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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의 신경향_전통과학에 대한 역사적 접근들
연구의 신경향_전통과학에 대한 역사적 접근들
  • 문중양 정문연
  • 승인 2004.08.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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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양분법 넘어야…유학자들의 우주론도 규명

요즘 한국과학사는 큰 변화를 겪고 있다. 특히 조선 후기 전통과학의 변동, 서양과학의 수용과 그 대응 등에 대한 고찰에 있어서 주목할 만한 성과가 나오고 있다. 깊이 있는 실증적인 분석을 통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 밝혀질 뿐만 아니라, 종래의 지배적인 해석이 전면적으로 재검토되고 있기도 하다.
먼저, 새롭게 밝혀지고 있는 사실들 중에서 중요한 것은 17세기 이후 조선 유학자들의 새로운 세계관과 자연관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믿어지던 서양과학의 내용 그 자체. 종래 학계의 이해는 매우 피상적인 수준에 불과했는데, 수입돼 들어온 서양과학서나 서양 과학기구 자체에 대한 실증적 분석이 그 동안 이루어지지 못한 데에 기인한다.
조선에 들어와 영향을 미쳤던 서양과학에 대한 실증적 분석이 1990년대 말 이후 과학기구를 중심으로 한 실증적 분석으로 이루어졌다. 남문현, 한영호, 이용삼 등 교수 과학자들의 과학기구 연구는 그 대표적인 예. 특히 홍대용의 ‘湛軒書’에 실려 있는 천문기구에 대한 분석과 남병철의 ‘儀器輯說’에 실린 기구, 그리고 박규수가 제작했던 천문기구에 대한 실증적 분석은 실학자들의 서양과학에 대한 이해가 관념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오상학과 임종태, 전용훈의 지리학사와 천문학사 분야에서의 박사 논문 세 편은 조선에 유입된 서양 지리학과 천문학 지식에 대한 학계의 이해 수준을 질적으로 높여 놓기에 충분했다. 오상학의 논문은 조선시대에 제작된 세계지도 전반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을 해 주었는데, 이를 통해서 조선후기에 들어온 서양식 세계지도의 실체와 그 영향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높여 주었다.
전용훈은 서양 천문학 지식의 수용에 대한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분석을 내놓았다. 이를 통해 서양식 역법으로의 개력이 비교적 순탄하게 이루어졌다는 종래의 상식적인 우리의 이해를 불식시켜주었고, 전통적인 역법 계산법과 서양식 계산법 사이의 융화를 위한 노력이 복잡하게 전개되었음을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임종태의 논문은 천문학과 분리되지 않았던 지리학적 지식과 천문지리관에 대한 세밀한 분석을 담고 있다. 그는 중국과 조선의 전통적인 지리학 논의, 그리고 전통 지리학과 경쟁관계에서 갈등을 드러냈던 서양 지리학 지식 그 자체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통해 서양 지리학 지식과 지리관이 어떻게 이 땅에 들어왔는지 그 굴곡의 역사를 밝혀주었다.
한편 이러한 추세와 약간 다른 차원에서 조선 유학자들의 우주론을 다룬 구만옥의 박사 논문도 주목된다. 이 논문은 조선 후기 유학자들의 우주론 논의를 여러 정치적 입장과 학맥의 학문적 시각의 차이에 따라 어떠한 차이를 보이는지 규명하고 있다. 즉 노론으로 대표되는 주자도통주의자들과 주자학에 상대적으로 비판적인 남인과 소론 등의 정치?학문적 그룹에 따라서 서양 우주론과 전통적인 주자학적 우주론에 대한 태도가 상당히 차이 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조선 유학자들의 정치?사상적 분파를 우주론에서까지 찾아본 정력적인 분석이었다.
위의 논문들이 새로운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학계의 이해 심화에 기여하는 반면, 종래의 이해를 바꿔 놓은 새로운 해석들도 많이 제시되었다. 상수학적 자연관?우주론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평가는 조선후기 전통과학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수정해주기 시작한 주제였다. 홍대용 지전설의 토대라 할 수 있는 김석문 지동설의 논리적 기반인 상수학적 인식체계에 대한 종래의 부정적 시각을 불식시킨 것이다. 사실 실학자들을 포함해 19세기까지 조선 유학자들의 자연 이해는 상수학적 이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나아가 이와 같은 전통과학의 패러다임으로서의 상수학적 자연인식 체계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평가는 기론적 자연인식 체계에 대한 역사적 역할과 평가도 새롭게 이루어지게 했다.
이와 같이 상수학적 자연지식에서 시작된 조선후기 전통과학의 변동에 대한 새로운 접근은 서양과학의 수용이 수용/거부, 긍정/부정, 과학적/비과학적, 서양/전통, 근대적/전근대적의 이분법적 대립 구도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대립적인 변화의 도식은 서양과학의 수용은 곧 전통과학의 거부를 의미했으며, 서양과학의 수용은 역사의 진보로, 전통과학의 유지?전개는 역사의 회귀를 의미한다. 그러나 조선후기 전통과학의 변동은 그렇게 단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서양/전통과학의 대립적인 구도로는 실제의 역사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데 소장학자들은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

 문중양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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