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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시대 논쟁, 확대와 심화 필요하다
고종시대 논쟁, 확대와 심화 필요하다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4.09.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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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본질' 규명에 동참해야

고종시대를 둘러싼 교수신문 논쟁이 여러 매체에 소개되며 사회 일반의 남다른 관심을 모았다. '과거사 진상규명' 문제와 맞물려 역사를 보는 학자들의 시각이 궁금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미 당겨진 불이라면, 이 논쟁은 사회 일반에 좀더 확실한 학계의 입장을 보여주기 위해 '사실'을 둘러싼 학술논쟁에서, 현 시점의 다양한 '史觀'들이 부딪히는 다소 역사철학적인 방향으로 본격화될 필요성이 있다.

마침 김재호 교수가 이태진, 왕현종 두 교수의 비판에 대한 반론을 또 보내왔다. 김재호 교수는 여기서 식민지시기에 일어났던 '구체제극복' 및 '이민족에 의한 지배'라는 두가지 중첩된 역사적 과정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며,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내재적 발전론자'들의 일반적인 오해를 짚고, '식민지 근대화론'의 솔직한 역사적 입장을 펼쳐보였다.

이 반론문에 대해 이태진 교수와 왕현종 교수는 서로 다른 반응을 보였다. 이 교수는 "김재호 교수가 차분한 기분에서 쓴 글이라 논지가 선명하다"라고 말하며 "내 쪽에서도 이에 대해 충분히 할말이 있을 것 같다"라면서 다음 호에 반론을 보내오기로 했다. 이 교수가 과연 어떤 생산적인 토론을 보여줄 지 주목된다.

이에 비해 왕현종 교수는 다소 부정적 반응이었다. 왕 교수는 "일제시대에 걸친 인구 변화, 생활수준, 소득, 산업구조의 변화 등만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고, 다른 무형의 일본의 식민지배 등은 객관적으로 인식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넌센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김재호 교수가 식민지시기에 진행된 '구체제의 극복'을 말한 부분에 대해서도 전혀 다르게 해석한다. "일본제국주의의, 특히 총독부의 지배는 구체제의 극복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구체제의 존속이다. 총독부 지배는 입헌주의도, 정당도, 민주주의제도도 없었다. 본국의 모든 제도 중에서 그러한 제도만 빼고 도입했다. 그래서 구체제의 모순은 적어도 정치적으로 존속됐다. 그것은 천황제 절대주의, 조선민중의 억압적 지배구조다. 따라서 대한제국을 몰락시키고 일제의 등장으로 대한제국에게 면죄부를 부여한 것이 아니라 더 큰 구체제로서 더 억압적인 지배체제로서 일제가 등장했기 때문에 도리어 대한제국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지적한다. 구체제의 극복과 일제침략을 나눠서 볼 수 없고, 성장을 강조할수록 일제에 대한 비판적 역사의식이 강화된다는 논지다. 왕 교수는 그 이상의 논평은 다음 기회로 미뤘다.

이런 와중에 논쟁에 휘발유를 퍼붓는 문제의 책이 출간됐다. '식민지 근대화론'의 대표적 발신지인 낙성대경제연구소의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후기'(서울대출판부 刊)가 그것이다. 연구소가 추진중인 '한국의 장기통계' 사업의 일부분인 이 책은 165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 각종 통계수치를 통해 조선시대의 경제상황을 진단하고 있다. 주요 주장은 1860년 무렵 조선경제는 이미 국가권력이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한 '대위기'에 봉착했고, 초유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심각한 불황으로 빠져들었다는 것. 뚜렷한 인구감소, 물가폭등과 농촌 및 도시 노동자의 실질임금 하락현상, 산림의 극심한 황폐화, 논값 절반 폭락 등이 그 근거로 제시된다.

책임편집자 이영훈 교수는 이 같은 결과가 일부 지역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전국적 현상으로 확대하기에는 이르다고 하면서도, 분석 여하에 따라 조선왕조는 그 어떤 강력한 외세의 작용으로 멸망한 게 아니라 내부적으로 이미 체력이 고갈돼 파탄 나 있었다고 잘라 말한다. '내재적 발전'은커녕 '내재적 파탄'이라는 것이다.

이런 시각은 '내발론'의 입장에서는 매우 충격적이며, 경제사학계 내부에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장이다. 허수열 충남대 교수(경제사)는 "통계의 개념도 없었던 조선시대 통계를 어떻게 믿느냐"는 말로 이영훈 교수 등의 작업에 비판의 포문을 연다. 통계 자체가 신빙성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에 빈약한 수치를 이리저리 맞춰서 그럴듯한 '역사상'을 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현실과 일치할 수 없다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허 교수는 정반대로 "이들의 장기통계 작업들이 어느 정도는 현상을 반영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현실'과 '현상'의 차이 그리고 '본질'의 실종이다. 허 교수는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현상만 보여줄 뿐 시대의 본질은 도외시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역사는 "수량적 통계"나 "민족주의적 가치부여"를 앞세워서 볼 수 없다는 점을 왜 인정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그는 탄식한다. 덧붙여 허 교수는 "국사학자들이 수량적 현상 이면에 존재한 각 시대의 본질을 규명한 작업이 아직 논리와 실증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상태"라며 "현재로서는 경제사학자들의 주장을 반박할 근거가 별로 없다"라는 말로 논평을 마감했다.

이런 지적들이 만약 일리가 있다면 조선후기와 식민지시기에 대한 '진실에 가까운 역사상'은 또 다시 '공중부양' 상태로 들어서게 되는 셈이다. 이 대립의 순환론을 벗어날 수 있는 '아리아네드의 실'은 누가 쥐고 있을까.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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