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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美‘를 논하다10_순간성의 미학
우리시대 美‘를 논하다10_순간성의 미학
  • 최금수 미술평론가
  • 승인 2004.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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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거부한다-일상 속에 만난 明滅의 아름다움

시각 이미지 생산과 소비에 있어서 ‘瞬間’이라는 개념은 무척 애매한 그리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언뜻 떠올려지는 것이 ‘순간을 영원히’라는 기록개념으로 시각예술 전반의 쓸모에 대한 이해다. 그리고 인상주의 회화 이후에 꾸준히 탐색됐던 현장성에 기반한 ‘실재성’ 또는 ‘즉흥성’의 의미를 들 수 있겠다. 물론 사진이나 영상 그리고 행위예술이나 테크놀로지 아트에 있어서의 시간개념은 그 장르의 존재이유라 할 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있으므로 ‘순간’이라는 개념에 대한 좀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고리타분한 말로 글의 서두에 장식해 놓는 이유는 이 짧은 글에서 이야기하는 ‘순간’은 철학 또는 미학적 의미의 ‘순간’이 아닌 일상용어에 가까울 것이기 때문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호흡이 그리 길지 않고 일회성에 가까울 정도로 쉽게 생겨나서 쉽게 사라지는 경향’을 의미한다. 물론 이렇게 일상적인 말로 풀이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더니즘 예술의 즉흥성 개념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일단 최근 시각예술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순간’의 경향을 지닌다면 이는 근대미술 이후 ‘이즘’ 또는 유파의 카테고리가 사라지면서 점점 더 빨라지는 예술유행의 속도에 기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사실 시대를 뛰어넘는 예술도 짧은 유행으로부터 출발한다. 다시 말해, 시기를 대표하는 예술은 ‘좀 긴 또는 지루한 유행’의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속도에 있다. 특히 남한사회에 있어 속도는 예술분야 뿐만 아니라 사회일반에 널리 번져있는 고질병인 탓에 굳이 최근 예술을 질타하기 위한 속셈으로 ‘순간’ 또는 ‘속도’를 들먹인다면 이는 예술에게 미안한 일이 될 것이다.

어찌됐건 최근 예술이 ‘순간’에 천착한다면 이의 원인은 우리사회에 있다는 조건 하에 다소 허망할지 모르는 예술과 일상의 접목을 시도해 보자. 우선 최근 시각 이미지 생산자들에게 있어 ‘순간’이 중요한 이유는 과거를 잊고 싶은 까닭일 것이다. 혹은 몇몇 젊은 작가들은 떠올릴 수 있는 그럴듯한 과거가 없을 수도 있다. 모더니즘 논쟁과 매우 흡사한 이 해석은 과거에 대항하거나 책임을 지려했던 몇 세대 앞의 예술가들의 태도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도 불기 시작한 ‘웰빙신드롬’처럼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나는 행복한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해 과거와 미래는 현재의 나에게 별로 중요한 것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물론 우리는 20세기 끄트머리에 ‘사이비 종교’ 또는 ‘묻지마 관광’ 등처럼 덜 체계적이고 막나가기는 하지만 ‘유사 웰빙’들을 경험하기도 했다. 어찌됐건 과거의 질곡을 짊어지지 않고 미래에 대한 부담 또한 갖지 않으니 당연히 속도를 내어 ‘순간’을 즐기기 위한 일상들이 만연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웰빙족들이 당당히 외치는 구호가 바로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말자”인 까닭이다.

두 번째로 예술과 일상에서 ‘순간’의 경향이 두각 되어지는 이유로 디지털 또는 인터넷 문화의 만연을 들 수 있겠다. 비물질 예술창작과 소비 사이에 물질적 유통은 무시되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그것을 경험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 밖에는 없는 것이다. 창작과 소비간에 오해의 여지는 있지만 그래도 쌍방소통을 하면서 즐겼던 바로 그 동안의 경험은 마치 전자오락 게임을 즐기는 것과 같은 순간순간 아찔하고 자극적인 경험을 생성케 한다. 물론 대부분의 디지털 경험들은 온라인으로 연결돼 있는 경우에 한해 몸으로만 느껴지지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거나 오프라인에서 현실화되지는 않는다. 오프라인으로 되돌아오는 순간 초라한 현실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라인에 접촉하는 빈도수가 잦아지게 되면 상황은 많이 달라진다. 넷망에 얽혀진 무수히 많은 우연들 속에서 화려한 ‘순간’을 자신의 의지에 의해 선택할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넷에서는 오프라인에서처럼 자신을 구속하는 거대한 과거와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 까닭이다.

마지막으로 최근 예술가들에게 있어 ‘순간’이 강조되는 현실적인 이유로는 힘겨운 경제활동을 들 수 있겠다. 특히 남한에 있어 예술가들의 빈곤은 ‘순간’을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똑똑해진 남한의 예술가들은 더 이상 20세기형 스타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는다. 더 이상 고호나 피카소 그리고 이중섭이나 박수근과 같은 이야기는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팔기 위해 작품을 하지 않는다. 물론 먼 훗날에 대한 기약도 없다. 그래서 ‘순간’에 가장 잘 어울리는 행위예술과 설치예술 그리고 영상예술이 오늘날 작가들에게 선호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최금수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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