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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교재 개발의 현장을 가다
과학교재 개발의 현장을 가다
  • 최철규 기자
  • 승인 2004.08.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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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적 지원시급…특정주제로 쏠려

‘일반~’, ‘~개론’ 등의 딱딱한 과학 전공교재의 한계를 보충하고 과학문화의 내실화를 위해 과학 교양서를 강의 부교재로 사용하는 경우는 많다. 그러나 활용되고 있는 교재들은 외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과학 교양서적을 번역한 것이 대부분이다.
몇몇 주제의 쏠림 현상도 보인다. 뇌(‘뇌’, ‘새로운 뇌’), 유전자(‘이기적 유전자’, ‘유전자의 세기는 끝났다’, 생명 및 진화(‘루시는 최초의 인간인가’, ‘진화, 치명적인 거짓말’), 수학(‘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등등이 유행하는 주제이며 학생들에게 권장되는 관심도 여기서 크게 다르지 않다. 외국의 수준과 학문하기의 관습속에서 탄생한 책들이라 한국적 상황에 얼마만큼 적합한지도 의문이다.
일각에서는 소장파 학자들을 중심으로 과학 교양교재 개발 노력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을 전공하는 학자들의 공동 집필 형식이 대표적인데, ‘인문학으로 과학읽기’(김근배 외, 실천문학사 刊)나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 시리즈(한양대 출판부 刊)등을 들 수 있다. 공동 집필의 경우 일단 각자가 자신의 전공분야를 맡아 전문적인 내용을 담으면서도 한국적 상황에 맞게 쓸 수 있어 긍정적 측면이 있다.
그러나 고려대 김동광 강사(과학기술사회학)는 학제간 연구 통한 과학 교양교재 출판이 장기적이며 치밀한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창발적인 형식과 내용을 개발하기보다는 80년대 식의 외국 원서 짜깁기가 과학 교양교재 개발에서도 어느 정도 반복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현재로선 교재개발에 대한 학술진흥재단이나 한국과학재단의 지원 시스템이 부재하고, 괜히 전공영역을 넘어 外道한다고 눈치를 주는 학과 이기주의적 시각들이 장애물로 버티고 있다.이런 악조건속에서도 최근 한양대를 중심으로 결성된 ‘과학철학교육위원회’의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 시리즈는 호평을 받고 있다. 물론 그 배경에는 이것이 학진과 교내의 재정지원을 따낸 프로젝트 형식으로 진행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3년에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라는 교재를 출판함과 동시에 동일명의 강의를 개설하여 현장에 직접 적용할 수 있었던 것도 교재 개발 노력에 큰 도움이 됐다. 2004년에는 내용의 수정 보완 작업을 거쳐 ‘이공계 학생을 위한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 ‘인문 사회계 학생을 위한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로 세분화했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을 더 깊이 들여다보면 과연 ‘실속’이 있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홍욱희 세민환경연구소장은 “지나치게 인문사회학적 함의만 강조하려한다”고 비판하는데, 과학전공자들에게 직접적으로 필요한 지식을 전달하지 못하고, 사실상 과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인문사회학자들이나 일반 독자층을 겨냥할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인문사회학자들이 학제간 연구를 지향하는 과학 교양교재의 실수요자라고 분석한다. 물론 교양의 확산과 전공의 심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에는 과학계의 중간필진의 풀이 너무 빈약한 것을 인정해야 한다.
아무튼 과학교재에 대한 고정관념은 서서히 깨지고 있다. 학회나 소규모 연구모임에서 순수한 열정으로 이어지는 움지김들, 지난 2~3년 전부터 대폭 늘어난 이공계 협동연구 결과물들의 교재화 가능이 겹쳐지면서 과학교재들의 국산화에 시동은 걸린 듯하다. 그러나 교재개발자들이 넘어야 할 시급한 벽으로 토론식 수업방식에 적합한 과학 교양교재 개발, 서울과 지방대 학생간의 수준 차를 고려해 교재를 이원화하는 문제, 새로운 주제를 반영하는 지속적인 책의 업그레이드 등이 지적되고 있다.

최철규 기자 hisfuf@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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