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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의 태동, 밝혀지는 '마음'의 신비들
뇌과학의 태동, 밝혀지는 '마음'의 신비들
  • 이상훈 서울대
  • 승인 2004.09.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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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경향_뇌과학의 혁명(上)

약 70년 전 캐나다 몬트리얼에 있는 한 병원의 수술실. 당대의 노련한 뇌수술 전문의 와일더 펜필드(Wilder Penfield)는 두개골이 열려 뇌를 활짝 드러낸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간질환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간질의 진원지를 찾아 뇌 표면의 이곳저곳을 전극으로 조심스레 찌르고 있었다. 그러다 그가 측두엽-관자놀이 쯤에 위치한 뇌의 한 영역-의 한 부위를 자극했을 때 갑자기 간질환자가 중얼거렸다. “난 지금 부엌에 앉아 있는데 내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요. 그 아이는 길가의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자동차들이 많이 지나다녀 위험한 것 같아 걱정돼요.” 자신의 귀를 의심한 펜필드는 다시 한 번 똑같은 뇌 영역에 전류를 흘렸다. 놀랍게도 환자는 똑같은 경험을 보고했다. 마치 자동응답기의 단추를 누르듯 펜필드는 특정한 기억흔적을(engram) 지닌 뉴런들을 자극하여 생생한 기억을 불러낸 것이다.

마음의 자리는 뇌다

마음의 사건을 물리적으로 촉발한 펜필드의 실습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마음은 뇌의 활동”임을 강력하게 예시하고 있다. 당연하게 들리는 이 명제는 최근에야 ‘사실’로 받아들여진 것이며, 그러기 위해 고단한 논쟁과 발견들의 축척을 거쳐야만 했다. 예를 들어 고대 이집트인들은 심장을 영혼의 장소로 여겨 죽은 이의 심장을 미라로 만든 반면, 두개골 속의 뇌는 파내어 버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뇌를 마음의 장소인 심장이 활동할 때 발생하는 열을 식히는, 일종의 냉각기라 생각했으며, 데까르뜨는 영혼은 물질로 환원될 수 없으며 松科腺(pineal gland)을 통해 물질적 육체와 교신한다고 보았다.


마음의 장소가 뇌라는 사실은 철학자들의 상상력과 논리학으로 정립된 것이 아니었고 실험 현장에서 과학자들의 체계적 관찰을 통해 혹은 우연히 얻어 낸 발견들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었다. 마음에 대한 ‘과학’이 시작된 시점은, 마음이 뇌라는 물질적 기반위에 존재하는 것임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시점이며, 이는 곧 근대 뇌과학의 출발인 셈이다.

“마음의 자리는 뇌다”라는 명제는 뇌과학의 시작일 뿐, 뇌과학의 목표라 할 마음과 행동의 물질적 기초를 밝히는 것은 어마어마한 노력과 지혜를 필요로 하는 매우 도전적인 작업이다. 뇌는 비전문가의 눈에 그저 1400cc의 크기와 1.4kg 정도의 무게를 지닌 주름지고 뚱뚱한 두부덩이 같아 보인다. 그러나 뇌에는 약 1010~13개의 뉴런들과 그들 사이를 연결하는 더 많은 수의 신경다발들이 있으며, 이들은 복잡하게 변화하는 분자생물학적, 화학적 환경에서 활동한다.

뇌의 뉴런들과 신경망들에서 벌어지는 전기화학적 활동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복잡하고 다양하기 이를데없는 마음과 행동의 측면들을 발생시키는가를 밝히는 것이 현대 뇌과학자들이 마주한 숙제다. 이러한 작업의 어려움은 우주의 물리적 기초를 푸는 숙제를 마주한 한 뛰어난 물리학자의 고백에 견줄 만 하다. “우리는 무엇이 옳은 질문인지 미리 알지 못한다. 해답에 다가갈 때까지 옳은 질문이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도 자주 겪는다.” 스티븐 와인버그의 말이다.

마음의 지도를 그리기 시작하다

이 도전적인 숙제에 응전하여 뇌과학자들은 지난 세기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하여 고단한 여정을 걸어 왔다. 비록, 여전히 갈 길이 벅차긴 하지만 그간 이룬 성취도 결코 만만치 않다. 1889 년 가을, 도은법(silver impregnation)이란 예리한 칼로 무장한 검객, 카할(Cajal)은 독일 해부학회장의 연단에서 개별 신경세포들을 하나하나 도려내듯 떠낸 아름다운 그림들을 공개한다. 이 그림들로 그는 뇌가 연속적인 망상체가 아니라 서로 분리된 수많은 개개의 뉴런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보이고, 많은 동료 과학자들의 동의를 끌어내어 ‘뉴런 독트린(Neuron doctrine)’을 선포한다.

아드리언(Adrian)과 하트라인(Hartline) 등은 또 다른 뇌의 중요한 비밀을 밝혀서 뉴런 독트린을 강화시켰다. 뉴런들이 서로 대화할 때 모스와 같은 부호를 사용하는데, 이 부호는 局地的이며, 스스로 옮겨 다니기도 하고, 실무율적(all-or-none)인 일종의 전기적 교란으로 뇌의 모든 지역에서 통용된다는 것이었다.

‘뇌의 핵심 단위는 뉴런이며, 뉴런들은 만국공통의 부호로 대화한다’라는 단단한 패러다임을 확보하여 정상과학의 지위에 오른 뇌과학은 주로 감각뉴런들에 다양한 입력들을 제시해가며 이 부호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허블(Hubel)과 비젤(Wiesel)에서 정점에 이른 이러한 관찰들은 하나의 뉴런이 매우 선택적 자극에만 반응을, 즉 신경부호들을 발생시킨다는 대단히 놀라운 결과를 도출했다. 이를테면 고양이 시각피질의 한 뉴런에 전극을 내렸을 때, 망막의 아주 제한된 영역에 11시 방향으로 기울어진 막대가 오른쪽 위로 움직일 때만 그 뉴런이 맹렬하게 반응을 한다는 것이었다.

뇌과학의 후예들은 뇌가 수많은 영역들로 분화되어 있으며 각 영역마다 고유한 마음의 특정한 측면들만을 표상하거나 행동의 특정 측면들과 관련되어 있음을 밝혀 왔다. 여러 형태의 감각입력 사건들을 등록하는 감각영역들, 펜필드가 예시한 것처럼 과거에 발생한 사건들의 흔적을 지닌 기억과 체계적 지식을 담당하는 영역들, 감각영역의 출력과 기억/지식영역들의 출력을 결합하여 적응적인 반응을 결정하는 의사결정과 관련된 영역들이 있으며, 이 모든 활동들에 따르기 마련인 정서적 반응과 관련된 영역들도 존재함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이른바 뇌에 마음의 지도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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