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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진 중간보고서 표절시비
학진 중간보고서 표절시비
  • 김봉억 기자
  • 승인 2004.09.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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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보조원 학위논문 보고서에 인용 … ‘공동연구’정신 훼손 우려도

최종적인 연구결과물이 아닌 연구과정중에 작성한 보고서에서 이뤄진 인용에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것은 표절인가 아닌가. 

 

이전과는 다른 유형의 ‘표절시비’가 최근에 제기됐다. 지난 8월 7일 한국학술진흥재단(이하 학진) ‘연구비부당집행신고센터’에는 지난 해 9월부터 시작된 3년 짜리 학진 연구과제의 1차년도 연구결과를 제출하는 중간보고서 중 일부가 ‘표절’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같은 연구과제를 수행했던 전임연구원에 의해서다.

 

D대학 동아시아연구원은 지난 해 9월부터 수행한 학진 연구과제 ‘지역사회에서의 빈곤형성과 재생산에 대한 연구’의 1차년도 연구결과를 모아 지난 6월 중간보고서를 학진에 제출했다. 그런데 이 연구과제에 참여했던 ㅎ 전임연구원은 다른 대학 소속의 공동연구원(교수급) ㅈ교수가 작성한 중간보고서에 대해 표절의혹을 제기했다.

 

연구보조원으로 참여하고 있던 ㅊ씨의 박사학위논문(노인의 빈곤요인과 소득보장정책 연구)의 17p 표, 18p 일부, 19p~21p, 23p~27p까지 그대로 인용하면서 출처도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학위 논문 표절”-“내부 연구자료 일 뿐”

박사학위논문을 쓴 ㅊ씨는 “ㅎ씨가 표절의혹을 제기하기 전까지는 이런 사실자체를 몰랐다”면서 “기존의 이론적 배경을 정리한 내용을 ‘재인용’하면서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것은 명백히 ‘표절’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ㅎ씨는 또 “의도는 아니지만 관행으로 인식하는 부분이 있고 대학원생을 독립적인 ‘연구자’로 존중하지 않는 풍토도 한 요인”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ㅎ씨는 중간보고서 자료집의 내용을 책으로 공식 출판할 때는 표절의혹을 받고 있는 발표문을 빼기로 했고, 연구과정에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재론하지 않기로 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표절의혹을 받고 있는 ㅈ교수는 “같은 연구팀에서 자체 스터디를 하면서 공유한 자료이고, 공식적인 저술도 아닐뿐더러 비공식 ‘내부 연구자료’일뿐인데 왜 문제가 되는지 의문이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표절 의혹을 제기한 전임연구원 ㅎ씨는 “대학에서의 도제적 관행과 내부고발자의 피해 때문에 포기하거나 묻혀 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반박했다.

 

이 연구과제의 연구책임자인 ㅂ교수는 “인용하는데 있어서 엄격하지 않은 문화가 있는 것은 문제”이지만 “공동연구팀 안에서 서로가 공유했던 ‘내부 연구자료’를 두고 표절여부를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ㅂ교수는 또 “당초 ㅎ씨가 표절을 지적하기 전에 전임연구원과 공동연구원의 관계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라며 연구자 사이의 갈등이 표절논란으로 번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은 연구결과를 공식적으로 알리는 최종 ‘결과보고서’가 아닌 연구과정중에 있는 ‘보고용’ 중간보고서에 대해서도 ‘표절’을 엄격하게 적용할 것인가의 여부다. 또 연구과정에서 공유한 자료를 ‘공동자산’으로 어느 선까지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학진 관계자는 “결과보고서가 아닌 연구과정에 제기되는 표절문제는 처음”이라며 “연구중간에 표절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학진은 ㅎ씨가 학진 홈페이지에 제기한 내용은 일단 접수처리 했지만 문제제기가 구체적이지 않아 기초조사까지만 진행한 상태다.


필자의 생각인가, 남의 생각인가

김용호 부경대 교수(신문방송학과)는 “중간보고서는 최종 보고서를 위한 초고 성격”이라며 “최종 보고서에 넣을 개연성은 있다”라고 연구과정의 충실함을 지적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같이 쓸 수 있는 공동자산을 한 개인이 점유한다면 ‘공동연구’의 정신을 훼손할 수도 있다”며 “공동자산 활용을 과도하게 ‘표절’이라고 확대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정근 부산대 교수(문헌정보학과)는 “인문사회계쪽 연구를 하다보면 외국문헌에 많이 의존하게 된다”면서 “정확히 번역하고 인용․재인용 하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 ‘신뢰’를 쌓는 훈련이 엄밀하게 돼 있지 않다”며 학계의 자성을 요구했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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