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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의 신경향_생물철학의 다양한 논쟁점
연구의 신경향_생물철학의 다양한 논쟁점
  • 최종덕 상지대
  • 승인 2004.10.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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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생물철학‥'발생학' 분야 관심 몰려

생물철학은 과학철학의 한 부문이기는 하지만, 그 범주와 방법론에서 큰 차이를 지닌다. 물리주의와 역사중립성을 기반한 기존의 과학철학은 살아있는 생명을 다루는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생물철학의 소재는 당연히 생물학의 다양한 연구프로그램들이다. 그 중에서도 형태학과 발생학, 유전학과 진화론, 또한 생태학과 행동생물학 등이 철학과의 조우를 대기하고 있다. 생물철학의 관심은 역시 인식론과 존재론 그리고 도덕론에 대한 철학적 질문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으로서, 진화론을 통한 진화인식론적 해석들, 그리고 유전자 복제와 같이 분자생물학에 대한 다양한 도덕적 해석이 있으며, 또한 생태학이나 종분류학의 존재론적 이해방식 등에 대한 질문이 놓여 있다.

최근 들어 유전공학의 바람을 탄 분자생물학의 경향이 가장 큰 것 같지만 실제로 발생학 분야가 일선 연구프로그램의 주요한 주제이다. 발생학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되어 역사가 제일 오래되었으면서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분야여서, 과학탐구의 여지가 많고 따라서 철학적인 논의의 폭도 상당히 크다. 예를 들어 생명 세포 단위의 기전 연구일 경우, 그것이 철저한 환원주의적 생물공학 분야이건 아니면 생기론적인 고전 발생학 분야이건 혹은 암치료와 같은 질병기제 의료분야든지 관계없이 생명의 활성물질 사이의 상호작용을 유도하는 모종의 어떤 신호 체계의 존재를 인정해야 하는데, 그러한 신호 시스템의 방식 및 기제를 연구하는 일은 생물학 전반에 걸쳐 가장 영향력 있는 신경향의 연구프로그램이다. 이러한 신호 연구는 발생학 분야만이 아니라 사실 철학의 주요한 연구과제이기도 하다. 신호 연구는 경험주의 인식론과 관계론적 존재론 그리고 인지과학의 철학을 포함한 현대자연철학 및 언어철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철학적 사유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전통적인 진화론의 철학은 경험론과 형이상학 모두에 걸쳐 시공간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폭을 넓혀준다. 예를 들어 생명개체에서 발현된 표현형질의 변화는 형이상학이 단순한 사변적 관념론이 아니라 장구한 생명의 시간을 통해서 자연화된 결과라고 주장하는 철학적 도전이 가능하다, 생명種 다양성의 문제는 전체 공간이 개별 점유공간의 단순 합 이상임을 보여준다. 종의 분화를 다루는 분류학과 계통학은 중세 유명론 논쟁이나 철학적 범주론의 문제를 심도 있게 고민하며, 동물과 신 사이에서 인간의 지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미 많이 해온 작업이지만 사회적 진보와 생물학적 진화가 과연 같은 맥락에서 통합가능한지를 질문하는 일은 그 자체로 철학의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윤리학과 관련하여 진화론적 이타주의가 실제로 어떻게 가능한지는,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꽤나 길게 상당한 논쟁의 초점이 될 것이 분명하다. 생물학적 이타주의는 진화의 자연선택이 개체 차원이 아닌 집단 차원이어야 하는 조건 때문에 그 설득력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자연 생명계에는 이타주의적 현상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다윈 역시 자연선택의 개념과 이타주의 사이의 긴장관계를 해결하기 위하여 종 차원의 진화개념을 도입했으며, 그 이후 크로포트킨이나 와인에드워즈와 같은 수리 집단유전학 학자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옹호됐다. 그러나 1966년 윌리엄스의 획기적 저서인 ‘적응과 자연선택’을 통해 종 선택 혹은 집단 선택의 개념은 더 이상 설 자리를 얻어내지 못했다. 이후 해밀턴의  ‘친족 선택’ 이나 트리버스의 호혜 이타주의가 중심이론으로 부상하여 이기적 협동 개념을 통하여 이타성을 설명했다. 이에 소버는 이기주의와 이타주의를 배타적으로 보지 않고 병행적으로 보기 시작함으로써, 소위 다수준 선택이론을 새롭게 선보였다.

이와 관련하여 ‘이기적 유전자’로 잘 알려진 리차드 도킨스의 철학은 진화의 주체적 비중을 유전자 차원에 두면서 적응 진화의 기제를 정립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진화생물학 최대의 논쟁점을 만들었고 그 논쟁의 대척점은 절대적 적응 진화를 비판하고 단속평형설을 주장한 스테판 제이 굴드의 형태진화론이다. 이 두 진영의 논쟁은 이미 생물학 내부 이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 간의 이념적 갈등, 심리적 갈등을 포함한 현대사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하다. 이번 달 말에 한국을 방문하는 마이클 루스와 같은 생물철학자나 전통적 적응진화 진영은 적응 기제를 비판하는 굴드의 학문적 입장 자체를 아예 도외시하며, 한편 굴드 진영은 도킨스와 에드워드 윌슨을 우생학을 정당화하려는 사회생물학자라고 강하게 비난한다. 재작년 굴드의 사망으로 이제 그런 논쟁은 사라지고 있지만 어차피 그들 간의 과거 논쟁은 상대방의 입장을 극한으로 몰고 간 도를 지나친 논쟁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런 논쟁의 단계를 거쳐서 급속한 관심의 대상으로 새로운 연구프로그램이 등장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진화심리학이다. 

진화심리학은 행동주의 심리학, 적응주의 진화생물학, 철학적 심신이론, 그리고 경제학적 게임이론 등이 결합하여 새롭게 형성된 학문분야다. 마음의 문제를 형이상학이 아닌 생물학의 문제로 접근한다. 진화심리학은 도덕의 문제를 규범주의 윤리학이 아닌 진화의 자연주의적 산물로 보며, 아름다움이나 숭고함, 증오와 기쁨과 같은 감정의 문제 들을 인간이 살아가는데 최적의 상황으로 유도된 행동의 표현형으로 간주한다. 또한 진화심리학의 한 영역은 암수 혹은 남녀 간에 성선택에 해당하는 짝짓기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심리적·행동적 특성들을 진화의 선택과정으로 간주한다.

생물철학의 미래는 단순히 학문적인 이론 구축에만 기대고 있을 수는 없다. 오히려 인간이 자연과의 공조를 어떻게 이루어낼 수 있는가에 대한 반성적 사유와 비판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경제논리로서 생물공학을 우대하는 시대의 와류를 철학이 얼마나 간섭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그러한 불확실성 때문에 철학은 더 요구된다.

최종덕/상지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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