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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진리 추구에 매료…학문의 국제적 감각이 토대
완벽한 진리 추구에 매료…학문의 국제적 감각이 토대
  • 허영수 기자
  • 승인 2004.08.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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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학에 임용된 순수 국내파 박사 이상혁 교수(수학)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과 토종 국내파 수학 박사가 미국 유명 대학에 교수로 임용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어려울까.

최근 포항공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박사후 과정을 마친 이상혁 박사(33·사진)가 미국 위스콘신대 벤 블랙 조교수로 임용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교수는 8월 말부터 시작되는 가을 학기부터 3년동안 강의와 연구를 하게 된다.

수학분야에서 국내 박사학위자가 해외 대학에 임용되는 것은 극히 드문 일. 대개 미국에서 박사 후 과정을 거치다가 교수로 미국 대학에 교수로 임용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 교수의 경우는 박사후 과정 조차도 국내 대학에서 밟았다. 오로지 지원서와 논문, 추천서만으로 임용된 셈이다. 미국 대학에서 한 해에 배출되는 수학분야 박사학위자 1천여명 중 교수로 임용되는 학자가 불과 30여명 내외인 것으로 봐도, 이 교수의 이번 임용은 더욱 도드라질 수밖에 없다.

“특별히 정보 수집을 위해 힘쓰기 보다는, 같은 분야의 연구자들이 있는 대학에 지원서를 보냈고, 그간의 논문 성과와 외국 학자의 추천서가 임용을 결정하도록 한 것 같다.” 이 교수에 따르면, 지원서와 함께 평소에 학문적으로 교류하고 있던 외국학자 이름을 추천인으로 적어서 보냈을 따름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은 추천인의 의견과 논문만을 토대로 임용을 전격 결정했다.

2001년 이후 3년여 박사후연구원 과정 동안 ‘런던후학회지’, ‘함수해석학잡지’, 독일의 ‘수학잡지’ 등에 10여편의 논문을 게재한 데 이어, ‘듀크수학잡지’에 최근 게재한 논문 ‘보크너 리스 연산자와 극대 보크너 리스 연산자에 대한 개선된 계측’을 통해 조화해석학 분야에 있어 미해결 부분이었던 ‘보크너 리스 연산자’ 문제 해법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이다.

국내 대학에서 꾸준히 논문을 발표하면서 연구하던 그가, 돌연 미국행을 결심하게 된 동기가 자못 궁금해졌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학문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된 시점에서 좀더 넓은 안목과 도전의 기회 등을 얻고 싶었다.” 이 교수는 병역특례기간에 교수 공채에 지원할 수 없어, 미국에 눈을 돌리게 된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정보가 다양하고, 그 분야에서 정통한 해외학자들과 공동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는 점에 큰 무게를 뒀다.

대학원 시절 은사님의 “수학을 계속 할 것이면 국제적 수준의 수학자가 되라”는 조언도 영향을 미쳤다. 해외의 학자들에 뒤지지 않는 학문적 성과를 얻고자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이 유지되고 있다.

국내에 있을 때 영어로 강의한 경험이 있어 언어문제에 있어서도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현재 그곳 교수들, 대학원생들과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는 중.
미국의 대학에 임용되기를 희망하는 신진학자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더니, 그는 “국내의 학자들이 자질이 부족해서 외국에 뒤쳐지는 것이라기 보다, 그들과 경쟁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라면서, 연구자 자신이 전 세계에서 어느 영역, 어느 위치에 있는지 가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했다. 

완벽하고 체계적인 앎의 세계를 추구한다는 점에 매료돼, 학부 3학년 시절에 전자전기공학과에서 수학과로 진로를 선회한 이상혁 교수. 그는 여전히 수학에 대해 “지식 자체의 아름다움에 감탄사를 연발한다”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밴 블랙 조교수 : 밴 블랙 조교수는 위스콘신대 교수를 역임한 유명한 수학자 밴 블렉의 이름을 따서 만든 것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지 3년 이내의 우수한 수학자를 위한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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