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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이야기_自己를 미워하는 사람들
생각하는 이야기_自己를 미워하는 사람들
  • 최준식 이화여대
  • 승인 2004.07.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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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참 인구에 회자됐던 김선일 씨 피살로 인해 불거나온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나는 정부의 대외 정책이니 하는 거시적인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이 사건 후로 신문의 독자투고란에는 자신들이 외국서 한국 외교관들로부터 받은 푸대접에 대한 글들이 끊이지 않았다. 해외에서 어떤 일이 생기든 현지 대사관에 연락하는 건 부질없는 일이라는 글들이 주류를 이뤘던 것 같다. 나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번 일을 기회로 새삼스럽게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나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벌써 20년도 더 된 일 같다. 나는 당시 유학을 한답시고 미국에 있었는데 마침 워싱턴 한국 대사관서 일하던 친구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때는 전두환 정권시절로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한 직후였다. 그런데 이 방문 준비를 하면서 내 친구가 했던 일을 보니 가관이었다. “좋은 학교 나와서 공부 잘하는” 내 친구가 워싱턴 공항서부터 전씨가 묵을 호텔까지 길변에 있는 가로수들을 다 사진 찍어 이름을 적어 정리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래 왜 그런 엽기적인 일을 하느냐 그랬더니 “각하께서 다른 곳에서 부하에게 나무 이름을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걸 대답 못해 우리는 미리 준비하고 있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듣고 어이가 없어 외교 잘 하라고 월급 주니까 ‘씰데 없는’ 짓만 한다고 핀잔을 줬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윗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는 우리나라 외교관들인데 이상스레 국민들에 대한 서비스는 영 시원찮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 아직도 뿌리 깊은 관존민비의 정신이 가장 큰 요인이 될 게다. 이 점에서 나는 우리나라의 사회 문화는 조선 후기의 연장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곧잘 했다. 이런 뻔한 요인 말고 또 생각나는 것은 한국인들의 자기 이미지다. 과연 우리 스스로는 한국이나 한국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인간의 행동이 이미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은 너무도 명확한 사실이다. 인간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자기의 외적인 행동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자신을 하찮게 생각하고 별 볼일 없는 존재로 생각하면 그런 사람은 자기에게 막 대하게 된다. 자기를 하찮게 생각하니 남들에게도 아주 불친절하고 닫힌 채 살아가게 된다. 열등의식이 쌓여 있기 때문에 원만한 대인관계를 갖지 못한다. 나는 현대의 한국인들이 바로 이런 의식 상태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 너무 힘들게 살아 그랬던지 한국인들은 자기 이미지가 부정적이고 콤플렉스 덩어리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니 서로에게 막 대한다. 자신에게도 잘 안 하니 남들에게 잘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서로 적대적이고 신경질적이 된다. 한국인들은 일촉즉발이라 문제가 생기면 바로 화를 낸다. 이성적인 말이 통하지 않는다. 사회가 전부 스트레스 덩어리이다. 그래서 그런지 ‘허구헌날’ 술만 푸면서 산다.

한국인이 이렇게 된 것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일제 때 일그러진 자화상을 갖게 돼서 큰 상처를 받고 정신 못 차리는 사이에 해방이 된 뒤에 물밀 듯이 밀려온 미국 문화 때문에 자신감을 다 잃어버린 것이리라. 그래 스스로의 것은 다 하찮게 보이고 우습게만 보인다. 항상 좋은 것은 선진국에만 있지 우리에게 있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한국인들의 자기 이미지가 바뀌어야 한다. 부정적인 데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자신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지 못하니 대외 국가 이미지도 엉망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를 조사해보면 대개 6~7할은 부정적 혹은 무지한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부정적으로 보는데 외국인들이 좋게 봐줄 리가 만무하다. 그래서 나는 진작부터 제대로 된 국가 이미지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국가 이미지는 지난 월드컵 때처럼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면 좋지만 그렇게 안 되면 인위적으로라도 만들어야 한다.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야 외국서 한국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고 국민들도 자긍심을 갖고 서로를 존중하는 좋은 사회 문화를 만들 수 있다.

일전에 참석한 한 심포지엄에서 초대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제프리 존스는 뚜렷한 한국말로 지금 한국 정부는 이미지청(廳)을 만들어 정말로 세련된 국가 이미지를 만들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나도 벌써 몇 년 전부터 국가 이미지를 만들자고 주장해왔는데 주변 교수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뭐 그런 국정원 프로젝트 같은 것을 하느냐’는 투였다. 그래 이런 것을 우리 교수들이 안 하면 누가 하느냐, 콘텐츠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뿐인데 우리가 안 하면 누가 하느냐고 항변해보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들은 자기들만 아는 현학적인 용어를 써가면서 몇 사람 읽지도 않을 논문 쓰는 데에만 관심 있는 것 같았다. 연구 업적 채우는 게 더 시급했을 게다.

최준식 / 이화여대 종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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