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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쪼개내기 관행, 이대로 좋은가
논문 쪼개내기 관행, 이대로 좋은가
  • 최철규 기자
  • 승인 2004.08.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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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표절'을 규율할 객관적 합의 필요하다

논문 하나로 학술지 게재와 교수임용 그리고 연구과제 지원까지 풀코스로 우려먹는 관행이 학계의 무관심속에 방치되고 있다. 중복게재와 쪼개내기로 나타나는 이러한 관행들은 결국 ‘자기표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요즘 거론되는 논문의 질적 하향화와 연구지원비 낭비 현상과 긴밀히 맞물려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대부분의 교수들은 자기표절이나 논문 쪼개내기가 교수업적 평가 제도의 강화와 학술지원 제도의 확산과 맞물린 불가피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지적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학계에 큰 문제를 초래할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단어 하나로 쌓는 업적

자기표절의 유형은 다양하다. 동일한 논문을 제목과 목차만 약간 수정하여 여러 학회지에 투고하는 ‘기본형’부터, 동일한 이론틀과 방법론에 사례의 다양성만 첨가하는 ‘복제형’도 있다. 지역 연구의 경우 사례비교를 통한 일반화를 명목으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국가 수만큼 논문을 쓸 수도 있다. 특히 이공계에서 흔한 경우인데, 해외 저널에 게재한 외국어 논문을 그대로 번역해서 국내 저널에 게재하는 것도 자기표절 시비에 걸릴 수 있다.
논문 쪼개내기의 경우 지난 학기 지방의 모 대학 사학과 교수임용과정에서 불거진 논란이 전형적인 예다. 한 지원자가 실적으로 제출한 총 11편의 논문 중 최소 8편이 제목이나 목차의 단어만 다를 뿐 표, 지도, 사료 등의 기초 자료뿐만 아니라 구성과 인용, 전개에서 자신의 박사 학위 논문을 장이나 절별로 쪼개낸 것이라는 것. 중국 근현대사를 다루는 박사 학위 논문에서 ‘1910년대’와 ‘1920년대’라는 표현이 단지 ‘청말’, ‘민초’라는 용어로 변경되는 식으로 새로운 업적이 만들어졌다니 할말을 잃는다. 현재 이 교수는 임용이 된 상태인데,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편법을 부추기는 업적 평가 시스템

개인의 양심이 기대야 할 최후의 보루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업적평가 시스템과 관련된 다양한 제도가 학자들의 양심을 위협하고 있다는 교수들의 지적을 간과할 수 없다. 상명대 김영미 교수는 “교수나 대학별 업적 평가 시스템이 연구를 독려하는 긍정적 의미도 있지만, 지나치게 양적으로 흐르는 문제가 있다”고 한다. 특히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평가 제도가 지나치게 양적인 경쟁위주라고 덧붙인다.
신소재공학을 전공하는 지방대의 이 모 교수는 획일적 업적 평가 시스템과 다양한 지방 이공대 육성 사업이 결합해서 자기표절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한다. 대학원생 절대 감소를 겪고 있는 지방 이공대의 실정상 각종 사업을 수행하며 연구논문을 작성할 여력이 없기 때문에 자기표절이 교내 업적 평가에서 좋은 평점을 받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 또한 연간 업적 평가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다년간 프로젝트 이외에도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 한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니 유혹에 흔들릴 위험이 있다.
해외저널과 국내저널에 평점 차이를 두는 평가 방식이 ‘속 빈 강정’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SCI 급의 외국 저널을 선호하고 국내지의 경우 학진 등재지나 등재후보지만 공인하다보니 기타 국내 저널에는 실릴 논문이 없다. 학회 편집인의 입장에서는 해외에 낸 논문이라도 약간만 수정해서 국내 저널에 게재하는 것으로 타협하기 쉽다고 손진훈 충남대 교수는 지적한다.

‘전문성’에만 의존하는 주먹구구식 관리 체제

다른 한편, 학회의 주먹구구식 심사 체계가 자기표절이 기생할 토양이 되기도 한다. 최근 한국 NGO학회에는 작년에 게재되었던 논문이 약간만 수정돼 재제출되는 황당한 일이 있었다. 편집간사에 의해 우연히 적발돼 게재 불가 판정을 내렸지만, 중복게재 등을 엄격히 걸러내는 체계가 없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다른 학회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감성과학회나 한국행정학회를 비롯한 많은 학회들이 논문의 독창성을 요구하고 타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은 게재가 불가하다는 방침을 투고 규정에 못 박고 있지만, 문제는 이런 규정을 관철시킬 기초 체계가 없다는 것. 게재 신청자의 업적 리스트가 완벽하게 DB화 되어 있지도 않거니와 그것을 검색할 수 있는 유용한 툴도 없다. 결국 심사위원의 개인 역량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분야가 좁을 경우 심사위원들의 전문성이 막강한 통제력을 발휘하지만, 대단위 학회인 경우 심사할 논문의 양과 촉박한 심사 시간에 의해 느슨해지기 마련이다.

시스템 개혁과 비판문화 함께 가야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정작 자기표절을 판단할 객관적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 과학재단의 한 관계자는 주어진 하나의 테마에 여러 개의 실험 단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각 단계별 연구결과를 독립적으로 발표할 수 있다고 한다. 단순히 건수 중심이 아니라, 연구 특성을 감안하여 상황을 봐야 한다는 얘기다.
황성우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단순히 원문을 게재하지 않는 이상 “크게 서론-본론-결론으로 나뉜 박사 논문을 쪼개서 발표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언급한다. 따라서 학계의 전반적인 관행이기보다는 무모하고 비양심적인 소수의 일이라는 것이 이들의 공통 시각이다.
그러나 주명철 한국교원대 교수는 인문학 분야 해외 박사들의 논문 쪼개내기 관행이 정도를 넘어섰다고 본다. 그는 이런 관행이 연구지원비의 낭비며, 장기적으로 학계에 새로운 경향을 제시하지 못하는 지적 불능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생의학 분야 저널의 투고 요령을 관리하는 인터내셔널 커미티 오브 메디컬 저널 에디터스(ICMJE: International Committee of Medical Journal Editors)의 경우 일차출간과 이차출간 편집인들의 공동 승인, 다른 독자층 겨냥, 일차출간에 대한 명시 등의 여러 요건을 정해 중복게재의 허용 범위를 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중복게재를 판별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연구자의 주관적 판단이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표절을 규정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이 없다는 것이 관행을 근절하지 못하는 주요 원인인 셈이다.
학자들의 업적 리스트의 엄격한 DB화와 업적 평가 시스템에 대한 재점검 등 굵직한 과제들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현저한 자기표절 사례를 실명으로 비판할 수 있는 문화적 여건의 조성이 필요하다. 내 식구 감싸기 식 온정이 만연한 한국 지식 사회에서 자기표절에 대한 공론화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최철규 기자 hisfuf@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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