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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파노라마1] ‘세계 만들기’로서의 디자인과 패러다임의 변화
[디자인 파노라마1] ‘세계 만들기’로서의 디자인과 패러다임의 변화
  • 교수신문
  • 승인 2021.04.05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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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디자인하고 환경은 다시 인간을 디자인한다. 서울의 거리 모습. 사진=최범

 

“신은 시골을 만들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
“인간은 건물을 만들고 건물은 인간을 만든다.”

앞의 말은 서양 속담이고 뒤의 말은 윈스턴 처칠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두 격언은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잘 말해준다. 신이 만든 시골은 자연을 가리킨다. 인간은 신이 만든 자연 위에 도시를 세움으로써 자신만의 공간을 창조했다. 그렇게 인간이 만든 환경이 다시 인간에게 영향을 끼친다고 처칠은 말한다. 인간은 내재화된 환경이고 환경은 외재화 된 인간인 것이다. 인간과 환경은 그렇게 상호작용한다.

도시와 공간의 비유로 시작했지만, 인간이 자신의 환경을 가시적으로 만드는 행위를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디자인의 대상은 넓다. 미국의 디자이너 레이먼드 로위는 ‘립스틱에서 우주선까지’라고 했고, 울름조형대학(Hochschule für Gestaltung Ulm)의 학장이었던 막스 빌은 ‘스푼에서 도시까지’라고 했다. 크든(우주선과 도시) 작든(립스틱과 스푼) 모두 인간이 만든 환경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인공 세계(man-made world)’이다. 미국의 철학자 넬슨 굿맨의 용어를 빌리자면, 디자인은 일종의 ‘세계 만들기(worldmaking)’인 것이다. 

디자인 패러다임의 변화

디자인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가시적인 대상을 창조하는 구체적인 행위이지만, 그러한 행위에 대한 사고방식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디자인 패러다임이라고 부를 수 있다. ‘패러다임(paradigm)’이라는 말은 과학사가인 토마스 쿤에 의해 널리 알려졌는데, 그는 과학의 발전이 점진적이지 않고 혁명적으로 변한다고 주장했다. 디자인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디자인 역시 역사 속에 상이한 패러다임의 교체를 보여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니까 인간이 자신의 환경을 이해하고 창조하는 행위에 대한 사고방식, 즉 디자인 패러다임은 역사 속에서 변해왔다. 

디자인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패러다임은 크게 세 가지이다. 장식미술(decorative art)과 모던 디자인(modern design)과 포스트모던 디자인(post-modern design)이 그것이다. 장식미술은 선사시대에서 19세기까지 장구한 시간의 걸치는 패러다임으로서 장식(decoration)을 디자인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이는 응용미술(applied art)이라고도 불렸는데, 순수미술(fine art)에서 발견한 미를 실용적인 대상에 응용한다는 소극적인 개념이다.

모던 디자인은 장식미술을 부정하는데서 출발한다. 그러니까 전통적인 신분사회의 관습과 이데올로기의 담지체인 장식을 부정하고 근대적인 합리성에 따라서 인간 환경이 평등하게 구축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모던 디자인을 탄생시켰다. 그런 점에서 모던 디자인은 서구 근대의 합리주의가 디자인 영역에서 구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포스트모던 디자인은 그러한 모던 디자인의 한계와 모순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되었다. 그런 점에서 서구의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니즘에 대한 성찰적 행위이듯이 포스트모던 디자인도 '성찰적 디자인(reflexive design)'으로 볼 수 있다.

현대 사회와 디자인

물론 오늘날 디자인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문화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고, 디자인은 그러한 소비사회의 외피로 이해되는 것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다. 다만 우리는 이러한 소비사회의 피부조차도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의 환경이자 구조의 일부임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껍데기가 아닌 우리 시대의 속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현대사회의 디자인에 대한 물음은 표층이 아니라 심층에까지 가닿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디자인이 우리 시대의 ‘세계 만들기’임은 인식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더 물어져야 하지만 말이다. 

 

 최범
디자인 평론가·한국디자인사연구소 소장

홍익대 산업디자인과와 동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디자인> 편집장을 지냈다.
한국 근대사와 근대성 연구의 일환으로 한국 디자인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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