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 제328호에 게재된 ‘생태담론 비판’ 기사에 대해 녹색평론 측이 반론을 보내왔다. 교수신문의 기사가 ‘착각’과 ‘오독’, ‘불성실한 이해’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예를 들어가며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지적은 일리가 있다. 기자는 그 동안 녹색평론에 실린 중요한 글을 많이 읽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매호마다 필요가 있는 부분들은 읽어왔고, 문제가 된 기사에서 비판한 천규석 선생의 ‘쌀과 민주주의’도 전부 읽지는 못했지만 3분의 1 가량은 읽고 비판했다. 단독서평이 아니라 ‘담론비평’이라는 큰 이야기의 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전부 다 읽기 전에 그 책에 대한 스스로의 판단을 명확히 내렸기 때문에 다 읽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부분이 녹색평론에 대한 전반적인 비판, 라다크를 티베트로 오해하고 가한 비판, 생태환경운동 일부분의 ‘지역이기주의’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한 측면을, 의미있는 생태환경운동과 구분하지 않고 뭉뚱그려서 비판한 실수를 정당화시켜주지는 못할 것이다. 아무튼 교수신문 기사의 세부적인 비판들이 기자의 근거확보 노력 및 정확한 확인절차의 부족 속에서, 그리고 학자들의 견해와 기자의 자의적인 판단에 많이 의존한 채 이뤄졌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런 걸 어느 정도 인식했음에도 글의 논조를 상대방에 대한 배려없이 너무 ‘일방적’인 비판으로 가져갔다는 점, 한살림운동, 사상강좌 등에 대한 부분에서도 경박스러워 보일 수 있는 표현을 한번 더 되삼켰다가 뱉어내지 못했다는 점은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한다. 아무튼 위와 같은 이유에서 녹색평론에 사과드린다. 그리고 지역단위에서 풀뿌리 민주주의와 자치운동에 진정 힘쓰고 있는 실천가, 주민들에게도 본의 아니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 깊은 사과를 드린다.
녹색평론의 반론을 모두 수긍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지금 재반론을 쓰는 게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해 나중으로 미루겠다. 교수신문 기사의 원래 의도, 그리고 지금도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향후 논의해보려 한다. 다만 교수신문 독자들에게는 좀 변명을 하고 싶다. 독자들에게는 “과연 교수신문이 경박하고 무식하게 행동했는가”의 부분에서 의견을 구하고 싶기 때문이다.
교수신문은 문제의 기사를 쓰기 전에 녹색평론 측에 비판적인 기사를 쓰겠다는 의사를 알렸고 변홍철 편집장은 “환영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판적으로 질문했다. 물론 이 때의 질문은 구체적이지 못했고 주변적인 것들이었다. 변 편집장은 한두 부분에서는 “우리도 느끼고 있다”라며 수용했고, “녹색평론의 서평이 너무 찬사 일색”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편집원칙이 “좋은 책을 널리 소개하는 것”이라 비평적 읽기에 비중을 두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취재를 끝내고 글을 쓰다보니 녹색평론에 대해 너무 비판적인 기사가 돼갔다. 그래서 주요 비판들에 대해 녹색평론에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겠다고 결정했다. 기사의 비판요지(호지·니어링 비판, 한살림운동 부분, 생태 포퓰리즘 부분, 민주주의 부분 등)를 뽑아 상세히 질문지를 작성해 녹색평론에 이메일로 보냈다(김종철 교수의 연락처를 가르쳐주지 않아서 이 방법을 취했다). 그리고 직원에게 질문지를 김종철 선생에게 전달해 달라고 전화했고, 그래서 김 선생이 메일을 확인했고 읽었을 거라는 답변도 받았다. 직원이 하루 정도 기다려보라 했으나 답변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추측했다. 질문지가 너무 논쟁적이었다는 점이 걸렸다. 또한 말도 안 되는 비판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직원에게 질문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으나 잘 모르겠다는 답변을 들었다(이 때 편집장과 통화를 하지 않은 것이 아쉽다).
상황이 이러했고, 이를 근거로 변명을 해본다면 나름대로 ‘대화’와 ‘확인’을 시도했고, 비판기사를 내보내기에 앞서 거쳐야될 절차를 거친 기사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학자들과도 꽤 열심히 토론했고, 자치운동을 하는 활동가와도 여러 면에서 의견을 나눴다. 그렇게 해서 생태담론이 갖는 문제점에 대해 다소 ‘추상적인’ 차원에서나마 확실한 입장과 논지를 가지고 기사를 썼고, 그 기사가 생태담론계에 어떤 자극의 계기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물론 단어들이 좀 거칠고, 문맥이 생략된 부분들도 있고, 비판하다보니 과장이 생겼다는 점을 느꼈지만 심한 정도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생태담론이 상호간에 대화를 하고,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 머리를 지배했던 탓이다. 그래서 기자의 비판이 녹색평론의 그 동안의 노고에까지 그 여파가 미칠 수 있다고 미처 예측하지 못했다. 녹색평론의 선구적 실천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고 여기고 넘긴 것이다.
아무튼 이번 계기로 ‘비판’은 곧 신중함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문제의 기사를 읽고 불쾌하셨을 독자와 이 글을 마땅치 않게 여길 독자께도 사과드린다.
사족 : 마지막으로 변홍철 편집장이 본인과 통화한 걸 메모해서 인용한 부분은 기자가 말한 부분과 다르다. 첫번째 인용부분 "미안하다. 막연한 이미지를 가지고 비판한 게 사실이다"라는 부분은 "막연한 이미지가 작용한 부분도 있다"는 의미로 말한 것이며, 한살림운동과 관련된 두번째 인용부분 "잘못 알고 있었다"는 부분도 기자가 말한 것과 다르다. 기자는 한살림운동이 '녹색평론'의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한살림운동을 모르지 않는다. 그 동안 기사를 쓰면서 한살림에 계시는 생태운동가, 이론가, 바람과물 연구소 관계자들과 많은 통화를 했다. 따라서 기자는 문제의 기사에서 한살림운동이 처음 생기고 그 활동반경을 넓혀나가는데 녹색평론이 물심양면으로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녹색평론의 주요활동"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표현이 정확치 않아 오해가 있을 수 있지만 한살림운동과 녹색평론을 동일집단으로 보고 있지 않는다는 점을 밝혀둔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많은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모순들을 스스로도 느끼고 있습니다.
아래에 지적하신 말씀은 거의 사실과 일치한다고 봅니다.
좀 쉬고 싶긴 하지만...
그런 결정을 내릴만큼 제 삶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할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조언해주신 부분들 늘 마음에 새기면서
행동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