • 권영빈
  • 승인 2021.05.07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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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객체들의 민주주의』 레비 R. 브라이언트 지음 | 김효진 옮김 | 갈무리 | 432쪽

기묘한 낯선 존재들의 민주주의
‘존재함’으로 ‘완전함’이 입증된다

객체지향 패러다임으로 세계를 재구조화하는 지도를 펼쳐 보인 바 있는 레비 브라이언트의 『존재의 지도』(갈무리, 2020)가 국내에 소개된 지 채 일 년도 되지 않아 그의 전작인 『객체들의 민주주의』가 출간되었다. 『존재의 지도』가 비인간 존재들의 얽힘과 결합을 정향하는 ‘중력’과 그로부터 만들어지는 ‘회집체’들의 작동 메커니즘을 통해 ‘주체’를 특권적 ‘주체성’ 차원이 아닌 ‘기능’의 측면에서 분석했다면, 그러한 사유의 원류에 놓인 『객체들의 민주주의』는 ‘객체지향 철학과 존재자론’에 대한 보다 넓고 깊은 이해를 제공한다. 두 책은 동시대의 물질적이고 사회적인 체계를 제고하기 위한 동력으로서 각광받고 있는 신유물론과 탈인간중심주의 포스트휴머니즘과 관련해 일독을 권할만한 역작이다.

『객체들의 민주주의』는 ‘객체’라는 생성 메커니즘에 대한 논고이다. 이렇듯 단순하게 표현할 수도 있는 이 주제는 아리스토텔레스로 대변되는 고대 철학의 원천은 물론, 헤겔과 칸트와 니체, 로크와 흄, 라이프니츠와 화이트헤드와 베르그손, 프로이트와 라캉, 지젝은 물론, 스피노자, 들뢰즈, 마수미와, 알튀세르, 푸코, 바디우를 거쳐, 마뚜라나, 바렐라를 포함하여, 베넷, 배러드, 헤러웨이, 헤일즈 등을 경유해 증명된다. 그가 객체지향 철학과 존재자론을 정립하기 위해 니클라스 루만과 브뤼노 라투르, 마누엘 데란다, 그레이엄 하먼, 퀭텡 메이야수, 이언 보고스트 등을 깊이 참조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 알버트 아인슈타인, 토마스 쿤, 로이 바스카, 베네딕트 앤더슨과, 수전 오야마, 재레드 다이아몬드에 이르는 과학, 생물학, 역사 철학의 광범위한 교직을 더하면 이 책이 독자에게 상당한 수준의 스키마를 요구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저자가 주체와 객체 또는 ‘실체’를 둘러싼 현대 철학의 계보를 이토록 치밀하게 종합하는 이유는 객체의 존재론에 관한 기존의 지식 체계와 단절하는 것이 그토록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주·객체의 이분법과 위계적 담론체계

『객체들의 민주주의』의 모든 장에는 ‘객체는 그간 무엇이었나?’라는 저자의 질문과, 객체의 내부 구조와 존재론을 정립하려는 저자의 응답이 늘 겹쳐서 서술되고 있다. 주체가 근대적 지식과 권력의 주인이자 그것들을 (재)구조화하는 유일한 조타사(操舵士)라면, 그러한 주체에 ‘대하여’ 존재하는 객체는 언제나 주체로부터 통합된 세계 바깥에 놓인다. 주지하다시피 이러한 주체/객체의 이분법은 정신과 물질, 문명과 자연, 시간과 공간, 남성과 여성에 이르기까지 위계적 담론체계를 구축하는 동력으로 기능해왔다. 한편 저자는 경험, 담론, 기표, 표상 따위가 권력의 생성‧작동 메커니즘과 관련되는 양상에 집중한 데리다, 라캉, 지젝, 푸코와 같은 철학가들의 작업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한다. 이들은 능히 기존의 주체/객체 인식에서 나아가 ‘주체’를 만드는 특정한 조직화기제에 주목한 것이지만 브라이언트가 보기에 이러한 관점 안에서 여전히 객체는 주체의 내용이나 인식으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그의 ‘객체지향 철학과 존재자론’은 인간의 의도나 행위, 담론 등으로 환원될 수 없는 존재 방식을 규명하는 것이다. 

‘객체’라는 생성 메커니즘은 그것들이 ‘물러서 있음’이라는 체계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객체는 ‘잠재적 고유 존재’로서의 실체와 현존이라는 ‘국소적 표현’의 층위를 갖는다. 저자가 예로 드는 파란색 머그잔의 ‘파란색’은 머그잔 자신이 빛과 외부 관계에 따라 나타낸 국소적 표현이고, 이는 머그잔이 가진 ‘색깔을 나타내는 역능’으로부터 온다. 국소적 표현이 정해진 계량적 특성과 형태를 다루는 기하학적 층위라면, 잠재적 고유 존재는 상이한 객체들과의 관계에 따라 바뀌는 변이의 토폴로지이다. 이로 인해 저자는 그 머그잔이 파란색 ‘이다’가 아닌, “파란색을 나타내는 작용을 ‘행한다’라고 말해야 한다”(124쪽)고 본다. 이러한 토폴로지의 장 속에서 객체는 “성질 또는 국소적 표현의 층위에서 세계에 차이를 만들어내는”(125쪽) ‘생성 메커니즘’ 자체로 설명된다. 이때 ‘물러서 있음’이라는 의미의 핵심은 객체가 그것이 우연히 국소적으로 현시된 어떤 성질과도 동일하지 않다는 데에 있다. 객체의 이러한 ‘자기타자화’ 기제는 ‘차이기관’으로서의 자신의 화산성의 역능을 보증하며, 객체는 자기 자신과, 또 객체들과 이러한 ‘물러서 있음’이라는 메커니즘 속에서 부단히 상호작용한다.

이러한 객체들의 상호작용은 교란(마주침)을 ‘정보’로 번역하는 ‘소통적 사건’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과정을 거쳐 객체의 특정한 국소적 표현이 산출되는 것이다. 이때 정보는 현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동일성의 원리로 환원되지도 않고, 그것이 객체들 사이에 발생하는 작동 원리를 표시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모든 객체는 서로에 대해 ‘잔여물’일 뿐이라는 브라이언트의 주장은 그가 기대고 있는 정신분석학의 사유체계를 ‘객체지향 철학과 존재자론’으로 새롭게 구체화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저자는 인간을 객체의 지평에 포함시키고 객체들의 마주침의 순간에 관한 낯선 사례들을 펼쳐낸다. 곰벌레, 도토리, 고양이, 바위 그리고 저자의 어린 딸까지, 객체라는 생성 메커니즘 안에서 이들은 도달할 수 없는 총체화의 욕망의 대상이 아닌, 세계를 향해 ‘선택적으로’ 열려 있는 평등한 존재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존재의 평등성(平等性)의 의미는 그 선택적 열림 또한 객체의 실체가 아니라는 데에서 다시 확인된다.

레비 브라이언트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인간 내부에 뿌리 깊게 자리한, 언표 불가능한 영역을 타자화하는 일종의 ‘끌림 체제’를 타파하는 것이 쉽지 않으리라는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 이를 객체 ‘혐오’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세계를, 타자를 ‘나’-주체에 ‘대하여’ 존재한다고 인식한다.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객체들은 언제나 우리에게 ‘징집’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에는 주체가 객체의 ‘존재함’을 인식하고 그것을 진정으로 수용하는 입장이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역시 객체는 주체가 마련한 인정체계에 귀속될 뿐이고 주체는 ‘숨은 고용자’의 위상을 계속해서 고수하게 된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기묘한 낯선 존재들의 민주주의”(380쪽)란 객체들을 평등하게 늘어놓고 그들의 ‘존재함’을 확인하려는 것이 아니다. ‘객체들의 민주주의’는 ‘존재함’으로 ‘완전함’이 입증되는 것을 뜻한다.

현대 철학의 광범위한 계보와 특질들을 아우르는 『객체들의 민주주의』를 이러한 거친 독법으로 간추리는 것은 서평자의 한계 때문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책이 오늘날 ‘기묘한 낯선 존재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교란과 번역의 양상에 대한 해석은 물론 그와 관련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공해줄 수 있다는 점이다. 브라이언트는 스피노자에 기대 “객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결코 완전히 알지는 못”(398쪽)한다고 말한다. ‘객체지향 철학과 존재자론’이라는, 그가 수행한 지식 창출 행위는 주체로서의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은 물론 객체로서의 우리의 역량 또한 제대로 바라볼 수 있기를 촉구한다. ‘완전히 알지 못함’이 ‘완전한 가능성’으로 전환되는 논거를 『객체들의 민주주의』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권영빈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젠더·어펙트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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