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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 : '고구려사 담론을 비판한다'(교수신문 326호)을 읽고
반론 : '고구려사 담론을 비판한다'(교수신문 326호)을 읽고
  • 김영환 / 부경대 철학
  • 승인 2004.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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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내부의 '중화주의'와 싸워야

▲김영환 교수 ©

고구려사를 둘러싼 중국의 도발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교수신문’에 실린 ‘고구려사 담론 비판’을 보고 무척 놀랐다. 정말 우리는 조약돌에 맞고 바위를 던지고 있는 것인가? 이런 분석은 동아시아사를 보는 기본적인 관점이 서 있지 못한 상태에서  산술적인 중용을 선택한 데서 나온 것이다.

요즈음 불거진 고구려사 문제를 이해하는 데는 중국인 특유의 천하 관념과 이에 따른 중화사상의 이해가 필수적이다. 중국인에게도 마찬가지만 중화적 질서에 가장 충실했던 조선의 지식인에게 중국의 문화는 보편적인 문화 그 자체였으며 다른 겨레의 문화는 야만에 지나지 않았다. 황제가 다스리는 중국은 지상에 하나뿐인 보편 제국이었다. ‘문자’는 곧 중국 글자인 한자를 가리켰으며 중국 글자와 다른 한글은 철저히 외면했다. 문화의 보편성에 대한 소박한 생각에서 조선은 중국과 같아야 오랑캐를 면한다는 강박 관념 속에서 지내 왔다.

중화적 세계관을 따를 때, 적어도 관념적으로는 중국과 대등한 외국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일찍이 춘추전국시대부터 유학에서는 문명세계를 지켜 줄 통일 천하의 출현을 천하를  평안하게 한다는 말로 표현했다. 그 뒤 ‘천하’에 중국 주변의 여러 민족도 포함하는 것으로 뜻이 확대됐다. 사실 이 겨레들은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됐고, 짐승에 가까운 존재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리스에서도 사람이 살 수 있는 땅 ‘외쿠메네’의 가운데에 그리스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런 사상은 어느 곳에서나 흔히 나타나지만 이런 생각을 주변 민족에게 강요할 군사적, 정치적 기반을 갖춘 나라는 중국밖에 없었다. 이 점에서 중국은 특이했다. 로마는 끝내 사라졌으나 중국 한족의 통일제국은 부활했던 것이다. 그리스-로마의 고전 문화는 오랫동안 잊혀지고 왜곡됐으나 중국의 외래 종교인 불교는 그 본디 모습을 잃고 중국 문화에 동화됐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의 쇠퇴가 기독교 탓이 아니라고 변호할 필요가 있었으나 한 유는 불교가 오랑캐 종교이고 왕조를 보존하는 데 해가 된다고 공격하고 있다. 중국사에서는 유교 즉 중화사상을 상대화하고 비판적으로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는 관점 그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짧지 않은 정복 왕조의 지배가 있었으나 중국사에서는 지역적, 인종적, 문화적 연속성이 아주 크다. 문화의 중심이 지중해에서 알프스 이북으로 옮겨가고 주도적인 역사의 주체가 라틴족에서 게르만족으로 바뀐 유럽과 크게 다르다. 유럽사에서는 중화사상과 같은 특정 민족 중심의 세계관이 뿌리를 내릴 영속적인 밑바탕이 없었다.

동아시아에서는 인종주의이자 변형된 제국주의의 한 형태인 중화사상이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다. 우리 지성사를 오랫동안 지배했던 유학은 중국의 통일을 간절히 바라면서 통일 제국의 운영과 재생산을 주제로 하는 사상이며 중국인의 삶의 방식과 특성이 그대로 밴 중화사상의 표현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역사는 이런 중화사상 때문에 엄청난 값을 치렀다. 한족의 나라든 정복 왕조든 대륙을 통일한 중국은 늘 우리에게 사대 관계를 강요하거나 침략해 왔다. 유학에 대한 극단적인 숭배는 사대 질서에 대한 비판없는 복종을 낳았다. 스스로 ‘작은 중화’라 일컬으며 ‘기자의 옛땅’, ‘명나라의 동쪽 울타리’라 자랑이 대단하였다. 조선이 마지막까지 남은 조공국이었던 역사적 사실은 이제 후손에게 무거운 짐으로 다가오고 있다. 고구려가 지방 정권이라고 내세우는 첫 번째 이유도 조공-책봉 관계다. 중화를 큰 자랑으로 알던 오랜 자기 망각이 청산되지도 않았는데 한 세기 전에 일본에게 패배했던 중화 패권주의는 이제 다시 우리에게 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데도 고구려사 빼앗기에 대응하는 우리의 태도에 많은 혼동이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무엇보다도 아쉬운 것은 중국을 보는 비판적 거리다. 극단적인 한문?주자학 숭배에 젖어온 우리 지성사는 중국 문화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끊임없이 중국적 교양으로 무장하게 만들며 중국 문화와 거리두기를 가로막는 요인들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는 중국을 보는 새로운 눈이 필요하다. 

이제까지 우리가 중국을 보는 눈을 결정한 것으로 유교 경전과 삼국지 그리고 천자문(한자)을 들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런 서적들은 중화사상의 매개체로서 우리 지식인들을 중화사상의 첨병으로 만드는 구실을 해 왔다. 이런 데 대한 관심은 학문이나 전통이란 이름으로 미화됐다. 이제 이런 교양을 한 시대 한 문명권의 것으로 상대화해야 한다. 어떤 보편주의도 사람의 조건을 특수하게 만드는 구체적인 현실을 멋대로 마름질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신 채호가 그 급박한 상황에서도 사대주의를 문제 삼았던 것도 망국의 뿌리가 사대주의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조선의 공맹이 아니라 공맹의 조선이 되어 버린 역사는 우리가 중화 사상의 희생자임을 말해 준다. 오늘날의 기지촌 지식인에 앞서 조공국 지식인이 있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학문이나 문화의 보편성에 대한 소박한 생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동아시아 연대론을 내세우면서 중국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는 지식인도 많다. 미국의 패권주의에 지친 나머지 또 다른 외세에 막연한 기대를 거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연대는 서로 존중하는 데서 나와야 한다. 한쪽이 힘의 우위를 믿고 밀어붙여서는 가능하지 않다. 이럴 때 평화와 연대는 강자의 야욕을 가리는 도구일 뿐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중국이 겉보기에는 국민 국가이나 실질적으로는 수천 년 제국의 문화를 이은 통일되고 자족적인 문명권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예수회 수사들이 처음 중국에 이르렀을 때에 호의적인 시각으로 중국의 사상과 정치 제도를 소개하는 저서를 쓴 이유도 유럽만큼이나 큰 덩치를 가진 제국이 끝없는 분열과 갈등을 겪고 있던 유럽과 너무나 대조적인 제국의 질서와 안정을 보았기 때문이다. 유럽의 분열이 유럽사의 역동성과 유럽 문화의 다양성이란 값진 선물을 남겼을지라도, 그들에게 이것은 놀랍고 부러운 것이었다.

“중국에서는 고구려사가 전혀 정치쟁점화 돼있지 않다. 여기에 대해서는 언론에서 가타부타 말이 없다.”(‘교수신문’) 아마 그럴 것이다. 중국은 우리처럼 모두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중국사에 수없이 나타났던 지방 정권의 역사에 한 나라를 넣느냐 빼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춘추 전국 시대만 해도 남방의 오?월?초 와 서쪽의 진나라는 중화에 들지 않았던 오랑캐의 땅이었다. 고구려사의 중국사 편입도 끊임없이 중화의 영역을 확대해 온 그들에게는  특별한 일이 아닌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온 천하(실제로는 동아시아)에 보편 제국으로서의 중국이 있을 뿐이라는 관점에 익숙하다. 그들은 한국이나 일본이 축구에서 그들을 이기는 것마저 참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고구려사의 중국 귀속은 우리 역사의 절반을 훔쳐가는 것이고 우리 문화의 뿌리를 송두리째 빼는 문제다. 그들은 소나기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다. 고구려사 문제를 두고 대중의 반응마저 언제 가라앉아 버릴지 모른다고 본다면 걱정이 지나친 것인가.

지금도 중화사상은 그들의 체질에 너무나 깊숙이 배어 그들 스스로도 좀처럼 헤어날 수 없는 늪이다. 유럽의 지식인들은 유럽중심주의를 벗어나려고 노력이라도 한다. 그러나 중국인은 중화주의적 질서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중화사상에도 보편적 가치가 있으므로 인종주의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이는 소박한 생각이다. 대동아 공영권에도 유럽 식민주의에도 ‘보편적 가치’가 얼마든지 나오기 때문이다. 이 겉보기에 보편적인 가치들은 중화사상을 포장하고 왜곡한 측면이 더 크다. 중국적 동아시아 질서에서 사대와 책봉도 禮로 개념화된다.

이 예는 자연의 질서를  본뜬  문명사회의 보편적이고 자연스런 질서라고 끊임없이 선전되었다. 이것은 오늘날 민주주의와 인권이 미국의 패권을 정당화하는 구실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겉보기에 전혀 문제없어 보이는 이 ‘보편적 가치’를 끊임없이 비판적으로 음미해야 중화사상의 늪에서 해어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엇비슷한 나라들이 모인 유럽의 경우를 모범으로 문명권의 중심-주변 관계라 할 수 있는 한중 역사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유럽의 통일은 나폴레옹도 히틀러도 실패했으며 중국처럼 한 민족이 중심이 된 통일은 이제는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 학계 한쪽에서 ‘국사 해체’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유럽사를 보편적인 모범으로 삼고 이를 동아시아에 비판없이 적용하려는 비역사적이고 교조적인 태도의 산물이다. ‘과열된 반중 담론’이라는 비판도 중국과 유럽의 차이를 무시하고, 중화사상의 위험성을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중국 문화와 비판적으로 거리를 두고 보는 눈이 매우 드물다.

고구려사 지키기는 이제 시작이다. 정치적 경제적 득실을 따질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어렵다고 피해 갈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고구려사를 둘러싼 중국의 도발은 중화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는 만큼, 이것은 거대한 중화주의와 싸우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의 중국관을 형성하는 현실적 바탕을 되돌아보면서 겨레 문화의 독자성과 창조성을 위해 중국 문화와 비판적인 거리가 필요한 때다. 동양 또는 한자 문화권이란 이름으로 우리의 미래마저 중국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 매김하려는 움직임은 슬기롭지 못한 것이다. 다른 민족을 오랑캐라고 멸시하면서 중화를 자랑해 오다가 갑자기 중화에 소수민족 즉 과거의 오랑캐를 집어넣는다고 다른 민족을 대하는 한족의 태도가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화’나 ‘중국’이란 이름부터가 중국의 소수민족이나 주변 여러 나라에게 매우 불쾌한 언어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중화’나 ‘중국’이란 개념 자체를 폐기할 것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큰 기대는 하기가 어려우나 묵은 중화사상의 껍질을 깨기 위해 중국인들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 가장 좋다.

필자는 서울대에서 ‘주희 철학의 마음 개념’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언어 철학 및 언어 정책, 중국 사상에 관심이 많다. 필자는 이 반론을 쓰면서 주로 ‘중국의 천도관 정치철학’(이춘식, 고대출판부 刊), ‘중국의 천하 사상’(전해종 외, 민음사 刊)을 참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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