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22:05 (일)
아름다운 간음의 그리움
아름다운 간음의 그리움
  • 정찬 소설가
  • 승인 2004.08.0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행이야기 - 알베르 카뮈의 단편소설 '姦婦'

인간은 문명이 발달할수록 자연과 멀어져왔다. 여름의 존재성은 여기에 있다. 더위는 인간으로 하여금 옷을 벗게 한다. 옷을 벗는다는 것은 몸을 자연 앞에 노출한다는 것을 뜻한다. 문명 세계 속에서 잃어버린 인간의 원시성을 환기하는 계절이 여름인 것이다.

알베르 카뮈의 단편소설 <간부>(姦婦)는 인간의 몸 깊숙한 곳에서 은밀히 숨쉬고 있는 원시성을 아름답게 환기하는 작품이다. 

자닌은 남편이 벌어오는 돈의 혜택을 충분히 받으며 살고 있으나 언젠가부터 삶의 권태 속으로 빠져든다. '덧문을 반쯤 닫아놓은 어슴푸레한 집안에서 세월을 흘러보낸' 그녀에게 '여름, 해변가, 소풍, 심지어 하늘까지도 머나먼 것'이었다. 이러한 그녀가 간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 <간부>의 줄거리다. 

소설은 자닌이 남편 마르셀을 따라 남부 사막지방을 여행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포목 거래를 위한 남편의 여행에 자닌이 동행하는 것이다. 이 여행에서 간음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눈치챈 독자들은 간음의 대상자가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닌의 시선을 끄는 첫 남자는 버스에 동승한 사하라 주둔 프랑스 군인이다

"돌연 자닌은 누군가가 자기를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통로 저 건너편 자기의 의자와 같은 줄의 좌석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 사람은 아랍인이 아니었다. 출발할 때부터 그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 이상했다. 사하라 주둔 프랑스군 부대의 정복 차림에 회갈색 군모를 쓰고 있었다. 이 지역 군인 특유의 구릿빛나는 얼굴은 갸름하고 뾰족했다. 그는 맑은 눈으로 자닌을 무뚝뚝하게 뚫어질 듯이 뜯어보고 있었다. 갑자기 얼굴이 붉어진 자닌은 여전히 앞쪽의 안개와 바람 속을 바라만보고 있는 남편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녀는 외투로 몸을 포근히 감쌌다. 그러나 여전히 후리후리하고 홀쭉한 프랑스 군인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위의 대목은 독자로 하여금 간음의 전조를 느끼게 한다. 전조가 강화되는 것은 아래의 대목이다.

"자닌은 온몸을 난간에 기댄 채 자기 앞에 열려 있는 허공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 말없이 그냥 서 있을 뿐이었다. 옆에서는 마르셀이 몸을 흔들고 있었다. 추워서 내려갔으면 하는 모양이었다. 도대체 여기서 볼 것이 뭐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자닌은 지평선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저 멀리, 더 남쪽으로 내려가 하늘과 땅이 깨끗한 선으로 마주치는 곳에서는 자닌이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그러나 끊임없이 그녀에게 결핍되어 있었던 그 무엇인가가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같은 느낌이 문득 들었다."

자닌의 간음은 남편이 잠든 방을 몰래 빠져나옴으로써 시작된다.

"신발을 손에 들고 문 앞까지 갔다. 어둠 속에 서서 다시 잠깐 동안 기다렸다가 이윽고 살며시 문을 열었다. 걸쇠가 삐걱 소리를 내자 자닌은 동작을 멈추었다. 그녀의 가슴은 미친 듯이 고통쳤다.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안심한 그녀는 다시 손을 약간 돌렸다. 걸쇠가 끝도 없이 돌아가는 것같았다. 그녀는 마침내 문을 열고 밖으로 미끄러지듯 나간 다음 마찬가지로 조심조심 문을 닫았다. 그러고 나서 문의 나무판에 뺨을 갖다대고 기다렸다. 한참후 마르셀의 숨소리가 멀게 들려왔다. 자닌은 돌아섰다. 얼굴에 얼음같이 찬 밤바람을 받으면서 회랑을 따라 달려갔다. 호텔 문은 닫혀 있었다. 빗장을 벗기려니까 숙직 당번이 흐트러진 얼굴로 계단 저 위에 나타났다. 곧 돌아옵니다. 자닌은 이렇게 말하고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호텔을 빠져나온 자닌은 간음의 상대가 있는 장소로 달음질친다. 자신에게 결핍되어 있었던 그 무엇인가가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킨 요새의 망루가 그곳이다.

"계단 한 가운데에 이르자 가슴을 얼얼하게 하는 찬 바람이 어찌나 날카로운지 걸음을 멈추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마지막 남은 충동적 힘에 밀려 망루 위로 내달았다. 난간 벽에 몸을 붙이고 있자니 배가 뿌듯하게 눌려왔다. 자닌은 헐떡거렸다. 눈 앞의 모든 것이 뿌옇게 흐려졌다. 줄달음을 쳤지만 몸은 더워지지 않았다. 아직도 사지가 와들와들 떨렸다. 그러나 곧 폭포처럼 마구 들이마신 찬 공기가 이내 규칙적으로 몸안으로 흘러들어, 조금씩이나마 약간의 열기가 으스스 떨리는 몸 속에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녀의 두 눈은 밤의 공간을 향해 열린 것이었다."

자닌의 두 눈이 밤의 공간을 향해 열림으로써 간음은 마침내 시작된다. 독자의 눈 앞에 펼쳐지는 그녀의 간음 모습은 다음과 같다.

"자닌의 머리 위에 있는 하늘이 육중하게 선회하는 어떤 힘에 휘말리는 것같았다. 차갑고 건조한 밤의 짙은 어둠 속에서 수천개의 별들이 끊임없이 돋아나고, 그 반짝거리는 얼음덩어리들은 또렷한 윤곽을 드러내자마자 어느새인가 지평선으로 미끌어져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자닌은 하늘에 표류하고 있는 이 불들을 바라보는 데 완전히 정신이 나가 헤어날 수가 없었다. 자닌은 그들과 더불어 선회했고, 부동의 전진을 통하여 차츰 가장 깊은 자신의 존재와 한덩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 깊은 곳에서는 지금 추위와 욕망이 서로 다투고 있었다. 그녀 앞에서 별들은 하나씩 하나씩 떨어져서 이윽고 사막의 수많은 돌들 가운데로 꺼져갔다. 그럴 때마다 자닌은 조금씩 더 밤을 향해 스스로를 열었다. 그녀는 숨을 쉬었다. 그녀는 추위며, 존재들의 무게며, 광란하는 혹은 얼어붙은 삶이며, 삶과 죽음의 기나긴 고통, 그 모든 것을 잊어가고 있었다. 공포를 피하느라고 목적도 없이 미친 듯 달리기만 했던 오랜 세월 끝에, 드디어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뿌리를 발견한 듯싶었다. 이제는 더 이상 떨리지 않는 그녀의 몸 속에 수액이 다시금 솟아오르고 있었다. 난간 벽에 배를 꽉 누르면서 움직이는 하늘을 향하여 전신을 긴장시킨 채 자닌은 아직도 뒤흔들린 상태인 그녀의 마음이 마침내 가라앉고 자신의 내면에 침묵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성좌의 마지막 별들이 사막의 지평선 위 좀더 낮은 곳으로 그 떨기 송이들을 떨어뜨리더니 가만히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때 참을 수 없는 보드라움과 함께 밤의 물이 자닌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면서 추위를 뒤덮어버리고 차차 그녀의 존재의 불가해한 중심에서 용솟음쳐올라 그칠 새 없는 물결이 되어 신음소리로 가득찬 그녀의 입에까지 넘쳐나고 있었다. 잠시후 하늘 전체가 차가운 땅 위에 벌렁 넘어진 자닌의 몸 위로 내려와 덮치면서 활짝 펼쳐졌다."

그러니까 간음의 대상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막의 밤하늘이다. 이 아름다운 간음을 올 여름 우리는 꿈꿀 수 없는 것일까?

==========================================================

▲정찬 소설가 ©

필자는 1983년 '언어의 세계'에  중편 '말의 탑'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창작집 '기억의 강', '완전한 영혼', '아늑한 길', '베니스에서 죽다', 장편소설 '세상의 저녁', '황금사다리', '로뎀나무아래서', '그림자 영혼', '광야' 등을  펴냈다. 1995년 중편 '슬픔의 노래'로 동인문학상을, 2003년 '베니스에서 죽다'로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